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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9월 19일 금요일

위 5대 원황제 조환(元皇帝 曹奐, AD. 246~302년) : 재위 AD. 260~265년

5대 원황제 조환(元皇帝 曹奐, AD. 246~302) : 재위 AD. 260~265

 

기원후 246출생

  • 조환은 조조 가문의 후손으로, 부친은 연공 조우(曹宇)이며 가계상 위나라 종실에 속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
 

기원후 256

  • 안차현 장도향공에 봉해졌다. 이는 훗날 옹립 준비의 전단계 격 작위로 보이며, 사마씨 섭정 체제하에서 종실의 위계를 재정렬하던 흐름과 맞닿아 있다.
 

기원후 260

  • 260627일 고귀향공 조모가 시해된 뒤 황제로 옹립되었다. 즉위와 함께 연호를 경원으로 삼고 즉위 초부터 사마소가 국정을 전단하는 명목상의 군주로 자리했다는 평가가 따른다.
 

기원후 263

  • 2631128일 변씨를 황후로 책립하였다. 같은 시기 촉한에서는 강유의 공세가 이어졌고, 위 조정은 등애ㆍ종회의 대규모 정벌로 반격의 계기를 마련하였다.
  • 263년 말, 위가 촉한을 멸망시켰다. 등애가 유선을 항복받았고, 이어 종회가 모반을 꾀했으나 진압되었다. 이로써 삼국 중 하나가 소멸하며 정세가 진 진나라의 찬탈 수순으로 기울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기원후 264

  • 사마소가 진왕에 봉해졌다. 9(九錫)를 받는 등 선양을 향한 마지막 형식 절차가 진행되었다는 점이 상징적이다.
 

기원후 265

  • 사마소가 서천을 정벌한 공으로 진왕(晉王)에 올라 제위를 찬탈하려는 준비를 마쳤으나 265년에 죽었다
  • 그후 사마소의 맏아들인 사마염이 진왕의 지위를 이어받은 뒤 조환을 협박해 제위를 선양하게 했다. 사마염은 이에 반대하는 황문시랑 장절을 죽이고 마침내 즉위하여 서진을 세우고 조환을 진류왕(陳留王)으로 강등했다.
  • 선양으로 양위하였다. 사마염(진 무제)이 즉위해 진 왕조를 개창했고, 조환은 진류왕에 봉해져 업()으로 이거하였다. 이때 나이는 스무 살로 기록되어 있다.
 

기원후 302

  • 사망하였다. 진 무제의 아들 혜제 치세에 세상을 떠났고, 진 조정은 시호를 원()이라 올리고 제왕에 준하는 예로 장사하였다.
  • 즉위에서 선양까지의 핵심 맥락은 사마씨 섭정 촉한 멸망으로 외적 명분 확보 9수와 진왕 책봉 선양으로 요약된다.
  • 진대에 들어간 뒤에도 황제의 수레기와 의장, 종묘 제향 형식을 일정 범위 허용받는 등 예우를 받았다.
 

인물 카드

  • 이름 : 조환(曹奐, 246302)
  • () : 경명(景明)
  • 묘호 : 기록 없음(선양 후 진류왕으로 예우)
  • 시호 : 원제(元帝) 진 조정의 추존 시호이다
  • 출생 : 246
  • 출생지 : 한단 계통 기록 분류가 있으나 본문 서술상 특정 도시 단정은 어렵다는 견해가 있다
  • 사망 : 302
  • 사망지 : 진 왕조 치하(정확 지명 비정에는 견해 차가 있으나, 업 거주 기록이 핵심 단서이다)
  • 재위 : 260627~ 26624
  • 전임 : 조모(曹髦)
  • 후임 : 조위 황제로서의 후임은 없고, 선양을 받아 사마염(진 무제)이 즉위하였다 .

