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20일 토요일

트로이의 브루투스 [Brutus of Troy] 브리튼의 신화와 전설에 등장하는 초대 브리튼인의 왕

트로이의 브루투스 [Brutus of Troy]

브리튼의 신화와 전설에 등장하는 초대 브리튼인의 왕
 


지금으로부터 3000년 전, 이탈리아 반도에 알바 롱가라는 나라가 있었다. 이 나라는 트로ᄋퟄ 전쟁에서 나라의 멸망을 피해 탈출한 아이네이아스의 아들(혹은 손자)인 아스카니우스가 세웠다고 한다. 훗날 로마를 건국한 로물루스가 아스카니우스의 후손이라고 한다.

[브루투스, 출생의 비밀]

 
아스카니우스의 아내가 임신했을 때, 왕은 점쟁이를 불렀다. 태어날 아기의 운명, 알바롱가의 미래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점쟁이는 충격적인 점괘를 내놓았다.
 
왕이시여! 왕비께서는 아들을 순산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왕자는 이 나라에서 가장 용감하고 모험적인 청년으로 자라날 것입니다. 그런데 송구한 말씀이오만, 왕께서는 아들 때문에 왕비와 당신의 목숨을 잃고 왕 자리마저 빼앗길 운명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왕의 아들이 권좌에 오르는 것은 아닙니다. 떠돌이 생활을 하다 머나먼 타지에 자리를 잡게 됩니다. 그것이 알바롱가의 운명이고, 당신 부자의 팔자입니다.”
 
아스카니우스는 처음에는 깜짝 놀랐다가 나중에는 화가 났고, 마지막에는 아주 냉정해졌다. 왕은 병사를 시켜 점쟁이의 목을 잘라버렸다. 그의 입에서 나온 점괘를 아무도 듣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였다.
 
여러 달 뒤 왕비는 아들을 낳았다. 그녀는 출산 후유증으로 그만 세상을 뜨고 말았다. 점쟁이의 첫 예언이 적중한 셈이다. 아스카니우스는 아들에게 브루투스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아들을 무척이나 사랑했던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점쟁이의 점괘는 엉터리다. 왕비가 죽은 것은 우연의 일치다. 아이 낳다 죽는 여인이 어디 한둘인가! 혹시 그놈 말이 맞더라도 이렇게 사랑하는 아들의 손에 죽는 것은 그다지 원망스럽지 않다.’

[실수로 아버지를 죽인 브루투스]

 
다시 세월이 흘렀다. 점쟁이의 두 번째 예언이 적중할 날이 다가왔다. 아스카니우스는 어린 아들을 데리고 사냥 다니기를 좋아했다. 브루투스가 청년으로 성장한 어느 해 봄날에도 두 사람은 평소처럼 사냥하러 길을 나섰다. 부자는 숲 입구에서 사슴을 발견했다. 두 사람은 흩어져 사슴을 양쪽에서 쫓기로 했다.
 
아들아, 나는 오른쪽으로 가서 사슴을 몰도록 하마. 너는 왼쪽에 숨어 있다가 활을 당겨라.”
 
브루투스는 아버지 말대로 왼쪽으로 돌아가 나무 뒤에 숨어 있었다. 눈앞에 사슴이 천천히 다가왔다. 그는 조심스레 화살을 쏘았다. 그런데, 갑자기 사람의 비명이 들렸다. 그가 쏜 화살은 사슴이 아니라 사람을 맞힌 것이었다. 화살에 맞은 사람은 아버지 아스카니우스였다. 점쟁이의 예언이 모두 맞아떨어지는 순간이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나는 아버지를 죽인 패륜아, 한 나라의 왕을 시해한 반역자가 되고 말았다. 내가 어찌 아버지가 세운 나라에 살 수 있으랴! 다시는 이 땅을 밟지 않겠다!”
 
브루투스는 아버지 장례식을 마친 뒤 알바롱가를 떠나기로 했다. 신하들이 만류했지만, 그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알바롱가의 법률에도 아버지를 살해한 자는 사형 또는 추방하게 돼 있었다. 브루투스는 할아버지의 고향인 트로이로 가기로 했다. 거기서 신이 자신의 운명을 어떻게 결정했는지 알아보기로 했다.

