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텔레스포로(Pope Telesphorus, AD.?~c.137) : 제8대 교황(AD.c.126~c.137)
- Pope Telesphorus [Greek : Τελεσφόρος]
- 출생 : 미상 / Thurii (today Terranova da Sibari, Calabria), Italy, Roman Empire
- 사망 : c.137 / Rome, Italy, Roman Empire
- 재위 : c.126~c.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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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에른 슈트라우빙의 카르멜 수도원에 있는 성 텔레스포로의 14세기 묘사 |
교황 텔레스포로(Pope Telesphorus, 라틴어: Telesphorus)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여덟 번째 교황으로, 서기 125년부터 137년까지 교황직을 수행했다. 그의 재위 기간은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Hadrian, 76년–138년)와 안토니누스 피우스(Antoninus Pius, 86년–161년)의 치세와 겹친다. 이는 초대 기독교가 로마 제국의 통제 속에서 점차 성장하고 체계를 갖추어 나가던 중요한 시기였다. 텔레스포로는 모든 초기 교황들과 마찬가지로 사후 성인으로 시성되었으며, 특히 ‘순교자’라는 영광스러운 칭호를 받은 초기 교황이라는 점에서 주목받는다.
1. 텔레스포로의 생애와 배경
텔레스포로는 그리스 혈통으로서 오늘날 이탈리아 칼라브리아주(Calabria)의 테라노바다시바리(Terranova da Sibari)에서 태어났다. 《교황 연대표(Liber Pontificalis)》에 따르면, 그는 교황이 되기 전에 은수자(hermit)였다고 전해진다. 은수 생활을 했다는 것은 그가 세속적인 삶을 떠나 영적 성찰과 고행에 전념했던 인물이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배경은 그가 로마 교회의 수장으로서 영적 권위를 확보하는 데 중요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교부 에우세비오(Eusebius, 260년경–339년경)의 《교회사(Ecclesiastical History)》에 따르면, 텔레스포로는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Hadrian) 재위 12년에 교황으로 즉위하여 안토니누스 피우스(Antoninus Pius) 재위 1년에 선종했다고 증언한다. 이는 그가 대략 12년에서 13년 정도 교황직을 수행했음을 의미한다.
2. 전례 개혁과 교회 조직화에 기여
텔레스포로에게는 여러 중요한 전례 관습을 도입한 공로가 전통적으로 귀속된다. 이러한 기록은 주로 후대의 문헌, 특히 에우세비오의 증언에 기반을 두고 있다.
- 예수 성탄 대축일(Christmas Eve) 전야 미사 제정 : 텔레스포로는 예수 성탄 대축일 전야 미사를 제정했다고 전해진다. 이는 초기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는 방식을 구체화하고, 이를 위한 특별한 전례를 마련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해석될 수 있다.
- 예수 부활 대축일(Easter) 날짜 제정 : 그는 예수 부활 대축일의 날짜를 주일(일요일)로 제정했다고 한다. 당시 교회는 부활절을 언제 지낼 것인가에 대한 논쟁(‘콰르토데키만 논쟁’ 등)이 활발했다. 유대교의 과월절(Passover) 날짜에 따라 부활절을 지내는 지역 교회도 있었지만, 텔레스포로는 부활절을 과월절과 무관하게 주일에 기념하는 전통을 확립하는 데 기여했다.
- 사순 시기(Lent) 규정 : 예수 부활 대축일 전 7주간을 사순 시기로 지정하도록 지시했다고 전해진다. 사순 시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을 기억하고 회개하는 기간으로, 이 시기의 확립은 기독교인의 영성 생활에 중요한 틀을 제공했다.
- 미사 중 대영광송(Gloria) 가창 지시 : 그는 미사 중에 ‘대영광송’을 노래로 부를 것을 지시했다고 전해진다. 대영광송은 하느님을 찬미하는 중요한 찬송가로, 미사 전례의 풍성함을 더하는 요소이다.
이러한 전례적 기여들은 텔레스포로가 로마 교회의 전례를 표준화하고, 신자들의 신앙생활을 체계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시사한다. 이는 초대 교회가 지역적 다양성을 넘어 보편적인 전례 관습을 형성해나가던 시기의 모습이다.