2025년 9월 18일 목요일

위 4대 후폐제 조모(後廢帝 曹髦, AD. 241~260년) : 재위 AD. 254~260년

4대 후폐제 조모(後廢帝 曹髦, AD. 241~260) : 재위 AD. 254~260

 

기원후 241출생

  • 조모는 조비(조위 문제)의 손자로, 부친은 동해정왕(東海定王) 조림(曹霖)이고, 자는 언사(彦士)이다.
 

기원후 244고귀향공에 봉해졌다.

  • 이는 제후왕의 아들 중 적장자가 아닌 자를 공으로 봉하는 위나라의 규정에 따른 조치이다.
 

기원후 249부친 조림 사망

  • 부친 조림이 사망하였다. 이때 조모의 형 조기가 동해왕 작위를 계승했다. 같은 해 사마의가 정권을 장악하며 사마씨가 실권을 확고히 했다.
  • 249년 이후 사마씨의 섭정 체제가 굳어졌고, 조모의 모든 시도는 이 구도를 전복하려는 성격을 띠었다. 문예적 재능과 정치적 의지의 간극이 사료 전반의 조모 평가를 형성한다.
 

기원후 251

  • 사마의가 사망하고, 장남 사마사가 섭정 권력을 승계하였다. 조위 조정의 실권은 계속 사마씨에게 있었다는 배경이다.
 

기원후 254

  • 112, 조방이 폐위된 뒤 황제로 즉위하였다. 태후가 종법ㆍ예제상 문제를 이유로 팽성왕 조거 대신 조모를 택해 옹립했고, 연호를 정원으로 개원했다. 즉위 당시 조모의 나이는 13세였다.
  • 조모는 본래 황제 서열에서 멀었으나, 조방 폐위 국면에서 태후의 명분 조정과 사마씨 권력 구도가 맞물리며 어린 나이에 옹립되었다는 점이 특징이다.
 

기원후 255

  • 변씨가 황후로 책립되었다. 변황후는 조모의 방계 친족(삼종) 계열로 기록된다.
 

기원후 256

  • 연호를 감로로 변경하였다. 즉위 초의 정원 연호가 끝나고 감로 연호가 시작되었다.
 

재위 기간 중의 성향과 시도

  • 조모는 총명하고 학문을 좋아하는 성품으로 묘사되며, 시문과 서화에도 재능을 보였다. 섭정 세력에게 빼앗긴 조정 권한을 되찾기 위해 여러 차례 주도권 회복을 도모했으나 번번이 좌절했다는 평가가 있다.
  • 조정의 실권이 사마사에서 사마소로 넘어간 뒤, 조모는 잠룡시를 지어 현실을 풍자하고 의지를 드러냈다. 이 작품이 사마소의 경계심을 자극했다는 서술이 전한다.
 

기원후 260쿠데타 결행과 시해 사건

  • 5월 조모는 왕침ㆍ왕경ㆍ왕업 등과 의논 후 궁중 근위 병력을 소집해 사마소 토벌을 결행했으나, 남궐 아래에서 가충이 지휘한 병력과 마주쳤고, 성제가 찌른 창에 맞아 즉사했다. 20세 미만의 나이였다. 사건 직후 사마소는 책임을 성제에게 전가해 삼족을 멸하고, 새 황제로 조환을 옹립했다.
  • 26062: 조모의 사망일이다. 정사 기록의 간지 대비를 통해 양력 62일로 비정된다. 장례는 한때 민례격으로 격하해 치르려 했으나, 반발로 왕례로 장사되었다는 기록이 전한다.
 

사후 영향

  • 조모의 시해는 조정과 민심에 큰 충격을 주었고, 사마소는 정치적 부담을 만회하기 위한 대외전(촉한 정벌) 명분 축적에 나섰다는 평가가 있다. 후대 당 현종 대의 화가 조패가 조모의 후손으로 전하며, 그의 회화가 시단과 화단에서 찬미되었다.
 

