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한 9대 충제 유병(沖帝 劉炳, AD. 143~145년) : 재위 AD. 144~145년
【기원후 143년】
- 유병(劉炳)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 아버지는 후한 순제(順帝) 유보(劉保)이며, 어머니는 우미인(虞美人)이다.
- 그는 순제의 유일한 아들이었다.
【기원후 144년】
- 6월 3일(양력), 아버지 순제가 병들자 황태자(皇太子)로 책봉되었다.
- 9월 20일(양력), 아버지 순제가 붕어하자, 한 살의 나이로 황제에 즉위하여 후한의 제9대 황제가 되었다.
- 이 시기는 건강(建康) 원년에 해당한다.
- 어린 나이에 즉위했기 때문에 순제의 황후이자 그의 양어머니였던 양태후(梁太后)가 수렴청정(垂簾聽政)하며 국정을 총괄했다. 양태후의 오빠인 양기(梁冀)가 사실상 모든 권력을 장악하고 있었다.
【기원후 144~145년】
- 영희(永憙) 또는 영가(永嘉) : 기원후 145년에 이 연호가 사용되었다.
- 그의 재위는 약 6개월간 이어졌다.
- 이 시기에는 이미 순제 대부터 이어진 농민 봉기가 더욱 심화되었으며, 심지어 순제의 능까지 도굴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 양태후는 공명정대했지만, 부패한 오빠 양기를 지나치게 신뢰하여 정국을 혼란에 빠뜨렸다.
【기원후 145년】
- 2월 15일(양력), 2세 또는 3세(동아시아 나이 계산법)의 어린 나이로 사망했다.
- 양태후는 충제의 죽음을 비밀에 부치려 했으나, 대사마(大司馬) 이고(李固)의 조언을 받아들여 그의 죽음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 양기는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나이가 어린 황족인 유찬(劉纘, 훗날 질제)을 옹립했으며, 연장자로서 더 적합했던 유찬의 삼촌 유산(劉蒜)은 배제되었다.
- 충제는 비용 절감을 위해 아버지 순제의 능원에 합장되었다.
【기원후 175년】
- 충제의 모친인 우미인은 충제가 사망한 지 오랜 시간이 지난 기원후 175년, 영제(靈帝)에 의해 귀인(貴人)으로 추봉되었다 .
【요약 정보】
- 이름 : 유병(劉炳)
- 묘호 : 없음
- 시호 : 효충황제(孝沖皇帝) : 충제(沖帝)는 줄임말
- 출생 : 기원후 143년
- 출생지 : (명확한 기록 없음, 아마 낙양 궁궐 내)
- 사망 : 기원후 145년 2월 15일 (향년 2세 또는 3세)
- 사망지 : (낙양 궁궐 내로 추정)
- 부친 : 후한 순제(順帝) 유보(劉保)
- 모친 : 우미인(虞美人)
- 배우자 : 없음 (어린 나이에 사망)
- 자녀 : 없음 (어린 나이에 사망)
- 재위 : 기원후 144년 9월 20일 ~ 기원후 145년 2월 15일 (약 6개월)
- 전임 : 후한 순제(順帝) 유보(劉保)
- 후임 : 후한 질제(質帝) 유찬(劉纘)
- 후한 충제 유병은 순제의 유일한 아들로 태어났으나, 한 살의 어린 나이에 즉위하여 겨우 6개월 만에 병사한 비운의 황제이다. 그의 재위 기간은 사실상 양태후와 그녀의 오빠 양기(梁冀)의 수렴청정 아래 있었으며, 양기는 충제의 죽음을 이용해 어린 질제를 옹립하여 자신의 권력을 더욱 공고히 하는 데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