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한 5대 상제 유륭(殤帝 劉隆, AD. 105~106년) : 재위 AD. 106년
【기원후 105년】
- 유륭(劉隆)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 늦가을인 10월 또는 11월에 태어났다는 기록이 있다.
- 아버지는 후한 화제(和帝) 유조(劉肇)이고, 어머니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후궁 중 한 명이다. 그는 화제의 어린 아들이었다.
- 화제 시기에는 자녀들의 유아 사망률이 높아, 미신에 따라 어린 유륭과 그의 형은 궁궐 밖 민간인 가정에 위탁되어 양육되었다.
【기원후 106년】
- 아버지 화제가 사망하자, 황태후 등수(鄧綏, 和熹皇后)가 어린 유륭을 황궁으로 불러들였다.
- 그의 형이 있었지만 자주 병을 앓는다는 이유로 등태후는 생후 백일이 갓 지난 유륭을 황태자로 삼고 곧바로 황제로 즉위시켰다. 그는 중국 역사상 가장 어린 나이에 즉위한 황제였다.
- 재위 기간은 기원후 106년 2월 13일부터 9월 21일까지였다.
- 이 시기의 연호는 연평(延平)이었다.
- 재위 기간 내내 실질적인 통치권은 황태후 등수가 장악하고 있었고, 등수의 오빠인 등즐(鄧騭)이 최고 실력자가 되었다.
- 등태후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화제의 조카이자 유륭의 사촌인 12세의 유호(劉祜, 훗날의 안제)를 낙양에 머물게 했다.
- 황제 즉위 후, 그의 형 유승(劉勝)은 평원왕(平原王)에 봉해졌다.
- 그의 통치 기간 동안 환관들의 국정 개입이 심했다고 전해진다.
- 기원후 106년 9월 21일, 병으로 인해 재위 220일 만에 1살이 채 안 된 나이로 사망했다.
- 이는 중국 역사상 가장 짧은 재위 기간이자 가장 어린 나이에 사망한 황제였다.
- 등태후는 상제가 친형보다 먼저 즉위했던 것에 대한 유승의 원한을 우려하여, 유승 대신 사촌인 유호(劉祜)를 새로운 황제(후한 안제)로 옹립했다.
- 사망 후, 요절했다는 의미의 ‘상(殤)’이 시호로 부여되어 ‘효상황제(孝殤皇帝)’라 불렸다.
- 낭비 방지를 위해 아버지 화제의 능에 함께 합장되었고, 따로 무덤이 만들어지지 않았다.
【요약 정보】
- 이름 : 유륭(劉隆)
- 묘호 : 없음
- 시호 : 효상황제(孝殤皇帝) : 상제(殤帝)는 줄임말
- 출생 : 기원후 105년 10월 또는 11월
- 출생지 : (민간 가정에 위탁되어 양육되었으며, 구체적 출생지는 명시되지 않음)
- 사망 : 기원후 106년 9월 21일 (향년 1세 미만)
- 사망지 : (낙양 궁궐 내로 추정)
- 부친 : 후한 화제(和帝) 유조(劉肇)
- 모친 : 화제의 이름 모를 후궁 (민간에 위탁 양육된 기록)
- 배우자 : 없음 (어린 나이에 사망)
- 자녀 : 없음 (어린 나이에 사망)
- 재위 : 기원후 106년 2월 13일 ~ 기원후 106년 9월 21일 (220일)
- 전임 : 후한 화제(和帝) 유조(劉肇)
- 후임 : 후한 안제(安帝) 유호(劉祜)
- 후한 상제 유륭은 생후 백일 만에 황제에 즉위했으나, 채 한 살도 되지 못한 채 병사하여 중국 역사상 가장 어린 황제이자 가장 짧은 기간 동안 재위한 황제로 기록된다 . 그의 짧은 치세는 사실상 황태후 등수의 수렴청정 기간이었으며, 후한 황실의 불안정한 후계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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