3. ‘영광스러운 순교’와 그 역사적 의미
텔레스포로는 초기 교황들 가운데 ‘순교자’라는 칭호를 받은 첫 번째 교황 중 한 명이라는 점에서 특히 중요하다. 교부 이레네오(Irenaeus, 130년경–202년경)는 그의 저서 《모든 이단에 반대하여(Against Heresies)》에서 텔레스포로가 ‘영광스러운 순교(glorious martyrdom)’를 했다고 명확하게 증언한다. 이는 그보다 앞선 교황들(베드로, 리노, 아나클레토, 클레멘스 1세, 에바리스토, 알렉산데르 1세, 식스토 1세)에 대해서는 이레네오가 직접적인 순교 증언을 남기지 않았다는 점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비록 《교황 연대표》가 초기 교황 대부분을 순교자로 기록하는 경향이 있지만, 텔레스포로는 《교황 연대표》보다 훨씬 이전 시기인 2세기 중후반에 이레네오에 의해 순교자로 인정받은 최초의 교황이라는 점에서 그의 순교 전승은 더 큰 역사적 신뢰성을 가진다. 그의 순교는 초대 교회가 로마 제국의 통치 아래에서 겪었던 어려움과 박해의 단면을 보여주며, 신앙을 위해 목숨을 바친 지도자로서 텔레스포로의 영적 권위를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사후 그는 기독교의 성인으로 시성되었으며, 축일은 1월 5일이다.
4. 부활절 논쟁과 카르멜회와의 연관성
2세기 말엽, 부활절을 언제 기념할 것인가에 대한 논쟁(‘콰르토데키만 논쟁’)이 교회 내에서 활발했다. 교부 이레네오가 교황 빅토르 1세(Pope Victor I, 재위 189년–199년)에게 보낸 서신에 따르면, 교황 텔레스포로는 유대인의 과월절 절기에 따라 평일이 아니라 주일(일요일)에 예수 부활 대축일 미사를 봉헌했다고 증언된다. 하지만 그는 빅토르 1세와는 달리, 이러한 전통을 따르지 않는 다른 기독교 공동체와도 지속적으로 교류하며 분열을 피하려 노력했다. 이는 텔레스포로가 교회의 일치와 보편성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또한 텔레스포로는 가르멜회(Carmelites)에서 수호성인으로 공경받는다. 그 이유는 그가 교황으로 선출되기 전에 팔레스타인의 가르멜 산(Mount Carmel)에서 은수 생활을 했었다는 일부 문헌의 기록 때문입니다. 이러한 전승은 그의 은수자로서의 배경과 연결되어, 가르멜 수도회의 영성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흥미롭게도 캐나다 퀘백 주 남서부 지방에 있는 마을인 생텔레스포르(Saint-Télesphore)는 바로 성 텔레스포로 교황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는 그의 영향력이 특정 종교 단체나 전례를 넘어 지리적 명칭으로까지 확장되었음을 보여준다.
5. 결론 : 순교와 전례 개혁으로 초대 교회를 이끈 교황
교황 텔레스포로는 초대 로마 교회의 여덟 번째 수장으로서, 혼란스러웠던 초기 기독교 시기에 중요한 발자취를 남겼다. 그는 이레네오에 의해 ‘영광스러운 순교자’로 기록된 최초의 교황으로서, 신앙을 위한 희생의 상징이 되었다. 또한 예수 성탄 대축일 전야 미사, 부활절 날짜 규정, 사순 시기 확립, 미사 중 대영광송 가창 지시 등 주요 전례 관습을 도입하여 로마 교회의 조직화와 신앙생활의 표준화에 크게 기여했다.
그의 은수자 배경과 카르멜회와의 연결고리, 그리고 부활절 논쟁에서의 현명한 대처는 그가 단순한 행정가를 넘어 깊은 영성과 지혜를 지닌 지도자였음을 시사한다. 텔레스포로는 사도 시대의 유산을 이어받아, 격동하는 제국 속에서 기독교가 더욱 견고하게 뿌리내리고 보편적인 체계를 갖추는 데 필수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그의 유산은 오늘날 로마 가톨릭교회의 전례와 성인 공경에 깊이 자리하고 있으며, 초대 교회의 역동적인 발전 과정을 이해하는 데 귀중한 통찰을 제공하는 중요한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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