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무제 조조(魏 武帝 曹操, AD. 155~220)
【기원후 155년】
- 조조(曹操)라는 이름으로 태어났으며, 자(字)는 맹덕(孟德)이다.
- 어릴 적 소명(小名)은 아만(阿瞞)이었다.
- 패국 초현(沛國 譙縣, 현재 안후이성 보저우시) 출신이다.
- 할아버지는 환관 조등(曹騰)이고, 아버지는 조등의 양자인 조숭(曹嵩)이다.
【소년기 및 청년기】 방탕과 비범함
- 어릴 적에는 개성 강하고 자유분방하여 말 타기, 사냥, 연회, 음악, 병법 연구 등을 즐겼다.
- 친구 원소(袁紹)와 함께 불량한 행동을 저지르기도 했다.
- 당대 유명한 인물평가사 허소(許劭)는 조조를 “치세의 능신(능력 있는 신하), 난세의 간웅(간사한 영웅)”이라고 평가했다.
【기원후 174년】 20세 : 관리 생활 시작
- 효렴(孝廉)으로 천거되어 낙양북부위(洛陽北部尉)에 임명되었다.
- 법 집행에 엄격하여, 황실의 환관 건석(蹇碩)의 숙부라도 금법을 어기면 곤장으로 다스려 법치를 확립했다.
- 돈구령(頓丘令) 등 지방관을 역임했다.
【기원후 184년】 황건적의 난 토벌 참여
- 황건적의 난이 발생하자 기도위(騎都尉)에 임명되어 토벌에 참여했다.
【기원후 189년】 동탁 토벌군 참여
- 동탁(董卓)이 낙양을 장악하고 전횡을 일삼자, 관직을 버리고 낙향했다가 동탁 토벌을 위한 의병을 일으켰다.
- 원소(袁紹)를 맹주로 하는 반동탁 연합군에 참여하여 진류(陳留)에서 동탁 토벌을 시도했다.
【기원후 192년】 연주(兗州) 확보 및 청주병 흡수
- 동탁이 암살당한 후에도 혼란이 계속되자, 연주목(兗州牧) 유대(劉岱)가 죽은 틈을 타 연주를 차지했다.
- 산동(山東) 일대를 휩쓸던 청주(青州) 황건적을 격파하고 수십만 명의 병사를 흡수하여 청주병(青州兵)이라 불리는 강력한 군사력을 확보했다.
【기원후 193년】 서주 학살 사건
- 아버지 조숭(曹嵩)이 서주(徐州)목 도겸(陶謙)의 부하에게 피살되자, 복수를 명분으로 서주를 공격하여 대규모 학살을 자행했다. 이로 인해 “사람과 닭의 그림자마저 없었다(雞犬不留)”는 비난을 받았다.
【기원후 194년】 여포(呂布)의 연주 공격
- 조조가 서주에 있는 동안 여포가 연주를 습격하여 빼앗겼으나, 후에 연주를 수복했다.
【기원후 196년】 헌제(獻帝) 옹립 및 허도(許都) 천도
- 각지를 떠돌던 헌제를 영접하여 자신의 본거지인 허(許, 현 허창許昌)로 천도시키고, 대장군(大將軍)과 사공(司空) 등 고위직에 오르며 실질적인 권력을 장악하고 “천자를 끼고 제후를 호령(挾天子以令諸侯)”하는 전략을 시작했다.
【기원후 197년】 장수(張繡) 토벌 실패
- 완성(宛城)에서 장수를 토벌하다 대패하여, 장남 조앙(曹昂)과 조카 조안민(曹安民), 용장 전위(典韋)를 잃었다.
【기원후 198년】 여포 토벌
- 여포를 하비성(下邳城)에서 포위 공격하여 붙잡아 처형했다.
【기원후 200년】 관도대전(官渡大戰) 승리
- 화북의 패권을 다투던 강적 원소(袁紹)와 관도에서 대규모 전투를 벌여 대승을 거두었다. 이는 조조의 최대 위기이자 최대 승리였다.
