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14일 일요일

스크랜턴 [William Benton Scranton, 1856~1922] 미국미감리회 선교사. 목사. 의사.

스크랜턴 [William Benton Scranton, 1856~1922]

윌리엄 벤턴 스크랜턴, 시란돈(施蘭敦)ㆍ시기란돈(時奇蘭敦), 미국미감리회 선교사. 목사. 의사.
 

1856
  • 1856529일 미국 코네티컷 주 뉴헤이븐에서 제조 및 판매업을 하던 실업가 윌리엄 스크랜턴(1830-1872)과 감리교 목사의 딸 메리 플레처(Mary Fletcher Benton) 사이의 외아들로 출생하였다.
  • 17세기 미국으로 이주한 영국 청교도 후예인 할아버지 데이빗(David Scranton, 1800-1873)은 미국 남북전쟁 때 북군 민병대 장교로 복무하였고 전쟁 후 뉴헤이븐 시의회 의원으로 활약하였다.
 
학창시절
  • 뉴헤이븐의 명문 홉킨스중학교 재학시절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아래에서 자랐으며 어머니와 함께 감리교회인 뉴헤이븐제일교회에 출석하였다.
 
1874
  • 1874년 홉킨스중학교를 졸업하고 예일대학 인문학부에 입학하였다.
 
1878
  • 1878년 예일대학 인문학부를 졸업하였는데 미국 국무장관을 거쳐 27대 대통령을 역임한 태프트(William H. Taft)가 동기생이었다.
 
1882
  • 예일대학 졸업 후 곧바로 뉴욕의과대학에 입학하여 18824월 졸업하였다.
  • 18826월 미국 회중교회 지도자 하이람 암즈(Hiram P. Arms, 1799-1881)의 손녀 루이자 암즈(Louisa Arms, 1860-?)와 노리치에서 결혼하였으며 같은 해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 개인병원을 개업하였다.
 
1883
  • 1883614일 미국 클리블랜드에서 첫째 딸 오거스타(Augusta, 1883-1950) 출생하다.
 
1884
  • 1884년 여름 클리블랜드로 찾아온 미감리회 일본선교사 해리스로부터 미감리회 해외선교부에서 한국에 개척 선교사로 나갈 의사를 구한다는 소식을 듣고, 또한 어머니의 설득으로 한국선교를 지원하였다.
  • 188410월 미감리회의 첫 번째 한국선교사로 임명을 받았고 124일 뉴욕 파크애비뉴교회에서 뉴욕동부연회 파울러(C. W. Fowler) 감독에게 집사 및 장로 목사 안수를 받았다.
 
1885
  • 부인과 한살 된 딸, 그리고 여성해외선교회로부터 한국 여성 개척선교사로 파송 받은 어머니와 함께 1885115일 뉴헤이븐제일교회 교인들이 마련한 환송식에 참석한 후 아펜젤러 부부를 만나 23일 샌프란시스코를 출발, 227일 일본 요코하마에 도착하였다.
  • 갑신정변 여파로 곧바로 한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일본에 머물면서 망명객 박영효에게 한국어를 배웠다. 18854월초 선발대 1진으로 아펜젤러 부부가 인천까지 갔다가 닷새 만에 일본으로 철수한 후 2진으로 홀로 428일 나가사키를 출발, 부산을 거쳐 53일 주일에 인천에 도착, 마중 나온 북장로회 의료선교사 알렌의 안내로 56일 서울에 도착하였다.
  • 1885513일 미국공사관을 통해 조선정부의 입경과 체류 허가를 받은 후 처음 한달간 알렌의 제중원 사역을 돕다가 6월 초 미국공사관 도움으로 정동 언덕에 미감리회 선교부지와 한옥주택을 구입하였고 일본에 남아있던 가족과 아펜젤러 부부도 내한하였다.
  • 정동에 있던 기와집을 시약소로 개조한 후(현 정동제일교회 문화재 예배당 자리) 615일 서대문 성벽 아래 버려진 전염병 환자를 데려와 치료한 것으로 의료사업을 시작하여 1년 동안 2천여 명을 진료하였다.
  • 18851210일 서울 정동에서 둘째 딸 매리언(Marian Fitch) 출생하다.
 
