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근동] 시랜드 제2왕조(Second Sealand dynasty)의 바빌론 통치 : 기원전 1021년 ~ 1001년
1. 역사 속 그림자 : 시랜드 제2왕조의 등장 배경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바빌론은 역사의 격랑 속에서 수많은 왕조의 흥망성쇠를 겪었다. 카사이트 왕조(Kassite dynasty)가 엘람(Elam)의 침략으로 막을 내리고, 이신 제2왕조(Second Isin dynasty)가 바빌론을 재건하며 잠시 영광을 되찾는 듯했다. 특히 네부카드네자르 1세(Nebuchadrezzar I, 재위 기원전 1119년경–1098년경) 같은 강력한 왕도 있었다. 하지만 이 영광도 오래가지 못했다.
기원전 11세기 초, 바빌로니아는 다시 한번 혼돈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된다. 북쪽에서는 신아시리아 제국(Neo-Assyrian Empire)이 강력하게 부상하고 있었고, 동쪽에서는 엘람이 여전히 위협적인 존재였다. 무엇보다 바빌로니아 내부로는 아람족(Arameans)과 수투족(Sutu) 같은 유목민들이 끊임없이 침투해 오면서 정치적, 사회적 안정을 심각하게 위협했다. 이 시기를 ‘메소포타미아 암흑기’ 또는 ‘철기 시대 전환기’라고 부르는데, 중앙 정부의 권위가 약화되고 기록이 부족해서 역사를 파악하기 어려운 때였다.
바로 이 혼란의 시기에 짧고도 강렬하게 등장했다가 사라진 왕조가 있었으니, 그게 바로 시랜드 제2왕조(Second Sealand dynasty)다. ‘시랜드 왕조’라는 이름은 메소포타미아 남부, 페르시아만(Persian Gulf) 근처의 습지대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하는데, 이 지역은 중앙 정부의 통제가 미치기 어려운 독자적인 세력들이 존재하던 곳이었다.
2. 베일에 싸인 통치 기간과 왕들 : 왕조의 짧은 생명력
시랜드 제2왕조는 대략 기원전 1020년부터 기원전 1000년까지, 불과 20여 년 동안만 바빌론을 지배했던 매우 짧은 왕조다. 바빌론의 왕 목록(Babylonian King List)에서는 '제5 왕조(Dynasty V)'로 기록되기도 한다. 이 짧은 기간 동안 통치했던 왕들은 단 세 명으로 알려져 있다 .
심바르-시후(Simbar-Shihu, 재위 기원전 1026–1009) : 시랜드 제2왕조의 첫 번째 왕이자 실질적인 창건자로 여겨지는 인물이다. 흥미롭게도 그의 이름은 '카시트어(Kassitic)' 즉 카사이트족의 언어에서 유래하는데, 이는 그가 카사이트족 출신이었거나, 카사이트 문화와 연관이 있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당시의 불안정한 상황에서 강력한 리더십으로 왕권을 찬탈하고 새로운 왕조를 세운 '찬탈자(usurper)'로 언급되기도 한다. 그는 엘람의 약탈로 피폐해진 바빌론을 통치해야 했고, 아람족의 위협에도 맞서야 하는 등 어려운 과제를 안고 있었을 것이다.
울마쉬-샤킨-슈미(Eulmash-shakin-shumi, 재위 기원전 1009–1002) : 심바르-시후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지만, 그의 통치에 대한 기록은 매우 드물다. 아마도 전임자와 마찬가지로 바빌로니아 내부의 혼란과 외부의 압력 속에서 힘든 통치를 이어갔을 것으로 보인다.
나부-무킨-아플리(Nabu-mukin-apli, 재위 기원전 1002–986) : 시랜드 제2왕조의 마지막 왕으로 알려져 있지만, 일각에서는 그를 제2 해양 왕조가 아닌 뒤이은 '바지 왕조(Bazi dynasty)'의 첫 번째 왕으로 보기도 한다. 이는 이 시기 바빌론의 역사가 얼마나 복잡하고 불확실한지 보여주는 단면이기도 하다. 그의 통치 기간에 대한 정보도 많지 않으며, 아마도 아람족의 압력이 최고조에 달했던 시기였을 것이다.
