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릴레오와 피사의 사탑: 전설이 된 과학적 사고의 전환점 1. 서론: 과학적 발견을 둘러싼 위대한 전설 과학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흥미로운 일화 중 하나는 바로 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Galilei, 1564~1642)가 피사의 사탑에서 서로 다른 무게의 물체를 동시에 떨어뜨려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을 반박했다는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마치 전설처럼 회자되며, 갈릴레오를 중세의 권위에 맞서 실험과 증명을 통해 진실을 밝힌 현대 과학의 선구자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그는 당시의 통념에 도전하고, 과학적 방법론의 중요성을 일깨웠던 위대한 인물로 기억된다. 그러나 과연 갈릴레오는 실제로 피사의 사탑에서 낙하 실험을 했을까? 이 글에서는 이 유명한 과학 일화의 진실을 파헤치고, 갈릴레오가 당시 과학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깊이 있게 탐구한다. 갈릴레오 갈릴레이 2. 피사의 사탑 전설: 통념에 도전하는 용기 오랜 세월 동안 전해 내려온 갈릴레오의 피사의 사탑 실험 이야기는 대략 다음과 같다. 16세기 말, 피사 대학의 교수였던 갈릴레오는 당시 2천 년 가까이 진리처럼 받아들여지던 아리스토텔레스의 '무거운 물체가 가벼운 물체보다 더 빨리 떨어진다'는 이론에 의문을 품었다. 그는 이러한 통념을 직접 증명하기 위해 피사의 사탑 꼭대기에 올라갔다. 갈릴레오는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크기와 모양은 같지만 무게가 다른 두 개의 쇠구슬을 동시에 떨어뜨렸다. 그리고 놀랍게도 두 쇠구슬은 거의 동시에 땅에 떨어졌다. 이 실험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이 틀렸음을 명백히 보여주는 충격적인 증거가 되었다. 이로써 갈릴레오는 권위에 맹목적으로 따르기보다는 직접 관찰하고 실험하며 합리적으로 사고하는 현대 과학의 문을 열었다는 찬사를 받았다. 이 일화는 오랫동안 과학 교육의 중요한 부분으로 전해져 왔다. 당시 피사의 사탑은 갈릴레오가 살았던 시대에도 이미 기울어져 있었기에, 물체의 낙하 실험을 하기에 매우 독특하고 상징적인 장소였다는 점도 이 전...
제레미 벤담의 7가지 쾌락 계산법: 이성으로 행복을 측정하다 1. 서론: 행복을 과학적으로 측정하려는 시도 18세기 계몽주의 시대에 등장한 영국 철학자 제레미 벤담(Jeremy Bentham, 1748~1832)은 인간의 모든 행위와 도덕적 판단의 궁극적인 기준을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 공리주의(Utilitarianism)의 창시자이다. 그는 행복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구체적이고 합리적으로 측정하고 계산할 수 있다고 믿었으며, 이를 통해 도덕적 의사 결정을 더욱 객관적이고 과학적으로 만들고자 했다. 이러한 그의 시도는 오늘날 '쾌락 계산법'(Hedonic Calculus 또는 Felicific Calculus)이라는 이름으로 전해진다. 벤담은 쾌락과 고통이라는 인간의 기본 감정을 수량화할 수 있는 일곱 가지 기준을 제시하며, 이를 통해 행위의 도덕적 가치를 평가하고자 하였다. 이 글에서는 벤담이 제안한 7가지 쾌락 계산법의 구체적인 항목들을 상세히 살펴보고, 이 계산법이 윤리학, 사회학, 경제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에 미친 영향과 그 한계점을 깊이 있게 탐구한다. 제레미 벤담 2. 공리주의의 탄생: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원칙 벤담의 철학적 배경에는 '유용성'(utility)이라는 개념이 있다. 그는 인간의 삶을 지배하는 두 가지 절대적인 주인이 바로 쾌락(pleasure)과 고통(pain)이라고 보았다. 모든 인간 행위는 쾌락을 증진하고 고통을 감소시키는 방향으로 이루어지며, 도덕과 법률 역시 이러한 원칙에 따라 형성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유용성'이란 "어떤 당사자에게 이익, 이점, 쾌락, 선 또는 행복을 창출하거나 손해, 고통, 악, 불행의 발생을 예방하는 성향"을 의미한다. 벤담은 개인의 행위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의 도덕과 법률도 이 유용성 원칙에 따라 평가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즉, 어떤 법률이나 정책이 가져오는 쾌락의 총량이 고통의 총량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