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근동] 천년 제국의 발자취 : 바빌론 역사를 지배한 왕들의 이야기(List of kings of Babylon)
1. 메소포타미아의 심장, 바빌론의 왕들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중심에 자리 잡았던 바빌론은 수천 년의 역사를 통해 수많은 왕들의 지배를 받으며 번영과 쇠퇴를 반복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심장으로서, 바빌론의 왕위는 단순한 권력을 넘어 신의 대리자로서 종교적, 문화적 상징성을 가졌다. 바빌론의 왕 목록은 초기 아모리족(Amorite) 군주들로부터 시작하여 이민족의 통치를 거쳐 결국에는 사라지는 바빌론의 기나긴 여정을 보여준다. 이들은 평화와 안정, 법의 집행을 담당하며 바빌로니아의 독특한 문화와 전통을 유지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2. 고바빌로니아 시대 : 함무라비의 황금기(아모리 왕조)
바빌론이 독립적인 왕국으로 강력하게 부상한 것은 기원전 19세기경이었다. 아모리족 왕조에 의해 통치된 고바빌로니아 제국(Old Babylonian Empire) 시대는 바빌론의 첫 번째 전성기였다. 특히 함무라비(Hammurabi, 재위 기원전 1792–1750) 왕은 고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입법자 중 한 명으로 기억된다. 그는 '함무라비 법전(Code of Hammurabi)'을 편찬하여 법치주의의 기틀을 마련했고, 메소포타미아의 여러 도시 국가들을 통합하여 광대한 제국을 건설했다. 함무라비의 통치 아래 바빌론은 정치, 경제, 문화 모든 면에서 번영을 누렸으며, 그의 업적은 후대 바빌론 왕들에게 이상적인 통치자의 모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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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무라비 시대의 고바빌로니아 영역 |
3. 중기 바빌로니아 시대 : 카시트 왕조와 이민족의 부침
함무라비 제국은 히타이트족(Hittites)의 약탈과 함께 쇠퇴했고, 곧이어 카시트 왕조(Kassite dynasty)가 등장하여 기원전 1595년부터 1155년까지 약 4세기 동안 바빌론을 통치했다. 카시트 왕들은 이민족이었지만, 바빌론의 문화와 종교를 존중하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이들은 바빌론의 기존 행정 체계를 유지하고 발전시켰으며, 두르-쿠리갈주(Dur-Kurigalzu)와 같은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는 등 상대적인 안정과 번영을 가져왔다.
카시트 왕조가 엘람족(Elamites)의 침략으로 멸망한 후, 바빌론은 짧고 혼란스러운 왕조들이 연이어 등장하는 시기를 겪었다. 이신 제2왕조(Second Isin dynasty)의 네부카드네자르 1세(Nebuchadrezzar I, 재위 기원전 1119년경–1098년경)는 엘람에 빼앗겼던 바빌론의 수호신 마르둑(Marduk) 신상을 되찾아오며 잠시 부흥을 이끌었다. 그러나 이후 씨랜드 제2왕조(Second Sealand dynasty), 바지 왕조(Bazi Dynasty), 그리고 엘람 왕조(Elamite Dynasty)와 같은 단명 왕조들은 메소포타미아 암흑기 속에서 외부 침입과 내부 혼란에 시달리며 겨우 명맥을 유지했다.