[트로이로 간 브루투스]

 
트로이는 브루투스가 머물 곳이 아니었다. 그리스 군대에 멸망한 지 오래된 탓에 사람이 살 곳이라고는 집 한 채조차 없었다. 그는 갈 곳을 잃고 방황하던 옛 트로이 백성을 구해준 뒤 함께 트로이를 떠났다.
 
길을 헤매던 브루투스는 낯설고 황량한 마을에 도착했다. 아무도 그곳이 어디인지를 몰랐다. 그는 마을 한쪽에서 버려진 옛 신전을 발견했다. 아르테미스 여신을 모시는 신전이었다. 그는 이곳에서 하룻밤 이슬을 피하기로 하고는 여신에게 제물을 바쳤다.
 
브루투스는 신전 한쪽 구석에 잠자리를 마련했다. 트로이를 떠난 뒤 힘든 여정이 이어진 탓에 곧바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새벽 무렵 브루투스의 꿈에 아르테미스 여신이 나타났다. 여신은 그에게 낯선 땅을 보여주었다. 서쪽으로 한참 달려가 바다를 건너가야 하는 곳이었다. 그곳에는 사람은 거의 없고 거인족 여러 명만 살고 있었다.
 
트로이의 브루투스여! 이곳은 네가 정착할 땅이 아니다. 내일 아침 서쪽으로 가서 바다로 나가거라. 올림포스의 신들은 너의 운명을 미리 정해놓았다. 네가 갈 곳은 바로 여기다.”
 
아침에 일어난 브루투스는 일행들에게 그 꿈 이야기를 해 주었다.
 
아르테미스 여신이 꿈에 나타나셨소. 그분은 나를 트로이의 브루투스라고 부르셨소. 여러분들도 앞으로는 나를 그렇게 부르도록 하시오. 이제 우리는 먼 길을 떠날 것이외다. 여신이 나에게 길을 가르쳐 주셨소.”

[프랑스 지방에 정착한 브루투스]

 
브루투스는 아프리카 북부를 거쳐 티레니아해로 갔다. 거기서 용감한 장수 코리네우스가 이끄는 트로이 유민들을 만났다. 조국이 망한 뒤 귀향하지 못하고 지중해를 떠돌아다니던 사람들이었다. 브루투스는 그들을 이끌고 오늘날 프랑스인 골 지방으로 가서 투르라는 정착지를 세웠다.
 
며칠 뒤 이방인의 출몰에 놀란 골 족의 왕이 엄청난 규모의 군대를 이끌고 쳐들어왔다. 브루투스는 싸울 때마다 승리를 거뒀지만, 매번 희생자가 늘어나는 걸 막을 수는 없었다. 나중에는 병력이 모자라 도저히 맞설 수 없게 됐다.
 
코리네우스, 그리고 트로이 동포 여러분. 이곳은 우리가 정착할 땅이 아니오. 아르테미스 여신이 꿈에 나타나 보여주신 곳은 이곳이 아니었소. 다시 바다로 나가 여신의 뜻대로 새길을 찾도록 합시다.”

[영국으로 건너간 브루투스]

 
브루투스는 트로이 유민들을 이끌고 바다를 건너 알비온이라는 곳에 도착하였다. 이 이름은 특정한 지명이 아니라 섬으로서의 영국을 의미하는 표현이라고 한다. 전설에 따르면 브루투스가 도착한 곳은 영국 다트강 인근에 있는 토트너스였다. 그 도시에는 지금도 브루투스 스톤이라는 게 있다. 그가 영국에 도착했을 때 처음 밟은 게 그 돌이었다고 한다.
 
브루투스 일행 앞에 커다란 몽둥이를 든 거인들이 나타났지만, 브루투스는 활을 사용해 거인들을 손쉽게 물리칠 수 있었다. 그는 거인족과 같은 지역에서 함께 살 수는 없다고 판단하고는 육지 깊숙이 들어갔다. 큰 강이 흐르고 있었는데, 오늘날 템스라고 불리는 강이었다. 그는 강 주변에 마을을 세우고는 트로야 노바새로운 트로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 이름은 트리오반툼으로 변했다. 영국으로 쳐들어온 로마는 이 도시를 론디니움으로 불렀다. 이 도시가 오늘날의 영국 수도인 런던이다.
 
