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한 14대 헌제 유협(獻帝 劉協, AD. 181~234년) : 재위 AD. 189~220년
【기원후 181년】
- 유협(劉協)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 아버지는 후한 영제(靈帝) 유굉(劉宏)이고, 어머니는 왕미인(王美人)이다.
- 영제의 차남으로, 그의 생모인 왕미인은 영제의 황후인 하태후(何太后)에게 독살당했다. 이로 인해 유협은 할머니 동태후(董太后)의 손에서 자랐다.
【기원후 189년】
- 4월, 그의 이복형인 유변(劉辯)이 소제(少帝)로 즉위하자, 유협은 발해왕을 거쳐 진류왕(陳留王)에 봉해졌다.
- 십상시(十常侍)의 난 등 정변이 일어나는 혼란스러운 시기에, 서량의 군벌 동탁(董卓)이 실권을 장악했다. 동탁은 총명하고 어리지만 정치적 기반이 없는 유협을 자신의 꼭두각시로 세울 계획을 세웠고, 결국 9월 28일 소제 유변을 폐위시키고 9세의 유협을 황제로 옹립했다. 이것이 후한 헌제의 즉위이며, 이때부터 초평(初平)이라는 연호를 사용했다.
- 동탁은 실권을 완전히 장악하고 헌제를 허수아비로 만들었다.
- 각지의 제후들이 반동탁 연합군을 결성하자, 동탁은 낙양(洛陽)을 불태우고 헌제를 장안(長安)으로 강제로 천도시켰다.
【기원후 192년】
- 동탁이 왕윤(王允)과 여포(呂布)에게 암살당했으나, 곧 동탁의 부하였던 이각(李傕)과 곽사(郭汜) 등이 장안을 장악하고 헌제를 통제하며 다시 혼란이 가중되었다.
【기원후 195년】
- 이각과 곽사의 내분 속에서 헌제는 황궁을 탈출하여 낙양으로 향했으나, 여러 군벌들에게 이리저리 시달리며 유랑했다.
- 이때 복황후(伏皇后, 복수 伏壽)가 책봉되었다.
【기원후 196년】
- 헌제는 충실한 왕읍(王邑)의 땅인 하동군(河東郡) 안읍(安邑)에서 잠시 머물렀으나, 곧 조조(曹操)가 헌제를 맞이하여 자신의 근거지인 허(許, 훗날 허도 許都)로 천도했다.
- 조조는 헌제를 앞세워 “협천자이령제후(挾天子以令諸侯: 천자를 끼고 제후를 호령한다)”라는 전략을 본격적으로 실행하며 천하의 패권을 다졌다. 이때부터 헌제는 조조의 완전한 통제 아래 놓였다.
【기원후 200년】
- 조조의 세력이 날로 강해지자, 헌제는 외척 동승(董承)에게 밀서를 보내 조조를 암살할 것을 지시했다. 그러나 이 계획은 발각되어 동승과 그의 일파는 모두 살해당했고, 헌제의 입지는 더욱 약화되었다.
【기원후 214년】
- 조조를 제거하려던 복완(伏完) 일파의 모의가 발각되면서, 복황후 복수와 그녀가 낳은 아들 두 명도 조조에 의해 살해당했다.
- 이후 조조는 자신의 딸인 조절(曹節)을 헌제의 황후(헌목황후 獻穆皇后)로 삼았다.
【기원후 220년】
- 조조가 사망하고 그의 아들 조비(曹丕)가 왕위를 계승한 후, 조비는 헌제에게 황위 선양을 강요했다.
- 결국 10월 29일, 헌제는 조비에게 제위를 물려주며 후한 왕조는 400여 년 만에 공식적으로 멸망했다.
- 이후 그는 산양공(山陽公)으로 강등되었으며, 조비는 그에게 황제 시절의 복식을 유지하도록 허락했다.
【기원후 234년】
- 4월 21일(음력) 또는 9월 21일(양력), 5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공교롭게도 촉한(蜀漢)의 제갈량(諸葛亮)과 같은 해에 사망했다는 기록이 있다.
- 산양공으로 지내며 비교적 평화로운 여생을 보냈다.
