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이집트] 이집트 제13왕조 : 흔들리는 왕권의 시대(기원전 약 1803~1649년경)
고대 이집트 제13왕조(Dynasty XIII, 기원전 약 1803년 ~ 기원전 약 1649년)는 약 154년간 지속된 시기이다. 이 왕조는 종종 중왕국(Middle Kingdom)의 마지막 부분으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많은 학자들은 이를 제14왕조, 제15왕조 등과 함께 제2중간기(Second Intermediate Period)의 시작으로 간주한다. 강력했던 제12왕조의 영광이 저물고, 왕권이 약화되며 이집트가 다시 분열과 혼란을 겪기 시작한 시기인 것이다. 제13왕조의 역사는 중앙집권 체제의 붕괴, 외부 세력의 부상, 그리고 끝없는 정치적 불안정의 기록이다.
1. 중왕국 말기의 그림자: 왕조의 시작
제13왕조는 고대 이집트 역사상 가장 번영했던 제12왕조의 바로 뒤를 잇는다. 제12왕조의 마지막 파라오인 소베크네페루(Sobekneferu, 재위 기원전 약 1807-1803년)는 강력한 남성 후계자를 남기지 못했고, 그 이후 왕위는 혼란에 휩싸이게 된다.
김 리홀트(Kim Ryholt)와 같은 일부 학자들은 제13왕조가 제12왕조와 어느 정도 연속성을 가졌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제13왕조의 첫 파라오 중 한 명으로 간주되는 세켐레 쿠타위 소베코테프(Sekhemre Khutawy Sobekhotep, 재위 기원전 약 1800년대 초)는 아멘엠핫이라는 인물의 아들로 언급되기도 한다. 하지만 아멘엠핫 4세(Amenemhat IV, 재위 기원전 약 1815-1807년)의 뒤를 소베크네페루가 이었음을 고려할 때, 제13왕조가 제12왕조와 직접적인 혈연 관계를 통해 이어진 것은 아닐 가능성이 크다. 오히려 제13왕조의 시작은 제12왕조의 권위가 서서히 무너지면서 새로운 권력 구도가 형성된 전환점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초기 제13왕조는 수도인 이티타위(Itjtawy)에서 통치하며 나일강 삼각주에서 제2나일폭포(second cataract)에 이르는 광범위한 지역에 대한 통제력을 유지했다. 하지만 이는 점차 약화되는 왕권의 시작일 뿐이었다.
2. 약화되는 왕권과 짧은 통치의 연속
제13왕조는 매우 많은 수의 파라오들이 짧은 기간 동안 통치한 것이 특징이다. 역사학자 마네토(Manetho)는 16명의 왕이 통치했다고 주장했지만, 투린 왕 목록(Turin Canon)과 당대 비문들을 종합하면 더 많은 수의 파라오가 있었고, 대부분 재위 기간이 몇 년에 불과했다. 이는 중앙 정부의 권위가 크게 약화되고, 왕위 계승이 불안정했음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이다.
이 혼란 속에서도 몇몇 강력한 파라오들이 잠시나마 왕조의 힘을 재결집하려는 노력을 했다. 소베코테프 3세(Sobekhotep III, 재위 기원전 약 1770년대), 네페르호테프 1세(Neferhotep I, 재위 기원전 약 1760년대), 그리고 소베코테프 4세(Sobekhotep IV, 재위 기원전 약 1760년대)는 제13왕조의 권력이 정점에 달했던 시기에 속한다. 특히 소베코테프 4세는 가장 강력한 왕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이들의 짧은 전성기는 전반적인 왕조의 쇠퇴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마지막으로 이티타위를 점유하며 상당한 통치 기간을 기록한 왕은 메르네페레 아이(Merneferre Ay, 재위 기원전 약 1700년대 초반)이다. 그의 시대 이후 제13왕조의 권위는 더욱 급격하게 붕괴하기 시작한다.
3. 영토의 상실과 이중 통치의 시대
제13왕조의 권력이 약화되면서 이집트의 영토는 점차 분열되기 시작한다.
- 제14왕조의 부상 : 리홀트의 주장에 따르면, 제13왕조와 제12왕조 사이의 분열은 소베크네페루의 통치 기간 동안 동부 삼각주 지역에 독립적인 제14왕조(Fourteenth Dynasty)가 출현했음을 반영한다. 이는 제13왕조가 이집트 전역에 대한 통제력을 잃어가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초기 징후인 것이다.