브루투스는 트로야 노바를 중심으로 나라를 세워 초대 국왕이 됐다. 영국을 영어로 브리티시라고 한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브리티시라는 이름이 브루투스에서 온 것이라고 주장한다.
 
브루투스는 궁전과 함께 아르테미스 여신에게 바치는 신전을 만들었는데, 오늘날 세인트폴 대성당 자리라고 전해진다. 런던에는 런던 스톤이 있다. 이 돌을 브루투스 스톤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아르테미스 신전에 있던 제단에서 떨어져 나온 돌이라고 한다. 브루투스는 24년간 나라를 다스리다 세상을 떠났다. 그는 오늘날 런던 타워 인근에 있는 타워 힐에 묻혔다고 한다. 브루투스는 죽으면서 나라를 세 개로 쪼개 세 아들에게 물려주었다. 코르니우스는 오늘날 잉글랜드를, 알바낙투스는 스코틀랜드를, 캄버는 웨일즈를 다스렸다고 한다.
 

[브루투스 전설이 만들어지기까지]


트로이의 브루투스 전설은 9세기에 웨일스의 수도사 네니우스가 쓴 히스토리아 브리토눔에 등장하였다. 이 책은 영국에서 살았던 원주민의 역사를 다룬 것으로 전해지는 이야기에 저자가 해설을 덧붙인 것이다. 아서 왕을 역사적 인물로 부각시킨 첫 책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 책은 7세기 스페인 세비야의 대주교였던 이시도르가 쓴 어원학(또는 기원론)이라는 책에서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 당시 영국은 브리타니아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는데, 이시도르는 이에 대해 브루티(bruti)에서 나온 이름이라고 적었다. 브루티는 야만인이라는 뜻이다. 네니우스는 브루티에서 나온 이름이라는 문장에서 착안하여 브루투스에게서 나왔다는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이다.

네니우스의 히스토리아 브리토눔에서는 브루투스의 이야기를 세 가지 버전으로 소개하고 있다.
 
  1. 브리튼이라는 이름을 남긴 브루투스는 아이네아스의 먼 후손인 로마의 귀족으로 집정관의 직책으로 전쟁에 나서 스페인을 정복한 이후 영국까지 장악한 다음 새 로마 영토에 그의 이름을 붙였다는 것이다.
  2. 브루투스는 아이네아스의 손자인 실비우스의 아들이다. 실비우스는 아들 둘을 낳았는데 하나는 알바롱가의 왕이 되는 포스투무스였고, 다른 하나는 알바롱가를 떠나 영국으로 건너간 브루투스였다는 것이다.
  3. 위에서 언급한 아버지를 살해한 브루투스이다.

12세기 무렵 성직자였던 지오프리는 이런저런 전설을 모아 영국 왕들의 역사라는 책을 썼다. 네니우스처럼 그도 웨일스 출신이었다. 박물학자이기도 한 그는 이 책에 브루투스의 이야기를 상세하게 기록했다. 지오프리 덕분에 트로이의 브루투스 전설은 오늘날까지 전해지게 됐다.
 
트로이의 브루투스와 비슷한 전설이 9세기 이전에 영국에 퍼져있었다. 아이드 마우르(Aedd Mawr) 왕의 아들 프라이데인(Prydein)에 대한 이야기이다. 중세 웨일스 서적 영국 섬의 이름이라는 책에 따르면 브리튼은 원래 클라스 미르딘(Clas Myrddin)이었다. ‘미르딘의 영토라는 뜻이었다. 나중에 아이드 왕의 아들 프라이데인이 점령한 뒤에 프라이데인의 섬이라는 잉스 브라이데인’(Ynys Brydein)으로 바뀌었다. (브라이데인이라는 발음이 브리튼이라는 발음과 비슷한 것에 주목할 수 있다)

지오프리는 이전에 떠도는 전설에다가 브루투스의 이야기를 혼합하여 만들었을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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