【기원후 207년】 오환(烏桓) 정벌(백랑산 전투)
- 원소의 잔여 세력인 원담(袁譚), 원상(袁尙) 형제를 평정하고, 북방의 오환족까지 정벌(백랑산 전투)하여 황하 이북의 패권을 확립했다.
【기원후 208년】 형주(荊州) 점령 및 적벽대전(赤壁大戰) 패배
- 형주의 유종(劉琮)이 항복하여 형주를 손쉽게 얻었으나, 손권(孫權)과 유비(劉備)의 연합군에게 적벽에서 대패하여 천하 통일의 기회를 놓쳤다.
【기원후 211년】 서량 마초(馬超) 평정(동관 전투)
- 마초, 한수(韓遂) 등이 이끄는 서량(西凉) 군벌들을 동관 전투에서 격파하고 관중(關中)을 장악했다.
【기원후 213년】 위공(魏公) 책봉
- 헌제로부터 위공(魏公)에 책봉되었다.
【기원후 216년】 위왕(魏王) 책봉
- 위왕(魏王)에 책봉되었고, 위국(魏國)을 세웠다.
【기원후 219년】 한중(漢中) 상실 및 관우(關羽) 토벌
- 유비와의 한중 공방전에서 패배하여 한중을 상실했다.
- 이후 관우가 번성(樊城)을 공격하자, 손권과 연합하여 관우를 죽였다.
【기원후 220년】 사망
- 음력 1월 13일(양력 3월 15일), 낙양(洛陽)에서 병사했다. 향년 66세였다.
- 그는 유언으로 아들들에게 검소한 장례를 치르고 시체를 따로 안치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 그의 아들 조비(曹丕)가 위왕을 계승하고, 헌제로부터 황위를 선양받아 위(魏)나라를 건국하여 황제에 즉위했다.
【요약 정보】
- 이름 : 조조(曹操)
- 자(字) : 맹덕(孟德)
- 묘호 : 태조(太祖)
- 시호 : 무황제(武皇帝)
- 출생 : 155년
- 출생지 : 패국 초현(沛國 譙縣, 현 안후이성 보저우시)
- 사망 : 220년 3월 15일 (향년 66세)
- 사망지 : 낙양(洛陽)
- 재위 : 정식 황제로 즉위하지는 않았으나, 위공: 213년~216년, 위왕: 216년~220년 동안 실질적 통치자
- 전임 : 후한 헌제로부터 권력 이양 받음
- 후임 : 아들 위문제(魏文帝) 조비(曹丕) : 조비가 한으로부터 선양받아 위를 건국)
- 조조는 후한 말기의 혼란을 수습하고 삼국시대 위(魏)나라의 기반을 다진 걸출한 영웅이다. 뛰어난 군사적 재능과 정치적 수완을 겸비하여 북방의 패권을 장악했으나, 그의 행적은 “난세의 간웅”이라는 평가처럼 찬사와 비난을 동시에 받는다.
【조조의 가계】
1) 조부 세대
- 조등(曹騰, 100–159) : 동한 환관으로 소황문, 중상시를 지냈으며, 환제가 즉위한 뒤 비정후로 봉해지고 대장추, 특진에 올랐다고 전한다. 조조의 부친 조숭(曹嵩)을 양자로 들였다고 한다. 위 명제 조예가 즉위한 뒤 조등을 ‘고황제’로 추존했다.
- 조포(曹褒) : 영천태수를 지냈다고 하며, 조인(曹仁)의 조부로 전한다.
2) 부(父) 세대
- 조숭(曹嵩, ?–193) : 조조의 부친으로, 환관 조등의 양자이다. 거액을 내고 태위에 올랐다는 기록이 전하며, 조조가 거병한 후 서주로 피했으나 도겸(陶謙) 세력과 관련된 사건으로 조덕(曹德)과 함께 피살되었다고 전한다. 가해 주체는 ‘도겸이 보낸 경무’ 설과 ‘장개(張闓)가 탐재하여 살해’ 설이 병존한다. 조비가 즉위 후 ‘태황제’로 추존했다.
- 조치(曹熾) : 시중, 장수교위를 지냈다고 하며, 조포의 아들이자 조인·조순의 부친으로 전한다.