4. 신아시리아의 그림자 : 외세 지배의 시작
기원전 8세기 중반부터 바빌론은 북쪽의 신흥 강대국, 신아시리아 제국(Neo-Assyrian Empire)의 강력한 압력에 직면했다. 아시리아는 바빌론을 직접 통치하기 시작했는데 (바빌론의 제9 왕조 (아시리아), 기원전 732–626), 아시리아 왕 티글라트-필레세르 3세(Tiglath-Pileser III, 재위 기원전 745–727)는 바빌론의 왕위를 겸임하기도 했다. 아시리아의 통치 아래 바빌론인들은 끊임없이 반란을 일으켰고, 이에 아시리아 왕 센나케리브(Sennacherib, 재위 기원전 705–681)는 기원전 689년 바빌론을 완전히 파괴하는 극단적인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비록 그의 아들 에살하돈(Esarhaddon, 재위 기원전 681–669)이 도시를 재건했지만, 바빌론은 오랜 기간 아시리아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5. 신바빌로니아 제국 : 바빌론의 마지막 영광(칼데아 왕조)
아시리아 제국이 쇠퇴기에 접어들자, 바빌론은 마지막 독립의 기회를 잡았다. 기원전 626년, 나보폴라사르(Nabopolassar, 재위 기원전 626–605)는 독립을 선언하고 신바빌로니아 제국(Neo-Babylonian Empire)을 창건했다. 그의 아들 네부카드네자르 2세(Nebuchadrezzar II, 재위 기원전 605–562)의 통치기는 신바빌로니아 제국의 최전성기이자 바빌론의 마지막 황금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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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바빌로니아 제국 영토 |
네부카드네자르 2세는 아시리아 제국의 잔재를 완전히 소멸시키고, 시리아와 레반트를 정복하며 광대한 제국을 건설했다. 그는 예루살렘을 함락시키고 유대인들을 바빌론으로 끌고 온 '바빌론 유수(Babylonian captivity)'로도 유명하다. 또한 그는 바빌론을 고대 세계에서 가장 웅장하고 아름다운 도시로 재건했다. 전설적인 '바빌론의 공중 정원(Hanging Gardens of Babylon)'과 거대한 마르둑 신전 에테멘앙키(Etemenanki)와 에사가일라(Esagila)가 바로 이 시기에 건축되었다. 그의 강력한 통치는 바빌론 문명의 위용을 다시금 세계에 알렸다.
하지만 네부카드네자르 2세 사후, 왕위 계승이 불안정해지면서 제국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마지막 왕 나보니두스(Nabonidus, 재위 기원전 556–539)는 종교적 정책으로 마르둑 사제들과 갈등을 겪었고, 오랜 기간 수도를 비워 제국의 안정성을 약화시켰다.
6. 페르시아, 헬레니즘, 파르티아의 지배 : 영원한 몰락의 길
나보니두스의 통치 말기, 동쪽에서는 새로운 강대국 아케메네스 제국(Achaemenid Empire)의 키루스 대제(Cyrus the Great, 재위 기원전 559–530)가 부상했다. 기원전 539년, 키루스 대제는 바빌론을 정복하며 신바빌로니아 제국을 종식시켰다(제11 왕조 : 아케메네스), 기원전 539–331). 바빌론은 이제 아케메네스 제국의 한 주가 되었지만, 페르시아 왕들은 바빌론의 문화를 존중하는 정책을 펼쳤다.
기원전 331년,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Alexander the Great, 재위 기원전 356–323)이 페르시아 제국을 멸망시키고 바빌론을 차지했다(제12 왕조 : 아르게아드), 기원전 331–305). 알렉산드로스는 바빌론을 제국의 동방 수도로 삼으려 했지만,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바빌론은 그의 장군인 셀레우코스 1세 니카토르(Seleucus I Nicator)의 지배 아래 놓였다 (제13 왕조 : 셀레우코스, 기원전 305–141). 셀레우코스 제국은 헬레니즘 문화를 전파하며 그리스식 도시들을 건설했지만, 바빌론의 중요성은 점차 약화되었다.
기원전 2세기 중반부터는 이란계 파르티아 제국(Parthian Empire)이 등장하여 메소포타미아를 점령하고 바빌론을 지배했다 (제14 왕조 : 파르티아, 기원전 141–AD 224). 파르티아의 통치 아래 바빌론은 서서히 쇠퇴하고, 중요성도 줄어들었다. 로마와의 끊임없는 전쟁과 내부 혼란 속에서 파르티아 제국마저 멸망한 후, 바빌론은 더 이상 고대 근동의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점차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7. 바빌론 왕조의 유산
바빌론 왕들의 역사는 한 문명의 생존, 적응, 그리고 영원한 영향력을 보여주는 증거다. 이들은 단순한 지배자를 넘어 법, 예술, 과학(특히 천문학), 종교의 수호자였다. 비록 바빌론은 결국 멸망했지만, 그들이 남긴 문화적, 지적 유산은 고대 근동과 후대 서양 문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바빌론의 왕들은 한때 세계를 지배했던 찬란한 문명의 영원한 상징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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