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네프루 [Snefru, 기원전 2613~2589] 이집트 제4왕조, ‘성스러운 왕’
스네프루는 고대 이집트의 제4왕조를 시작한 왕이다. 그는 24년 동안 이집트를 통치하면서 왕권을 강화하고 남북 지역의 교류를 확대했으며 영토도 넓혔다. 스네프루가 다스리던 시절, 이집트는 번영을 누려 사람들은 그를 ‘성스러운 왕’이라고 불렀다.
스네프루는 왕위에 오르자마자 왕권을 강화하는 데 주력했다. 그는 우선 자신의 아들들을 재상으로 임명하고 재상의 권한을 확대했다. 재상은 이집트 전 지역의 행정을 담당하고 정부 기관을 관리, 감독했으며, 종교, 토지 및 모든 국가의 재산을 관리하면서 왕 다음으로 많은 권력을 누렸다. 그 덕분에 재상은 많은 재물과 토지를 가지게 되었다. 스네프루 시대부터 왕의 아들이 재상에 임명되었고, 재상은 왕과 함께 공동으로 이집트를 통치하면서 많은 경험을 쌓았다. 이를 통해 왕자들은 훌륭한 왕이 되기 위한 자질을 길렀다. 스네프루는 아들들에게 많은 권력을 주고 수많은 국가 사무, 예를 들어 건설 사업, 군대의 훈련과 정복 전쟁, 자원 채취 등을 그들과 나누어서 처리했다. 그는 아들들이 이집트를 다스릴 지혜화 능력을 기르기를 바랐다. 특히 정복 전쟁을 떠날 때면 언제나 아들들에게 군대의 지휘를 맡겼다. 이는 그들이 자신의 능력과 용맹함을 증명할 좋은 기회였다. 왕자가 재상을 맡는 것은 제4왕조의 전통이었고, 그 후에는 왕자가 아닌 사람도 재상이 될 수 있었다.
영토 확장
스네프루의 아버지인 제3왕조의 마지막 왕 후니(Huni)는 남쪽 지방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해 요새를 건설했다. 스네프루는 아버지가 벌인 이 사업을 완성하고자 강력한 군대를 조직하여 이집트 남쪽의 누비아(Nubia)로 원정을 떠났다. 고대 이집트의 연대기가 기록된 돌조각인 ‘팔레르모석’에는 스네프루가 누비아 원정에서 포로 7,000명과 가축 20여만 마리를 전리품으로 가지고 돌아왔으며, 남쪽 원정의 골칫거리를 해결했다고 적혀있다. 그는 남쪽 지역의 국경에 ‘스네프루 가문’이라고 불리는 두터운 성벽을 쌓아 이집트의 국경을 확실히 표시했다.
누비아 지역을 정복하고 남쪽 국경을 확보한 스네프루는 이제 북쪽으로 원정을 떠나기 위해 다시 군대를 조직했다. 그의 군대는 동북쪽으로 진격하여 시나이 반도의 구리 광산 지역을 점령했다. 경제적으로 의미가 매우 큰 이 정복 전쟁에서 스네프루는 승리했고, 이어서 곳곳에 정복자 ‘스네프루’의 이름이 붙은 광산과 도로가 생겼다. 그는 정복 지역의 국경을 명확히 하기위해 이곳에도 ‘스네프루 가문’이라는 성벽을 쌓았으며, 삼각주 지역에는 따로 방어 시설을 건설했다. 스네프루는 자신의 업적을 매우 자랑스러워하며 이렇게 말했다. “북쪽을 점령한 것은 나이고, 아시아와 베두인의 침략을 막기 위해 성벽을 쌓은 것도 나이다. 이 모든 것이 나의 업적이다.”
피라미드 건설
나라가 번영하자 스네프루는 이제 자신의 사후에 영혼이 머무를 곳, 바로 피라미드를 건설하는 것에 관심을 보였다. 스네프루의 아버지 후니 왕은 카이로에서 남쪽으로 75여km 떨어진 메이둠(Meidum)에 계단식 피라미드를 세웠지만, 미처 완성이 되기 전에 사망했다. 스네프루는 미완성이 된 이 계단식 피라미드에 돌을 더 보충해서 쌓아 올리게 해, 높이가 92m에 달하는 피라미드를 완성했다.
그리고 바로 사카라에서 남쪽으로 10km 떨어진 곳인 다흐슈르(Dahshur)에 높이 101m의 피라미드를 하나 더 세웠다. 이 피라미 54° 34'의 경사로 짓다가 중간쯤에서 43° 21'로 경사각을 바꾸어 쌓아 올렸다. 아래쪽은 가파르고 위쪽은 완만한 이 굴절 피라미드는 계단식 피라미드에서 한 단계 발전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스네프루는 이 피라미드가 마음에 들이 않았는지 새로운 피라미드를 짓기 시작했다. 97.5m 높이로 새로 지은 피라미드는 옅은 붉은색 석회암을 사용해서 지었기 때문에 붉은 피라미드로 불린다. 이 피라미드는 굴절 피라미드를 지은 경험을 반영해서 처음부터 43°의 경사각으로 짓기 시작해 끝까지 완성했다. 붉은 피라미드는 현대인들이 일반적으로 피라미드라고 말하는 형태를 최초로 갖추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잇달아 피라미드 세 개를 짓다 보니 건축 자재를 공급하는 것이 큰 문제였다. 피라미드 건설에 필요한 자재를 구하기 위해서 스네프루는 배 40척으로 구성된 거대한 함대를 조직했다. 배 가운데 가장 긴 것은 50m가 넘는 것도 있었다. 함대는 위풍당당하게 레바논으로 가서 아주 비싼 삼나무를 사서 돌아왔다. 이 삼나무는 매우 튼튼해서 일부는 지금까지도 붉은 피라미드 내부에 보존되어 있다.
스네프루는 또한 이전에는 생각지도 못한 곳까지 이집트의 영토를 넓혔다. 넓어진 영토는 곧 경제적 번영으로 이어졌고 그는 ‘법의 수호자’, ‘이집트의 관리자’, ‘서부의 지도자’ 등 다양한 이름을 얻었다. 그가 사망한 지 600년이 지난 제12왕조 시대에도, 이집트인들은 그를 기억하며 ‘성스러운 왕’ 스네프루가 이집트를 지켜주고 있다고 믿었다.
【맥을 잡아주는 세계사 3 - 이집트사】 60-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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