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한 13대 소제 유변(少帝 劉辯, AD. 176~189년) : 재위 189년
【기원후 176년】
- 유변(劉辯)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 아버지는 후한 영제(靈帝) 유굉(劉宏)이며, 어머니는 영사황후(靈思皇后) 하씨(何氏)이다.
- 영제는 그전에 태어난 아들들이 일찍 죽어 유변마저 잃을까 두려워, 도사(道士) 사진묘(史子眇)에게 맡겨 키웠으며, 유변은 이때 ‘사후(史侯)’라는 칭호를 받았다.
【기원후 181년】
- 1월 8일, 그의 어머니 하씨가 황후가 되었다.
- 4월, 영제의 다른 후궁인 왕미인(王美人)이 이복동생인 유협(劉協, 훗날 헌제)을 낳자, 하황후는 질투심에 왕미인을 독살했다. 유협은 이때 태후 동씨(董氏)의 손에서 자랐고 ‘동후(董侯)’라는 칭호를 받았다.
【성장기】 황제 후보 논란
- 영제는 유변이 “경솔하고 위엄이 없어 황제로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하며 이복동생 유협을 더 선호했다. 그러나 유협을 태자로 삼을 경우, 하황후의 오빠인 대장군 하진(何進)의 강력한 반발을 우려하여 결국 아무도 태자로 책봉하지 않았다.
【기원후 189년】
- 5월 15일 : 영제가 사망하자, 유변은 14세의 나이로 황제에 즉위했다. 그는 후한의 13대 황제로, 흔히 ‘소제(少帝)’ 또는 ‘후한 소제’로 불린다.
- 재위 기간은 매우 짧았으며, 기원후 189년 5월 15일부터 9월 28일까지였다.
- 즉위 초기에는 대장군 하진과 태후 하씨(何氏)가 국정을 장악했다.
- 대장군 하진은 환관들을 모두 숙청하려 했으나, 태후 하씨의 반대로 어려움을 겪었다.
- 하진은 지방 군벌인 동탁(董卓) 등을 불러들여 환관들을 위협하려 했으나, 오히려 환관들에게 암살당했다.
- 이후 동탁이 낙양으로 진군하여 조정을 장악했고, 환관 세력은 몰락했다.
- 9월 28일 : 동탁은 유변이 ‘약하고 나약하다’는 이유로 황제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며, 그를 폐위시켰다. 이후 그는 홍농왕(弘農王)으로 강등되었다.
- 동탁은 유변의 이복동생인 유협을 황제로 옹립하여 헌제(獻帝)로 삼았다.
【기원후 190년】
- 동탁에 의해 독살당했다.
- 기원후 190년 3월 26일(혹은 6일)에 사망했다고 기록하며, 당시 13~14세였다.
【요약 정보】
- 이름 : 유변(劉辯)
- 묘호 : 없음
- 시호 : 홍농회왕(弘農懷王) : 황제로서는 시호 없음, 보통 소제(少帝)로 불림
- 출생 : 기원후 176년
- 출생지 : (명확한 기록 없음, 아마 낙양 궁궐 내)
- 사망 :
- 기원후 190년 3월 26일
- 기원후 190년 3월 6일 (향년 13~14세)
- 사망지 : (동탁의 감금처 또는 낙양 일대)
- 부친 : 후한 영제(靈帝) 유굉(劉宏)
- 모친 : 영사황후(靈思皇后) 하씨(何氏)
- 배우자 : 당희(唐姬)
- 자녀 : (명시된 기록 없음)
- 재위 : 기원후 189년 5월 15일 ~ 기원후 189년 9월 28일 (4개월)
- 전임 : 후한 영제(靈帝) 유굉(劉宏)
- 후임 : 후한 헌제(獻帝) 유협(劉協)
- 후한 소제 유변은 영제의 장남이자 정식 후계자였지만, 그의 짧은 재위 기간은 외척과 환관, 그리고 동탁과 같은 지방 군벌의 극심한 권력 투쟁 속에서 철저히 농락당했다. 결국 동탁에 의해 폐위되어 홍농왕으로 강등된 후 독살당함으로써, 후한 말기의 혼란을 알리는 상징적인 비극의 주인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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