1886
  • 1886년 여름 서울 시내에 콜레라가 창궐했을 때 북장로회 의료선교사 헤론과 함께 환자 치료와 구휼에 참여하였다.
 
1887
  • 18874월 고종은 외부를 통해 시병원’(施病院)이란 이름을 하사하였다.
 
1888
  • 1888513일 서울 정동에서 셋째 딸 캐서린(Katherine Arms) 출생하다.
  • 1888년 봄 영아소동사건으로 잠시 진료활동을 중단했으나 정부 개입으로 사태가 진정되었다. 서울 외곽 변두리 지역에 소외계층과 빈민층을 위한 선한사마리아인병원’(Good Samaritan’s Hospital)을 설립할 계획을 수립하고 내한한 파울러 감독과 선교본부의 승인을 얻은 후 1888-1889년 서대문 밖 애오개 언덕, 동대문 성벽 안쪽 언덕, 남대문 시장 언덕에 전도소를 겸한 시약소를 시작하였는데 후에 아현교회ㆍ상동교회ㆍ동대문교회로 발전하였다.
 
1891
  • 189131차 안식년 휴가를 얻어 어머니와 함께 귀국하였다가 18925월 서울로 돌아왔다.
 
1892
  • 18928월 개최된 한국선교회 연회에서 한국선교를 총괄하는 감리사로 임명되어 이후 7년간 서울ㆍ인천ㆍ평양ㆍ원산ㆍ수원ㆍ공주 지역을 순회하며 교회를 관할하였고 대영성서공회 한글성경 번역위원으로 참여하였다.
 
1893
  • 18931111일 서울 정동에서 넷째 딸 헬렌(Helen Maxima) 출생하다.
 
1894
  • 18945월 평양 기독교도 박해사건 때 김창식 전도사를 비롯한 평양 교인들이 평양 관찰사에 체포되었을 때 평양의 홀 선교사와 전보로 연락을 취하며 서울주재 미국 및 영국 공사관을 통해 조선정부가 석방을 촉구함으로 이틀 만에 사태가 해결되었다.
 
1895
  • 1894년 봄 어머니가 마련한 남대문 안 달성궁 사택으로 거처를 옮기고 정동에 있던 시병원도 상동으로 옮겨 18959월부터 진료를 시작했다. 그리고 남대문시장 숯장수 출신으로 정동 시절부터 집안 고용인으로 들어와 일하던 중 가족의 신앙생활에 감동을 받아 개종을 결심한 전덕기에게 세례를 베풀어 믿음의 아들로 삼았다. [전덕기는 상동교회 속장ㆍ권사ㆍ전도사를 거쳐 1909년 목사 안수를 받았으며 민중목회와 민족운동 선구자가 되었다.]
  • 18951월 방한한 나인드(William X. Ninde) 감독을 수행하여 경복궁에 들어가 고종을 알현하였다.
  • 189510월 서울에서 개최된 미감리회와 북장로회 연합 선교 10주년 기념대회에서 미감리회 선교역사를 발표하였다.
  • 189510월 윤치호의 초청으로 한국선교 개척을 탐색하기 위해 방한한 남감리회 중국선교부의 핸드릭스 감독과 리드(C. F. Reid) 선교사에게 달성궁 인근 남송현(현 한국은행 본점 자리) 선교부지를 주선해 구입하도록 하였다.
  • 189512월 평양을 방문하여 북한 지역 최초 여성세례자인 전삼덕 부인에게 휘장 세례를 베풀었다.
 