- 조정(曹鼎) : 상서령, 하간상, 오군태수를 지냈다고 전하며, 조홍(曹洪)의 백부, 조휴(曹休)의 조부로 기록된다.
3) 형제
- 조덕(曹德, ?–193) : 조숭의 아들이자 조조의 동생으로, 조숭과 함께 피살되었다고 전한다.
- 해양애후(海陽哀侯, 이름 미상) : 조조의 동생으로, 딸이 하후연(夏侯淵)의 아들 하후형(夏侯衡)에게 출가했다.
- 조빈(曹彬) : 조조의 동생으로, 조조의 아들 조균(曹均)의 양부로 전한다.
- 이름 미상의 동생 A : 아들 조안민(曹安民)의 부친으로 전한다.
- 이름 미상의 동생 B : 딸이 손견(孫堅)의 아들 손광(孫匡)에게 출가했다.
4) 사촌ㆍ종형제(하후ㆍ조씨 일가)
- 하후돈(夏侯惇, ?–220) : 자 원양. 대장군, 고안향후, 시호 충후. 233년에 태조묘정 배향. 아들 하후무(夏侯楙)는 조조의 딸 청하공주와 혼인했다.
- 하후연(夏侯淵, ?–219) : 자 묘재. 정서장군, 박창정후, 시호 민후. 219년 한중 전역에서 전사. 243년 태조묘정 배향. 아들 하후형은 위 ‘해양애후’의 딸과 혼인했다.
- 조인(曹仁, 168–223) : 자 자효. 위 문제 때 대장군, 진후, 시호 충후. 233년 배향.
- 조순(曹純, 170–210) : 자 자화. 호표기 지휘. 고릉정후, 시호 위후.
- 조홍(曹洪, ?–232) : 자 자렴. 표기장군, 악성후, 시호 공후. 243년 배향.
5) 배우자ㆍ측실
- 정실 : 정씨 丁夫人 : 원배. 조앙(曹昂) 전사 사건 이후 불화가 생겨 재빙청이 무산되었다고 전한다.
- 황후 : 무선황후 卞氏 : 정실 폐출 후 정비로 책봉. 아들 조비(曹丕), 조장(曹彰), 조식(曹植), 조웅(曹熊)을 낳았다.
- 유부인 劉夫人 : 일찍 사망. 아들 조앙, 조쇠(曹鑠), 딸 청하공주를 낳았다.
- 환부인 環夫人 : 아들 조충(曹沖), 조거(曹據), 조우(曹宇).
- 두부인 杜夫人 : 전부(秦宜祿)와의 아들 진랑(秦朗)이 있으며, 조조와의 사이에 조림(曹林), 조곤(曹衮), 딸 금향공주.
- 진(秦)부인 : 아들 조현(曹玹), 조준(曹峻).
- 윤부인 尹夫人 : 전부(何咸)와의 아들 하안(何晏), 조조와의 아들 조구(曹矩).
- 왕소의 王昭儀 : 조간(曹干)의 생모가 일찍 사망하여 그를 양육했다는 전승이 있다.
- 손희 孫姬 : 아들 조상(曹上), 조표(曹彪), 조근(曹勤).
- 이희 李姬 : 아들 조승(曹乘), 조정(曹整), 조경(曹京).
- 주희 周姬 : 아들 조균(曹均).
- 유희 劉姬 : 아들 조극(曹棘).
- 송희 宋姬 : 아들 조휘(曹徽).
- 조희 趙姬 : 아들 조무(曹茂).
- 진첩 陳妾 : 아들 조간(曹幹).
- 장제(張濟)의 처(소설군 전승: 鄒氏) : 『삼국지연의』 계열 설화로, 장수(張繡)의 원한 사유로 거론된다.
- 기타 전승 : 내앵아(來鶯兒)라는 낙양의 명기가 조조의 시위 왕도(王圖)를 사랑했다는 야사 전한다.