- 위(魏)나라에서는 그에게 ‘효헌황제(孝獻皇帝)’라는 시호를 올렸고, 촉한(蜀漢)에서는 ‘효민황제(孝愍皇帝)’라는 시호를 올렸다.
【요약 정보】
- 이름 : 유협(劉協)
- 묘호 : 없음
- 시호 : 효헌황제(孝獻皇帝) : 헌제 (獻帝)는 줄임말
- 출생 : 181년
- 출생지 : (명확한 기록 없음, 아마 낙양 궁궐 내)
- 사망 : 234년 4월 21일(음력) 또는 9월 21일(양력) (향년 54세)
- 사망지 : 산양군(山陽郡)
- 재위 : 189년 9월 28일 ~ 220년 10월 29일 (31년)
- 전임 : 후한 소제(少帝) 유변(劉辯)
- 후임 : 조위(曹魏) 초대 황제 조비(曹丕)
- 헌제 유협은 후한의 마지막 황제로, 그의 치세는 외척과 환관의 권력 투쟁, 군웅할거, 조조의 전횡으로 점철된 혼란의 시대였다. 그는 실권 없는 허수아비 황제로 이용당하다 결국 조비에게 제위를 선양하며 후한의 막을 내렸지만, 퇴위 후 산양공으로서 비교적 평화로운 여생을 보내는 등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 할머니 : 동태후(董太后)
- 아버지 : 한 영제 유굉(漢靈帝 劉宏)
- 계모(정실 어머니) : 영사황후 하씨(靈思皇后 何氏)
- 생모 : 미인 왕씨(美人 王氏), 사후에 영회황후(靈懷皇后)로 추존
- 장인 : 복완(伏完), 조조(曹操)
- 처남 : 복전(伏典), 조비(曹丕)
【헌제의 가계】
1) 후비(황후 및 후궁들)
- 복수(伏壽) : 원후(元后), 복완의 딸
- 조절(曹節) : 계후(繼后), 시호 헌목황후(獻穆皇后), 조조의 딸
- 조헌(曹憲) : 귀인(貴人), 조조의 딸, 조절의 언니
- 조화(曹華) : 귀인, 조조의 딸, 조절·조헌의 여동생
- 동씨(董氏) : 귀인, 차기장군 동승(董承)의 딸
- 송도(宋都) : 귀인, 상산태수 송홍(宋泓)의 딸
- 곽궁인(郭宫人) : 궁녀
- 조궁인(赵宫人) : 궁녀
2) 아들들
- 유봉(劉馮) : 건안 5년(200년) 7월에 남양왕으로 봉해졌으나, 같은 해 사망
- 유희(劉熙) : 건안 17년(212년)에 제음왕(濟陰王)으로 봉해짐
- 유의(劉懿) : 건안 17년 산양왕(山陽王)으로 봉해짐
- 유막(劉邈) : 건안 17년 제북왕(濟北王)으로 봉해짐
- 유돈(劉敦) : 건안 17년 동해왕(東海王)으로 봉해짐
- 복수(伏壽)가 낳은 아들 두 명이 더 있으나, 이름은 미상이며 200년 이후 출생함. 모두 건안 19년(214년)에 조조에게 살해됨
- 태자 : 이름 미상. 조기에 사망. 아들 유강(劉康)이 있음
- 헌제가 선양(황제 자리 양위)할 당시, 아들 네 명이 생존 중이었으며, 조위(曹魏)에서는 이들을 모두 열후(列侯)로 봉함
3) 딸들
- 유만(劉曼) : 위 문제 조비가 황초 4년(224년 1월 20일)에 장락군공주(長樂郡公主)로 봉함. 식읍 500호
- 또 다른 두 딸은 모두 위나라 문제 조비의 후궁이 됨
4) 후손
- 손자 : 유강(劉康) → 산양공(山陽公) 작위를 계승함. 서진(西晉) 태강 6년(285년) 사망
- 증손자 : 유근(劉瑾), 유강의 아들 → 산양공 작위 계승. 서진 태강 10년(289년) 사망
- 현손자 : 유추(劉秋) → 20년간 산양공 작위를 유지하다가, 서진 영가 3년(309년), 오호십육국의 혼란 중 살해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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