- 남부 영토 상실 : 제13왕조는 남쪽 국경 지역에 위치한 요새들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하기 시작했다. 이 요새들은 누비아(Nubia) 지역에서 새롭게 떠오르던 쿠시 왕국(Kingdom of Kush)에 의해 재점령되었다. 이로 인해 이집트는 귀중한 금광이 위치한 누비아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잃게 된 것이다.
- 힉소스의 위협 : 제13왕조가 점차 쇠퇴하면서 이집트 외부의 위협, 특히 시나이 반도에서 넘어온 셈족 계열의 민족인 힉소스(Hyksos)의 위협이 커지고 있었다. 힉소스는 이후 제15왕조(Fifteenth Dynasty)를 세우며 이집트의 대부분을 장악하게 된다.
제13왕조는 주로 멤피스(Memphis)에서 상이집트와 중이집트를 제2나일폭포까지 통치하려 노력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통제력은 점차 상실되었다.
4. 힉소스와의 관계: 통설과 새로운 해석
전통적인 이집트 역사가 마네토의 기록에 따르면, 힉소스의 제15왕조는 폭력적인 침략을 통해 제13왕조와 제14왕조를 대체하며 이집트의 대부분을 점령했다. 그러나 최근 고고학적 발견들은 이러한 통설에 의문을 제기한다.
- 에드푸 유적의 발견 : 에드푸(Edfu) 지역에서 진행된 고고학 발굴을 통해 흥미로운 증거들이 발견되었다. 이곳의 한 행정 건물 유적에서는 제13왕조의 강력한 파라오인 소베코테프 4세의 봉인(seal) 9개와 힉소스 제15왕조의 통치자인 키안(Khyan, 생몰년 미상)의 봉인 41개가 함께 발견된 것이다.
- 동시대 통치의 가능성 : 이 발견은 소베코테프 4세와 키안이 동시대 인물일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는 힉소스가 제13왕조를 '폭력적으로 대체'한 것이 아니라, 제13왕조가 쇠퇴하고 있을 때 힉소스 왕조가 델타 지역에 이미 존재했으며, 점차 세력을 확장하여 멤피스를 점령하며 제13왕조를 종식시켰을 가능성이 더 높다는 주장을 뒷받침한다.
- 학술적 논쟁 : 물론 이러한 해석에 대한 반론도 존재한다. 로버트 포터(Robert Porter)와 같은 이집트학자들은 키안이 소베코테프 4세보다 약 100년 후에 통치했으며, 봉인은 파라오 사후에도 오랫동안 사용될 수 있으므로, 두 인물이 동시대였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어떤 해석이든, 제13왕조의 마지막 시기가 점진적인 권위 붕괴와 함께 여러 왕조들이 동시에 존재하던 혼란의 시대였음은 분명하다.
5. 제13왕조의 통치자들
1) 제13왕조의 파라오 목록
2) 제13왕조 후반기 파라오 목록
3) 후기 제13왕조 또는 제14왕조 초기 파라오 목록
6. 왕조의 종말과 제2중간기의 도래
제13왕조의 권력은 150여 년간 점진적으로 약화되었고, 결국 기원전 약 1650년경 힉소스 제15왕조가 멤피스를 점령하면서 제13왕조는 종말을 고하게 된다. 이 시기는 고대 이집트 역사에서 제2중간기(Second Intermediate Period)의 시작점으로 간주된다. 이 시기 이집트는 델타 지역을 장악한 힉소스(제15왕조), 델타 서부를 통치한 제14왕조, 그리고 테베를 중심으로 남부 이집트를 지배한 제16왕조와 제17왕조 등 여러 독립적인 세력들로 분열되었다.
제13왕조는 중왕국 시대를 마감하고, 이집트 역사상 가장 분열되고 불안정했던 시기 중 하나인 제2중간기로 넘어가는 다리 역할을 했다. 이 왕조의 통치자들은 제12왕조가 구축했던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를 유지하는 데 실패했지만, 그들이 남긴 기록과 유물들은 이집트가 격변의 시기를 어떻게 겪어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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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Wikimedia Commons | 퍼블릭 도메인(Public Dom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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