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5일 금요일

[고대 이집트] 이집트 제15왕조 : 힉소스의 통치(기원전 약 1650~1550년경)

[고대 이집트] 이집트 제15왕조 : 힉소스의 통치(기원전 약 1650~1550년경)

 

1. 외래 통치자들의 시대: 고대 이집트 제15왕조, 힉소스의 통치

 
고대 이집트 제15왕조(Dynasty XV, 기원전 약 1650~ 기원전 약 1550)는 제2중간기(Second Intermediate Period)에 이집트를 지배했던 강력한 외래 왕조, 힉소스(Hyksos)를 의미한다. 이 시기는 강력했던 중왕국(Middle Kingdom)의 통일이 무너지고 이집트가 여러 세력으로 분열되었던 혼란의 시대였다. 힉소스는 나일강 델타 지역에 수도 아바리스(Avaris)를 건설하고, 약 한 세기 동안 북부 이집트를 지배하며 이집트 역사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겼다. 이들의 등장은 이집트 역사상 전례 없는 일이었고, 훗날 이집트 민족주의와 신왕국(New Kingdom)의 재통일 시대를 이끄는 계기가 되었다.
 

2. 왕조의 역사 : 이집트의 지배자가 되다

 
15왕조의 등장은 고대 이집트의 중앙집권적 통치 체제가 점차 약화되고 있던 제13왕조와 제14왕조의 쇠퇴와 궤를 같이한다. 힉소스는 처음부터 이집트를 침략한 단일 민족의 군대가 아니었다. 그들은 시나이 반도와 근동 지역, 즉 서아시아에서 온 셈족 계열의 이민자들이며, 12왕조 시대부터 델타 지역에 점진적으로 유입되어 정착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농업 기술자와 장인, 상인으로서 이집트 사회에 서서히 뿌리를 내렸던 것이다.
 
13왕조와 제14왕조가 기근과 내부 분열로 약해지자, 델타 지역에 이미 상당한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던 이들은 자신들의 세력을 규합하여 기원전 약 1650년경 이집트의 지배권을 장악한다. 마네토(Manetho)와 같은 후대 이집트 역사가들은 힉소스의 등장을 폭력적인 침략으로 묘사했지만, 현대 고고학적 증거들은 보다 점진적인 권력 이양이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들은 델타 동부에 아바리스라는 새로운 수도를 건설하고, 이곳을 거점으로 이집트 북부를 효과적으로 통치했다.
 
15왕조는 강력한 힉소스 파라오들을 중심으로 안정적인 통치 기반을 마련했다. 하지만 이들의 통치 기간 내내 이집트 전체를 지배한 것은 아니었다. 이집트 중부와 상이집트에서는 테베(Thebes)에 기반을 둔 제16왕조와 제17왕조가 독립적인 세력을 유지하며 힉소스와 대립했다. 15왕조는 결국 제17왕조의 테베 파라오들, 특히 세케넨레 타오 2(Seqenenre Tao II, 재위 기원전 1560년대), 카모세(Kamose, 재위 기원전 15551550), 그리고 아흐모세 1(Ahmose I, 재위 기원전 15501525)의 끈질긴 저항과 군사적 공세에 의해 멸망하게 된다. 아흐모세 1세는 힉소스를 이집트에서 완전히 몰아내고 새로운 신왕국 시대를 열게 된다.
 

3. 정체성: 힉소스, 그들은 누구인가

 
'힉소스(Hyksos)'라는 이름은 이집트어로 '헤카 카스트(ḥḳw kswt)', '외국의 지배자들(rulers of foreign lands)'이라는 뜻에서 유래했다. 이는 그들이 이집트인이 아닌 외부 출신이었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이들은 단일한 민족 집단이라기보다는, 셈족어를 사용하던 근동 지역의 다양한 민족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된 느슨한 연합체였다. 여기에는 가나안(Canaanites), 아모리인(Amorites), 후르리인(Hurrians) 등이 포함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힉소스는 이집트를 통치하면서 이집트 문화를 상당히 수용했다. 그들은 이집트식 파라오 칭호를 사용하고, 이집트 문자를 배웠으며, 이집트의 행정 시스템을 유지했다. 심지어 이집트 신앙까지 받아들여 이집트 신들에게 숭배를 바쳤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은 자신들의 고유한 문화적 요소들도 유지했다. 예를 들어, 그들은 이집트에 복합궁(composite bow), 강력한 청동 단검, 말과 전차(chariot) 등 혁신적인 군사 기술을 도입했는데, 이는 당시 이집트 군대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이러한 문화적 상호 작용은 이집트 사회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4. 영토 범위: 델타에서 중부 이집트까지

 
15왕조의 통치 범위는 주로 나일강 삼각주 지역과 인접한 중부 이집트 지역이었다. 이들의 수도인 아바리스는 델타 동부에 위치했으며, 이곳은 외부와의 교역이 활발한 중요한 항구 도시이자 군사 요충지였다. 고고학 발굴에 따르면, 아바리스는 힉소스 통치 시기에 급속도로 발전하여 웅장한 궁전과 사원, 항구를 갖춘 대규모 도시가 되었다.
 
힉소스는 이집트 전역을 직접 통치하지는 못했다. 남부 이집트, 특히 테베를 중심으로 한 지역은 제16왕조와 제17왕조라는 이집트인 파라오들이 지배하고 있었다. 15왕조는 이들 남부의 이집트인 왕조들에게 어느 정도의 조공을 강요하며 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했지만, 완전한 통제권을 확보하지는 못했다. 예를 들어, 일부 학자들은 테베 파라오들이 힉소스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누비아(Nubia)의 쿠시 왕국(Kingdom of Kush)에 접근하는 것을 금지당했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테베의 파라오들은 점차 군사력을 강화하며 북진을 준비하고 있었다.
 
