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이집트] 이집트 제2중간기 : 분열과 혼란 속에서 싹튼 재통일의 씨앗(기원전 약 1782~1550년경)
1. 중왕국의 붕괴
고대 이집트의 역사는 흥망성쇠를 거듭했다. 그중에서도 제2중간기(Second Intermediate Period, 기원전 1782~1550년경)는 중앙집권적인 권력이 약화되고 이집트가 여러 세력으로 분열되었던 혼란의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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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중간기의 이집트 |
1) 제13왕조의 등장과 약화
강력했던 중왕국(Middle Kingdom) 제12왕조가 막을 내린 후, 제13왕조(Thirteenth Dynasty)가 그 뒤를 이었다. 그러나 제13왕조의 파라오들은 강력한 전임자들처럼 국가 전체를 효과적으로 통제하지 못했다. 왕권은 점차 약해졌고, 중앙 정부는 이집트 전역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관료들과 지방 통치자들의 권력이 증대되었고, 이는 다시 왕권 약화를 부추기는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참고] 이집트 제13왕조
2) 테베로의 이주와 정치적 중심의 변화
중앙 정부의 약화와 함께, 정치적 중심지였던 이집트 북부 멤피스(Memphis)는 점점 통치력을 잃어갔다. 이에 따라 왕실과 주요 관료들이 남부 이집트의 테베(Thebes)로 이주하면서, 이 도시는 새로운 정치적, 문화적 구심점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러한 지리적 이동은 향후 이집트 역사의 전개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2. 과도기 시대의 다원적인 지배
제2중간기는 여러 왕조가 이집트 영토를 분할 통치하며 난립했던 시기였다. 이 시기 이집트는 외세인 힉소스(Hyksos)의 침략과 함께 다양한 지역 왕조들의 흥망성쇠를 겪었다.
1) 제14왕조(14th Dynasty)
제14왕조는 제13왕조와 동시대에 동부 델타(Eastern Delta) 지역에 기반을 두었던 왕조다. 이들은 아바리스(Avaris)를 수도로 삼았으나, 대부분 카나안(Canaanite) 출신으로 이집트인이 아니었다. 짧은 기간 동안 독립적인 세력으로 존재하다가 결국 힉소스의 제15왕조에게 흡수된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 이집트 제14왕조
2) 제15왕조(15th Dynasty) : 힉소스의 지배
제15왕조는 고대 이집트 역사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힉소스(Hyksos)로 알려진 외세 지배 왕조다. 이들은 아시아계, 특히 서부 셈족(West Semitic) 계통으로 추정되며, 기원전 1650년경 이집트 북부를 침략하여 아바리스(Avaris)를 수도로 삼고 강력한 세력을 구축했다. 힉소스 왕들은 이집트 문화를 받아들이고 파라오의 칭호를 사용하며 이집트의 행정 방식을 채택하는 등 유화적인 정책을 펴기도 했지만, 이들의 지배는 이집트인들에게는 외세의 억압으로 인식되었다. 제15왕조는 이 시기 이집트에서 가장 강력한 왕조였으며, 남부의 이집트인 왕조들에게까지 영향력을 행사했다.
[참고] 이집트 제15왕조
3) 아비도스 왕조(Abydos Dynasty)
아비도스 왕조는 그 존재 자체가 아직도 논쟁 중인 가설의 왕조다. 학자 킴 리홀트(Kim Ryholt)에 의해 그 존재가 구체적으로 제시되었는데, 상부 이집트의 아비도스(Abydos) 지역에 기반을 두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제13왕조와 제16왕조, 그리고 힉소스 제15왕조와 동시대에 존재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2014년 아비도스에서 파라오 세네브카이(Senebkay)의 무덤이 발견되면서 이 가설에 힘이 실렸지만, 여전히 학계에서는 다양한 견해가 오가고 있다.
[참고] 이집트 아비도스 왕조
4) 제16왕조(16th Dynasty)
제16왕조는 상부 이집트 테베(Thebes) 지역에 기반을 두었지만, 초기에는 힉소스(제15왕조)의 봉신(vassal) 관계였을 가능성도 있다. 이들은 제15왕조와의 지속적인 충돌과 기근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짧고 혼란스러운 통치를 경험했다. 비록 그들의 통치력은 제한적이었지만, 테베를 중심으로 이집트의 정통성을 이어가려는 노력을 했다.
[참고] 이집트 제16왕조
5) 제17왕조(17th Dynasty)
제17왕조는 테베(Thebes)를 기반으로 점차 강력한 세력을 구축하며 힉소스(Hyksos)에 대한 적극적인 저항을 시작한 왕조다. 세케넨레 타오(Seqenenre Tao)와 그의 아들 카모세(Kamose)와 같은 전사 파라오들이 힉소스와의 전투를 이끌었으며, 이는 이집트 재통일의 중요한 기반을 마련했다. 이들은 힉소스의 지배를 종식시키려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참고] 이집트 제17왕조
3. 재통일
제2중간기의 혼란은 결국 제17왕조의 노력으로 종식되고 이집트는 다시 하나의 통일된 왕국으로 거듭난다.
아흐모세 1세의 위대한 업적
제17왕조의 마지막 왕 카모세(Kamose)가 힉소스와의 전쟁 중 사망한 후, 그의 동생 아흐모세 1세(Ahmose I, 재위 기원전 1550~1525년경)가 왕위를 계승했다. 아흐모세 1세는 힉소스 세력을 완전히 축출하는 데 성공하며, 마침내 힉소스의 수도 아바리스(Avaris)를 정복했다. 그는 이어서 남부 팔레스타인(Palestine)까지 추격하여 힉소스 세력을 완전히 몰아냈다.
이러한 재통일 전쟁의 승리는 이집트 역사상 가장 번영한 시대인 신왕국(New Kingdom)의 시작을 알리는 기념비적인 사건이 되었다. 아흐모세 1세는 중앙집권적인 강력한 국가를 재건하고, 이집트는 다시 한 번 고대 세계의 강대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다.
4. 유전적 영향에 대한 논의
제2중간기의 외세 지배와 다양한 민족 간의 교류는 이집트 인구의 유전적 구성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고고학적 증거에 따르면 힉소스 시대에는 아시아인과의 문화적 교류가 활발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집트에서 발견된 힉소스의 유물이나 문화 양식은 그들의 아시아적 기원을 명확히 보여준다.
그러나 힉소스 침략이 이집트 인구의 유전적 구성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하게 밝혀진 바가 많지 않다. 고대 DNA 연구는 이 분야에서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수 있지만, 아직 연구가 활발히 진행 중이며 표본의 한계 등으로 인해 결론을 내리기에는 이르다. 다만, 일반적인 역사 연구에서는 인구 이동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유전적 혼합이 대규모로 일어났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유전적 혼합은 지역이나 계층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 대한 더 많은 고고학적, 유전학적 연구가 필요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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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Wikimedia Commons | 퍼블릭 도메인(Public Dom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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