요약 정보

  • 이름 : 조모(曹髦, 241260)
  • () : 언사(彦士)
  • 묘호 : 후폐제(後廢帝)로 불리며, 공식 묘호는 전하지 않음
  • 시호 : 전하지 않음(재위 중 시해되어 공식 시호가 확정되지 않음)
  • 출생 : 241
  • 출생지 : 명시 기록 없음
  • 사망 : 26062
  • 사망지 : 낙양(洛陽)
  • 재위 : 254112~ 26062
  • 전임 : 조방(曹芳)
  • 후임 : 조환(曹奐)
  • 부친 : 동해정왕(東海定王) 조림(曹霖)
  • 배우자 : 황후(卞皇后) - 변륭(卞隆)의 딸, 255년 조모에 의해 황후로 책봉됨.
  • 후손 : 曹霸(조패)
    조모의 후손.
    당 현종 시기 활약한 유명 화가로, 문학과 서화에 능함.
    "文如植武如操字畫抵丕風流" 라는 평가를 받음.
    관직: 좌무위장군(左武衛將軍)
    시인 두보가 그의 그림을 찬양한 시 丹青引, 觀曹將軍畫馬圖를 지음.

위 3대 폐제 조방(廢帝 曹芳, AD. 232~274년) : 재위 AD. 239~254년

3대 폐제 조방(廢帝 曹芳, AD. 232~274) : 재위 AD. 239~254

 

기원후 232탄생

  • 조방(曹芳)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났으며, ()는 난경(蘭卿)이다.
  • 그는 위() 명제 조예(曹叡)의 양자(養子)이다.
  • 친부모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임성왕(任城王) 조해(曹楷)의 아들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조해는 조조(曹操)의 아들 조장(曹彰)의 아들이다.
  • 일부 기록에는 진황후(甄皇后)가 그의 부친이 불분명하다고 언급하기도 한다.
 

기원후 235

  • 9월 제왕(齊王)에 봉해졌다.
 

기원후 239

  • 1월 초 : 조예가 병이 위중해지자, 조방을 후계자로 지목했다 .
  • 122: 조예가 조방을 황태자로 책봉한 후 당일 사망했다. 당시 8세의 어린 나이로 조위(曹魏)3대 황제에 즉위했다.
  • 재위 기간은 239122일부터 2541017일까지이다.
  • 섭정 체제 : 조예는 조방을 대장군 조상(曹爽)과 태위(太尉) 사마의(司馬懿)에게 맡기며 보좌를 부탁했고, 이 두 사람이 어린 황제를 대신해 섭정을 시작했다.
 

기원후 240~249조상의 전횡과 사마의의 권력 장악

  • 조상의 전횡 : 섭정 초기, 조상과 사마의는 권력을 공유했으나, 조상은 사마의를 명목상의 태부(太傅)로 승진시키고 실권에서 배제한 채 국정을 장악했다.
  • 조상 휘하에는 당대의 인재 하안(何晏) 등이 등용되었으나, 사치와 권력 남용으로 점차 백성들의 원성을 샀다.
  • 연호 : 첫 번째 연호는 정시(正始)였다(240~249).
 

기원후 249고평릉의 변(高平陵之變)과 사마의의 실권 장악

  • 사마의는 조상이 조방을 모시고 조예의 능에 참배하러 나간 틈을 타 쿠데타를 일으켜 낙양을 장악했다.
  • 사마의는 조상을 모반죄로 주살하고 조상 일족을 숙청하며, 조위의 실질적인 권력을 장악했다.
 

기원후 251사마의 사망 및 사마사(司馬師)의 섭정

  • 사마의가 사망한 후, 그의 장남 사마사(司馬師)가 모든 권력을 승계하여 조위를 섭정하며 실질적인 최고 권력자가 되었다.
  • 조방은 사마씨의 꼭두각시 황제로 전락했다.
 