힉소스 시대의 이집트

5. 무역: 아바리스, 지중해 무역의 중심지

 
15왕조 시대는 이집트의 대외 무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던 시기이기도 하다. 수도 아바리스는 지중해 무역의 중요한 허브 역할을 했다. 힉소스는 근동 지역의 상업 네트워크와 연결되어 있었으며, 이를 통해 이집트는 지중해 세계와 긴밀하게 교류했다.
 
아바리스의 고고학적 유적에서는 시리아, 팔레스타인, 키프로스(Cyprus), 크레타(Crete) 등 지중해 각지에서 온 다양한 외국 문물의 흔적이 발견된다. 이집트는 이들을 통해 목재, 금속, 올리브유, 포도주 등 다양한 원자재와 사치품을 수입하고, 자국의 농산물과 공예품을 수출했다. 이러한 활발한 무역은 제15왕조의 경제적 번영에 크게 기여했고, 이집트 문명에 새로운 기술과 사상이 유입되는 통로 역할을 했다. 특히 키프로스 문명과의 접촉은 도기 제작 기술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6. 종교: 셈족 신들과 이집트 신들의 조화

 
힉소스는 이집트의 전통적인 종교를 대체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이집트의 신들을 숭배하며 종교적 통합을 꾀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고유한 셈족 신들을 이집트 신들과 동일시하는 경향을 보였다. 예를 들어, 그들의 주요 신 중 하나였던 셈족의 폭풍신 바알(Baal)은 이집트의 폭풍신 세트(Seth)와 동일시되어 숭배되었다. 아바리스에는 세트 신전이 건설되기도 했다.
 
힉소스 파라오들은 또한 지역의 전통적인 이집트 신전들을 후원하고, 12왕조 파라오들의 유물을 재활용하여 자신들의 권위를 정당화하려는 시도를 하기도 했다. 이는 그들이 이집트인들의 종교적 감정을 존중하고, 자신들의 통치를 이집트의 전통적인 질서 안에 편입시키려 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테베 지역의 이집트인들은 그들의 이집트인 파라오들과 전통적인 신 아문(Amun)에 대한 충성심을 계속 유지했다.
 

7. 15왕조의 파라오들

 
  • 살리티스(Salitis) : 마네토에 의해 15왕조의 첫 왕으로 언급됨; 고고학적으로 확인된 인물과는 동일시되지 않음. 마네토에 따르면 19년 통치.
  • 셈켄(Semqen) : 투린 왕명부에 언급됨. Ryholt에 따르면 초기 힉소스 왕, 15왕조 첫 번째 왕일 가능성 있음; von Beckerath16왕조에 배정함.
  • 아페라나트(Aperanat) : 투린 왕명부에 언급됨. Ryholt에 따르면 초기 힉소스 왕, 15왕조 두 번째 왕일 가능성 있음; von Beckerath16왕조에 배정함.
  • 카이안(Khyan) : 10년 이상 통치.
  • 야나시(Yanassi) : 카이안의 장남, 마네토의 ‘Iannas’ 왕 언급의 기원일 가능성 있음.
  • 사키르-하르(Sakir-Har) : 아바리스에서 발견된 문틀에 힉소스 왕으로 이름이 있음. 통치 순서는 불확실.
  • 아포피스(Apophis) : 기원전 약 1590?1550. 40년 이상 통치.
  • 카무디(Khamudi) : 기원전 약 15501540.
 

8. 아페피(Apepi)라는 이름의 왕들

 
15왕조의 가장 강력하고 오랜 기간 통치한 파라오는 아페피(Apepi, 또는 Apophis)라는 이름의 왕이다. 역사적으로 아페피라는 이름의 힉소스 왕이 한 명이었는지, 두 명이었는지, 혹은 세 명이었는지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 논쟁이 있다. 일반적으로 가장 중요하고 오랜 기간 통치한 아페피 1(Apepi I, 재위 기원전 1590-1550년경)가 핵심 인물로 간주된다. 그는 약 40년 이상 통치하며 힉소스 왕조의 절정기를 이끌었다.
 
아페피는 테베의 파라오들과 격렬하게 대립했으며, 특히 제17왕조의 파라오 세케넨레 타오 2세와 카모세와 직접적인 충돌을 겪었다. 세케넨레 타오 2세는 아페피와의 전투에서 전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흔적을 남겼고, 카모세는 아페피에 대한 공격적인 군사 원정을 단행하며 힉소스의 수도 아바리스까지 진격했다. 아페피는 이집트 통치자들에게 있어서 외세 지배의 상징이었으며, 훗날 신왕국의 파라오 아흐모세 1세에 의해 완전히 이집트에서 축출된다.
 
=-=-=-=-=-=-=-=-=
이미지 출처: Wikimedia Commons | 퍼블릭 도메인(Public Domain)

댓글 없음:

댓글 쓰기

참고: 블로그의 회원만 댓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

모우리(Eli Miller Mowry, 1878-1971) 한국명 모의리(牟義理), 미국 북장로회 선교사ㆍ목사

모우리 (Eli Miller Mowry, 1878-1971) 한국명 모의리 ( 牟義理 ) 미국 북장로회 선교사ㆍ목사 .   【 1878 년 】 미국 오하이오주 벨빌 (Bellville) 근교에서 사무엘 모우리 (Samuel Mowry, 1850-1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