후한(後漢 : 기원후 25년 ~ 기원후 220년)의 역사와 역대 황제
1. 혼란을 수습하고 후한을 열다 : 광무제의 통치
신나라 왕망(王莽)의 혼란기를 지나, 한나라의 황족이었던 유수(劉秀)가 다시 천하를 평정했다. 25년 8월 5일, 유수는 광무제(光武帝)로 즉위하며 한나라를 다시 세웠는데, 이 시점이 동한(東漢)의 시작이었다. 그는 낙양(洛陽)을 수도로 정했고, 27년에는 그의 장수 등우와 풍이가 적미군(赤眉軍)을 항복시키고 그 지도자들을 처형하며 치안을 회복했다. 26년부터 36년까지 광무제는 여러 군벌들과의 전쟁을 통해 중국을 재통일했 , 유교를 통치 이념으로 삼아 사회 안정과 경제 발전에 힘썼다. 이처럼 한나라의 명맥을 이어나간 시기를 ‘광무중흥’이라고 불렀다.
- [참고] 후한 1대 광무제 유수 [바로가기]
2. 태평성대 : 명제와 장제의 안정적인 통치
광무제 사후, 아들 명제 유장(明帝 劉莊, 재위 57~75년)와 장제 유달(章帝 劉炟), 재위 75~88년)가 연달아 나라를 잘 다스렸다. 이 시기를 ‘명장지치’라고 하는데, 사회가 안정되고 경제가 번영했으며, 중앙 집권 체제가 더욱 굳건해졌다. 서역에는 반초(班超, 32~102년)를 파견하여 한나라의 영향력을 서쪽 끝까지 확장하는 등 대외적으로도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 [참고] 후한 2대 명제 유장 [바로가기]
- [참고] 후한 3대 장제 유달 [바로가기]
3. 절정의 국력 : 화제의 영원지륭과 환관 세력의 태동
장제 이후 즉위한 화제 유조(和帝 劉肇, 재위 88~105년)의 시대는 ‘영원지륭’으로 불릴 만큼 후한의 국력이 강성했던 시기였다. 화제는 외척인 외삼촌 두헌(竇憲)을 숙청하며 황권을 강화했지만, 이 과정에서 환관들을 중용하기 시작하면서 환관 세력이 정치에 개입하게 되는 씨앗을 뿌렸다. 또한 채륜(蔡倫, ?~121년)이 종이를 개량하고 보급하면서 문화 발전에 크게 기여한 시기이기도 하다.
- [참고] 후한 4대 화제 유조 [바로가기]
4. 태후의 섭정 : 외척 세력의 발호
화제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자, 그의 부인 등태후(鄧太后, 81~121년)가 어린 아들 상제 유륭(殇帝 劉隆, 재위 106년)와 안제 유호(安帝 劉祜, 재위 106~125년)를 대신해 섭정을 시작했다. 등태후는 유능한 통치자였지만, 그녀의 친정인 등씨 외척이 권력을 장악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 [참고] 후한 5대 상제 유륭 [바로가기]
- [참고] 후한 6대 안제 유호 [바로가기]
5. 어지러운 정치 : 안제의 시대와 권력 다툼
등태후 사후, 안제 유호(安帝 劉祜, 재위 106~125년)가 친정을 시작했지만, 이때는 황제의 어머니인 염후(閻后)의 친척인 외척 염씨(閻氏)가 권력을 휘둘렀고, 동시에 환관들의 세력도 커지면서 정치가 불안정해졌다. 황제가 나라의 기강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외척과 환관에게 좌우되는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6. 외척의 전횡 : 순제의 시대와 양기의 등장
안제 이후 환관들의 도움으로 순제 유보(顺帝 劉保, 재위 125~144년)가 황위에 올랐다. 순제는 환관들에게 보상을 했고, 그와 동시에 황후인 양나(梁妠)의 친정 가문인 양씨 외척 세력이 권력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순제는 환관과 외척을 견제하려고 노력하며 ‘양가신제’ 같은 관리 등용 제도 개혁이나 부패 감찰을 위한 ‘팔사’를 파견했지만, 결국 외척 양기(梁冀, ?~159년)에게 실권을 빼앗기고 말았다.
- [참고] 후한 7대 전소제 유의 [바로가기]
- [참고] 후한 8대 순제 유보 [바로가기]
- [참고] 후한 9대 충제 유병 [바로가기]
- [참고] 후한 10대 질제 유찬 [바로가기]
7. 피비린내 나는 권력 다툼 : 외척과 환관의 대결
환제 유지(桓帝 劉志, 재위 146~168년)가 즉위하며 폭정을 일삼던 외척 양기(梁冀)를 제거했지만, 그 과정에서 환관들의 권력이 지나치게 비대해졌다. 환관들은 부패하고 나라를 자기들 마음대로 주물렀고, 이에 반발한 사대부들과 ‘당고의 화’(黨錮之禍)라는 두 차례의 대규모 탄압으로 이어져 많은 지식인들이 피해를 입었다. 이로 인해 환관 세력이 모든 권력을 장악하게 되고, 후한의 정치는 극도로 문란해졌다.
- [참고] 후한 11대 환제 유지 [바로가기]
8. 후한의 종말 : 황건적의 난과 삼국지의 시작
영제 유굉(靈帝 劉宏, 재위 168~189년)은 정치에 관심이 없었고 환관들을 더욱 신임하며 나라를 파멸로 몰고 갔다. 184년에 대규모 ‘황건적의 난’(黃巾賊之亂)이 발생하면서 후한 사회는 엄청난 혼란에 빠졌다. 이 난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지방의 군벌들이 세력을 키우기 시작했고, 동탁(董卓, ?~192년)과 같은 군웅들이 등장하면서 후한은 걷잡을 수 없는 난세로 치달았다. 결국 마지막 황제 헌제 유협(獻帝 劉協, 재위 189~220년)는 군벌들의 꼭두각시 신세로 전락하다 위(魏)나라의 조비(曹丕)에게 제위를 넘겨주며 동한은 완전히 막을 내리고 삼국시대(三國時代)가 시작되었다.
- [참고] 후한 12대 영제 유굉 [바로가기]
- [참고] 후한 13대 소제 유변 [바로가기]
- [참고] 후한 14대 헌제 유협 [바로가기]
댓글 없음:
댓글 쓰기
참고: 블로그의 회원만 댓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