기원후 254폐위

  • 사마사가 곽태후(郭太后)를 앞세워 조방을 폐위시켰다.
  • 사마사는 조방이 덕행이 없고, 주색에 빠져 방탕하며, 국정을 돌보지 않고 신하들을 내치는 등 황제의 자질이 부족하다는 이유를 들어 폐위시켰다.
  • 폐위 후에는 다시 제왕(齊王)으로 강등되었다.
  • 새로운 황제로는 명제의 조카인 조모(曹髦)가 옹립되었다.
 

기원후 265()나라 건국 준비

  • 사마사의 동생 사마염(司馬炎)이 진왕(晉王)에 봉해졌다.
 

기원후 266서진(西晉) 건국

  • 사마염이 위()의 원제(元帝) 조환(曹奐)에게 선양받아 진()나라를 건국하자, 조방은 소릉공(邵陵公)으로 다시 강등되었다.
 

기원후 274사망

  • 4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사후 소릉여공(邵陵厲公)이라는 시호가 부여되었다.
  • 조방의 이름을 피하기 위해 황실의 정원이었던 방림원(芳林苑)을 화림원(華林苑)으로 개칭했다.
 

요약 정보

  • 이름 : 조방(曹芳)
  • () : 난경(蘭卿)
  • 묘호 : 없음 (황제 폐위 후 복원되지 않음)
  • 시호 : () : 소릉여공(邵陵厲公)
  • 출생 : 232
  • 출생지 : (명확한 기록 없음)
  • 사망 : 274(향년 43)
  • 사망지 : (명확한 기록 없음)
  • 재위: 239122~ 2541017(15268)
  • 전임: 위 명제(明帝) 조예(曹叡)
  • 후임: 위 고귀향공(高貴鄕公) 조모(曹髦)
  • 조방은 어린 나이에 황제에 즉위하여 조위의 3대 황제가 되었으나, 그의 재위 기간은 섭정인 조상(曹爽)과 사마의(司馬懿)의 권력 다툼과 사마씨의 권력 장악이라는 격동의 시기였다. 결국 사마사에 의해 폐위되고 조위의 명운이 사마씨에게 넘어가는 시작을 알린 비운의 황제로 평가받는다.
  • 외증조부(外天祖父) : 손종(孫鍾) - 조환의 외가 쪽 증조부로, 구체적인 행적은 알려지지 않음.
  • 양조부(嗣祖父) : 조비(曹丕) - 위나라 초대 황제, 시호는 세조 문황제(世祖文皇帝)
  • 양부(嗣父): 조예(曹叡) - 위나라 제2대 황제, 시호는 열조 명황제(烈祖明皇帝)
    조환은 본래 조우(曹宇)의 아들로, 조예 사후 입양되어 황위를 계승함.
  • 배우자
    • 황후 甄氏(견씨) : 정보 부족. 이름만 전해짐.
    • 황후 張氏(장씨) : 정보 부족. 이름만 전해짐.
    • 황후 王氏(왕씨) : 정보 부족. 이름만 전해짐.
    • 미인 張氏(장씨) : 황제의 후궁 중 하나로 미인(美人)’은 위진 시대 후궁의 품계 중 하나.
    • 귀인 邢氏(형씨) : 조환 사후인 258년경, 손환(孫奐)의 아들 손일(孫壹)과 결혼함. 이는 조환이 폐위된 후 후궁들의 재혼을 허락받았음을 보여줌.
    • 보림 李華(이화) : 품계는 보림(保林)’으로, 이는 후궁의 낮은 등급 중 하나.
    • 보림 劉勳(유훈) : 마찬가지로 보림품계의 후궁.
    • 禺婉(우완) : 신분 및 배경은 불명확하나, 이름이 전해진 후궁 중 한 명.

모우리(Eli Miller Mowry, 1878-1971) 한국명 모의리(牟義理), 미국 북장로회 선교사ㆍ목사

모우리 (Eli Miller Mowry, 1878-1971) 한국명 모의리 ( 牟義理 ) 미국 북장로회 선교사ㆍ목사 .   【 1878 년 】 미국 오하이오주 벨빌 (Bellville) 근교에서 사무엘 모우리 (Samuel Mowry, 1850-1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