1896
  • 18965월 남감리회 개척 선교사 리드가 서울에 부임하자 상동교회에서 훈련시킨 권서 김주현과 김흥순을 보내주어 남감리회 개척 사업을 돕도록 했다.
 
1898
  • 189852차 안식년 휴가를 얻어 딸들이 공부하고 있던 스위스 로잔을 거쳐 미국으로 가서 휴식을 취한 후 19002월 서울로 돌아왔다. [그 사이 상동교회는 전덕기 전도사의 노력으로 교인이 300명으로 늘어나 붉은 벽돌 미드기념예배당을 짓고 19015월 봉헌하였다.]
 
1901
  • 서울 귀환 직후 어머니의 병세가 악화되어 치료를 위해 19017월 귀국하였다.
 
1903
  • 이후 뉴욕과 나이앤틱, 하트포트를 옮겨 다니며 어머니의 치료와 요양을 뒷바라지하였는데 미국 체류 기간이 길어지자 19033월 선교본부에 선교사직 사임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1904
  • 3년 요양 끝에 건강이 어느 정도 회복된 어머니를 모시고 19049월 서울로 돌아왔다. 귀한 직후 미감리회 한국선교회를 총괄하는 감회사’(監會師)로 복귀하여 해주ㆍ수원ㆍ공주ㆍ인천ㆍ평양ㆍ영변 지역을 순회하였다.
  • 1904922일 북장로회의 언더우드와 선교 20주년 기념 선교대회를 개최하였다.
 
1905
  • 19055월 첫째 딸 오거스타가 서울주재 영국공사관에서 근무한 바 있는 영국 외교관 포터와 결혼하였다.
  • 19055월 교인과 주민 사이에 물리적 충돌사건이 벌어진 논산을 방문하였고 9월 방한한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 딸 앨리스(Alice Roosevelt) 일행을 안내하였다.
  • 19056월 해리스 감독 주재로 한국선교연회가 조직되어 경기지방 장로사(presiding elder) 겸 한국선교를 총괄하는 총리사’(總理師)로 임명되었다. (하지만 선교 정책과 방법론에서 직속 상관인 해리스 감독과의 이견과 마찰을 빚기 시작했다. 일본선교 경력 30년의 해리스는 19045월 미감리회 총회에서 처음으로 한국과 일본의 주재감독으로 선출되어 19055월 일본을 거쳐 서울에 도착하였다. 그런데 일본 선교 30년 경력에다 일왕으로부터 훈장까지 받은 해리스 감독의 일본 편향적인자세와 선교정책이 주한 선교사 및 한국 교인들에게 부담을 주었다. 총리사로서 스크랜턴은 선교부나 교회는 한국과 일본 사이의 정치적 현안에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입장에서 190511월초 을사늑약 체결을 앞두고 항일 무장투쟁을 추구하는 상동교회 엡윗청년회를 해산시키며, 감독에게도 그런 정치적 중립을 취할 것을 촉구하였다.
 
1906
  • 19063월 공주에서 순직한 샤프 선교사 장례식을 집전하였다.
 
1907
  • 그러나 해리스 감독과의 이견은 좁혀지지 않았고 결국 1907621일 서울에서 개최된 미감리회 한국선교연회 매년회에서 감리교 목사 및 선교사직을 사임하였다.
  • 19075월 감리교인과 성공회 교인 사이에 빚어진 충돌사건을 해결하러 강화를 방문하였다.
  • 1907621일 서울에서 개최된 미감리회 한국선교연회 매년회에서 감리교 목사 및 선교사직을 사임하였다(해리스 감독과의 마찰). 이후 구세군과 성공회 예배에 출석하였다.
  • 19076월 대한제국 정부의 초청을 받아 대한의원(현 서울대학교병원) 교관(교수)2년간 근무하였다.
  • 190712월 한국 의료선교사회를 조직하였다.
 
1908
  • 1908년 프리메이슨 한국(한양)지부 조직에 참여하였다.
 