6) 아들(25명, 모계 순 정렬)
- 조앙(曹昂, ?–197) — 봉호 풍민왕, 모 유부인
- 조쇠(曹铄, ?–?) — 봉호 상상왕, 모 유부인
- 조비(曹丕, 187–226) — 위 문제, 모 무선황후
- 조장(曹彰, ?–223) — 임성위왕, 모 무선황후
- 조식(曹植, 192–232) — 진사왕, 모 무선황후
- 조웅(曹熊, ?–?) — 소회왕, 모 무선황후
- 조충(曹沖, 196–208) — 등애왕, 모 환부인
- 조거(曹據, ?–?) — 팽성왕, 모 환부인
- 조우(曹宇, ?–278) — 연왕, 모 환부인
- 조림(曹林, ?–256) — 패목왕, 모 두부인
- 조곤(曹衮, ?–235) — 중산공왕, 모 두부인
- 조현(曹玹, ?–?) — 제양회왕, 모 진부인
- 조준(曹峻, ?–259) — 진류공왕, 모 진부인
- 조구(曹矩, ?–?) — 범양민왕, 모 윤부인
- 조간(曹干, 215–261) — 조왕, 모 진씨(陳氏)
- 조자상(曹子上, ?–?) — 임읍상공, 모 손희
- 조표(曹彪, 195–251) — 초왕, 모 손희
- 조자근(曹子勤, ?–?) — 강상공, 모 손희
- 조자승(曹子乘, ?–?) — 곡성상공, 모 이희
- 조자정(曹子整, ?–?) — 미대공, 모 이희
- 조자경(曹子京, ?–?) — 영상공, 모 이희
- 조균(曹均, ?–219) — 번안공, 모 주희
- 조자극(曹子棘, ?–?) — 광종상공, 모 유희
- 조휘(曹徽, ?–241) — 동평령왕, 모 송희
- 조무(曹茂, ?–?) — 악릉왕, 모 조희
7) 딸(확인 가능한 6인)
- 청하공주 — 유부인의 딸, 장공주, 하후무의 부인
- 조헌(曹憲) — 한 헌제 귀인, 조절의 자매
- 조절(曹節, ?–260) — 한 헌제 황후
- 조화(曹華) — 한 헌제 귀인, 조절의 여동생
- 안양공주 — 이름 미상, 순온(荀惲)의 처. 장자 순담, 차자 순이, 삼자 순회 등 관련 기록 전한다.
- 금향공주 — 이름 미상, 윤부인 또는 두부인의 딸, 하안(何晏)의 처
- 임분공주 — 이름 미상, 226년 이후 생존 기록
- 주: 『문선』 주석에 ‘두부인이 패왕 포(豹)와 고성공주를 낳았다’는 전거가 보이나, 고성공주와 금향공주 동일인 여부는 미상이다.
8) 조카ㆍ친족
- 조안민(曹安民, ?–197) : 조조가 아끼던 조카로, 장수의 반란 격전에서 전사했다.
- 조휴(曹休, ?–228) : 자 문렬. 대사마, 장평후, 시호 장후. 243년 태조묘정 배향. 일찍 부친을 여의고 모친과 함께 장강을 건너 남쪽으로 피신했다가 조조에게 귀부했다고 전한다.
- 조씨(해양애후의 딸) — 하후형에게 출가
- 조씨(조조의 조카) — 손광에게 출가
9) 양자
- 조진(曹真, ?–231) : 자 자단. 본래 성이 진(秦)이라는 설이 전하며, 부친이 조조를 엄호하다 전사해 조조가 거두고 성을 바꾸어 주었다고 한다. 대사마, 소릉후, 시호 원후. 아들 조상(曹爽).
- 진랑(秦朗, ?–?) : 조조의 양자이자 조예의 측근. 생부 진의록(秦宜祿)은 장비에게 피살. 모친은 두부인.
- 하안(何晏, ?–249) : 대장군 하진(何進)의 손. 조조의 양자이자 사위. 위·진 교학에서 현학가로 유명하다.
10) 후손
- 조패(曹霸) : 고귀향공 조모(曹髦)의 후예로 전하며, 당 현종 때의 화가이다. 시문에 뛰어났고 좌무위장군에 이르렀다고 전한다. 두보의 ‘단청인’, ‘관조장군화마도’ 시가 그의 화마를 찬미한다.
- 조설근(曹雪芹) : 청대 소설가로 『홍루몽』의 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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