이 왕조에 대한 정보가 극히 제한적인 이유는 당시 바빌로니아 전체가 대혼란과 '암흑기'를 겪고 있었기 때문이다. 체계적인 기록을 남길 여유가 없었을 것이고, 약탈과 파괴로 인해 남아있는 기록마저 소실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3. 암흑기의 바빌론 : 왕조의 특징과 당면 과제
시랜드 제2왕조는 강력한 중앙집권적인 통치를 행사하기 어려웠던 시기에 존재했다. 이들은 다음과 같은 특징과 도전에 직면했다:
- 불안정한 영토와 통치 : 왕조의 통치력은 바빌로니아 남부, 즉 해양 지역에 주로 한정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메소포타미아 전체를 아우르는 통치권은 행사하지 못했고, 심지어 바빌론 도시 자체도 그들의 영향권 아래에 있었는지 불분명한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이는 이전의 카사이트 왕조나 이신 제2왕조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 아람족의 위협 : 이 시기의 가장 큰 골칫거리는 아람족의 끊임없는 침투였다. 아람족은 시리아(Syria) 사막 지대에서 건너와 메소포타미아 곳곳에 정착지를 건설하며 기존의 정주 문명에 심각한 타격을 입혔다. 농업 생산량은 감소하고, 교역로는 위협받았으며, 바빌로니아의 주요 도시들은 고립되거나 쇠락했다. 시랜드 제2왕조의 왕들도 이런 아람족의 침입을 효과적으로 막아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 기록의 부족 : 이 왕조에 대한 고고학적 발굴이나 기록은 매우 희박하다. 몇몇 왕 목록에서 이름만 언급될 뿐, 이들의 업적이나 통치 방식, 문화적 기여에 대한 상세한 정보는 거의 없다. 이는 왕조 자체가 워낙 짧고, 당시의 혼란으로 인해 체계적인 기록이 이루어지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역사가들은 이 시기를 '수수께끼 같다(enigmatic)'고 표현하기도 한다 .
- 정치적 혼란 : 왕들이 대부분 '찬탈자'로 언급된다는 점은 당시의 정치적 안정성이 매우 취약했음을 보여준다. 한 왕조가 안정적으로 권력을 계승하기보다는, 힘의 논리에 따라 왕좌가 바뀌었을 가능성이 크다.
4. 고대 바빌론의 암흑 속을 잇는 다리 : 시랜드 제2왕조의 역사적 의미
시랜드 제2왕조는 비록 짧고, 강력하지 못했으며, 역사적 기록도 미미하지만, 고대 바빌론 역사에서 나름의 의미를 가진다.
- 혼란의 상징 : 이 왕조는 카사이트 왕조의 몰락 이후 바빌론이 겪었던 '메소포타미아 암흑기'를 가장 잘 보여주는 상징과도 같다. 중앙 권력이 무너지고, 외부 세력의 침투가 극심했으며, 정치적 혼란이 지속되던 시기의 모습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 연속성의 유지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짧은 왕조의 존재는 바빌론이라는 문명이 완전히 단절되지 않고 명맥을 이어갔음을 보여준다. 비록 지배 지역과 영향력은 줄었지만, 왕 목록에 그 이름이 올라 있다는 것은 어떤 형태로든 바빌론의 왕위 계승과 통치가 이어졌다는 증거가 된다.
- 변화의 시기 : 이 왕조가 있었던 시기는 '청동기 시대의 붕괴(Bronze Age Collapse)' 이후, 고대 근동 세계가 철기 시대로 접어들면서 새로운 정치 지형이 형성되던 격변기였다. 고대 대제국들이 쇠락하고, 새로운 민족과 부족들이 등장하며 지배권을 다투던 시기에 시랜드 제2왕조는 바빌론 내부의 불안정을 여실히 드러냈다.
- 미스터리와 호기심 : 정보가 부족하다는 점은 역설적으로 역사가들과 고고학자들에게 더 많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요소이기도 하다. 앞으로 더 많은 유적과 기록이 발굴된다면, 이 짧은 왕조에 대한 새로운 사실들이 밝혀질 수도 있을 것이다.
5. 짧은 막을 내리며 : 다음 시대로의 전환
시랜드 제2왕조는 나부-무킨-아플리(Nabu-mukin-apli) 왕 이후, 기원전 1000년경에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진다. 이들을 이어 바빌론을 통치한 왕조는 바지 왕조(Bazi Dynasty)와 엘람 왕조(Elamite Dynasty) 등 여러 짧은 왕조들이었다. 이들은 모두 아람족의 끊임없는 압박과 내부 혼란 속에서 간신히 명맥을 유지해야 했다.
바빌론은 한동안 강력한 중앙집권적인 통치를 재확립하지 못하고 혼란스러운 시기를 보내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암흑기와 여러 단명 왕조들의 존재는 훗날 바빌론이 다시금 강대국으로 부상할 기반을 다지는 시기였다고 볼 수도 있다. 이 혼란의 시기를 거치며 바빌론은 아람족과의 관계를 재정립하고, 지역적인 통치 기반을 강화하는 등 새로운 도전을 통해 생존 방식을 터득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시랜드 제2왕조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역동적이고 때로는 잔인했던 시대를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비록 빛나는 업적이나 광대한 제국을 남기지는 못했지만, 바빌론 문명이 완전히 붕괴하지 않고 다음 시대로 이어질 수 있도록 연결고리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역사의 빈 페이지 속에 숨겨진 그들의 이야기는 어쩌면 우리에게 '침묵 속의 생존'이라는 중요한 교훈을 던져주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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