1909
  • 190910월 달성궁 자택에서 별세한 어머니의 장례식을 치른 후 12월 미국으로 돌아갔다.
 
1910
  • 19106월 서울로 돌아와 달성궁 자택에서 요양원을 개설하였지만 1년 만에 사업을 접었다.
 
1911
  • 19113월 평북 운산금광 부속병원 의사로 근무하며 결핵병을 앓고 있던 전덕기 목사를 데려다 치료하였다.
 
1912
  • 191212월 서울로 올라와 달성궁에서 시란돈병원을 개업했지만 1년 만에 접었다.
 
1913
  • 191312월 충남 직산금광 부속병원 의사가 되었고 그 무렵 미감리회 여성해외성교회에서 운영하던 양대 여학교 교사 건축비로 30원 기부하였다.
 
1916년
  • 1916년 중국 다렌 외국인병원으로 옮겼다.
 
1917
  • 191711월 일본 고베의 국제병원 자문의사가 되었다.
 
1922
  • 말년에 교통사고를 당해 1년간 투병생활을 하다가 1922323일 고베 자택에서 별세하였다.
  • 장례식은 326일 고베의 성공회 올세인츠교회에서 한국 천안에서 선교사로 활약한 바 있던 브라이들(G. A. Bridle) 신부 집례로 거행되었고, 유해는 고베 시내 카스가노 외국인묘지에 안장되었다가 1961년 로코산의 후타다비 공원묘지로 이장되었다. 그의 별세 소직이 국내에 알려진 후 1922928일 서울에서 개최된 미감리회 조선연회 중에 추도식이 거행되었다.
  • 유가족으로 아내 루이자와 딸 넷이 있었다. 1883614일 미국 클리블랜드에서 출생한 맏딸 오거스타(Augusta, 1883-1950)는 스위스 로잔에서 중등과정을 마치고 미국 볼티모어여자대학을 졸업한 후 19049월 서울외국인학교 교사로 초빙을 받아 안식년 휴가를 마치고 귀환하는 부모, 할머니와 함께 서울에 도착하여 1년간 교사로 봉직하다가 19055월 서울주재 영국공사관에서 근무한 바 있던 영국외교관 포터(Horace Porter)와 결혼하였다.다른 세 딸도 모두 외교관과 결혼하였는데 18851210일 서울 정동에서 출생한 둘째 딸 매리언(Marian Fitch)은 일본 나가사키 총영사를 지낸 미국 외교관 커티스(Raymond S. Curtice), 1888513일 서울 정동에서 출생한 셋째 딸 캐서린(Katherine Arms)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총영사를 지낸 영국 외교관 패튼(Geoge Paton), 18931111일 서울 정동에서 출생한 넷째 딸 헬렌(Helen Maxima)은 대만 타이페이 영사를 지낸 영국 외교관 버틀러(Butler)와 결혼하였다. 부인 루이자는 남편과 사별한 후 딸들이 살고 있던 영국으로 가서 살다가 별세하였다.
 
추모 및 기념사업
  • 스크랜턴 추모 및 기념사업으로는 서울 아현교회가 1998년 교회 창립 111주년 기념사업으로 교회 정원에 스크랜턴 박사 흉상, 일본 고베의 묘소에 스크랜턴 박사 기념비를 건립하고 2007년 새로 건축한 예배당을 스크랜턴 기념예배당으로 명명하였다.
  • 상동교회에서도 2008년 교회 창립 120주년 기념으로 스크랜턴 선교사 학술강연회를 개최하였으며 2008년 아현교회ㆍ상동교회ㆍ동대문교회 중심으로(후에 수원 종로교회와 여주중앙교회도 참여) ‘스크랜턴기념사업회를 조직하여 매년 10월 첫 주일을 스크랜턴의 날로 지정하고 스크랜턴 자료집 출간과 학술 심포지엄, 스크랜턴 선교상 시상을 하였다.
 
[참고] 내한선교사사전,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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