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선 [張寬善, 1866~1937]
장로교 목사, 독립운동가, 일명 장일덕(張逸德), 호는 청구(靑丘).
【1866년】
- 평북 철산군 철산읍 동부동에서 장지환(張之煥)의 아들로 출생하였다.
- 어려서부터 한학을 수학하였고 성년이 된 후 서당에서 훈장으로 있었다.
【1897년】
- 같은 동리의 김경일(金敬一)의 전도를 받아 기독교인이 되었고 장태현ㆍ함찬몽ㆍ변달성ㆍ임득무 등과 힘을 합쳐 철산읍교회를 설립하였다.
- 철산읍교회 초대집사로 임명되었다.
【1898년】
- 중국에서 마지막으로 추방된 선교사 방지일 목사의 선친인 방효원 선교사는 철산읍에 있는 장관선과 만나 기독교를 받아들였다.
【1904년】
- 철산읍교회 초대 장로로 장립되었다.
【1907년】
- 향리에 명흥(明興)학교를 설립하여 교인 자녀들을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1909년】
- 평양 장로회신학교를 졸업하였다(제2회).
- 독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은 후 철산읍교회 외에도 철산군 내 여러 교회를 설립하고 도왔는데 대표적인 교회로는 가도ㆍ영동ㆍ동문ㆍ연수ㆍ장좌ㆍ용모교회 등이었다.
- 그는 목회 외에도 민족 계몽운동자로 지방을 순회하며 강연회를 개최하여 일제의 침략을 규탄하는 일에 앞장서게 되었다.
【1911년】
- 철산군 내 교회 및 교육계의 지도자로 부각되자 일제는 그를 감시하기 시작했고 1911년 105인사건이 터지자 이내 그를 체포하여 온갖 고문과 악행을 가하였다.
- 1심에서 6년 징역형을, 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아 2년여의 옥고를 치르고 석방되었다.
- 이후 철산읍교회와 명흥학교를 중심으로 계속 민족교육을 실시하였다.
【1916년】
- 4월 30일, 둘째 아들 장호강이 태어나다.
【1919년】
- 철산에서 독립만세 시위를 지도한 후 만주로 망명하였다.
- 통화현(通化縣) 진두하(鎭斗河)에 교회와 학교를 세우고 교포의 육영사업을 하면서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와 독립군에게 자금을 조달했다.
【1923년】
- 해룡현(海龍縣)의 대황구(大荒溝)에 이주하여 교회와 학교를 설립하고 농장을 경영하여, 독립군의 기지로 제공하는 한편 독립군 자금을 조달했다.
【1927년】
- 개원현(開原縣)ㆍ철령현(鐵嶺縣)ㆍ영구현(營口縣) 등지로 전전, 육영사업과 종교활동을 하며 독립운동에 참가하였다.
【1937년】
- 만주 영구(營口) 안전(安全)농장에서 별세하기까지 농장을 경영하고 교회와 학교를 설립하는 한편 독립운동을 계속 추진하였다. 특히 무장독립운동가 전덕원ㆍ오동진ㆍ양세봉 등과 긴밀한 관계를 맺엇고 신흥무관학교 운영을 위한 재정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기타】
- 부인 홍성산(洪聖山)과의 사이에 3남 3녀가 있었다.
- 맏아들 진영(鎭永)이 독립군에 가담, 일본군과 전투하다가 전사하였다(1923년).
- 둘째 아들 호강(虎岡, 1916~2009, 예비역 준장)이 광복군에 가담, 일제에 대항하여 싸우다 해방후 귀국하여 광복회 사무총장을 역임하였다.
- 이삼열 박사(1941년, 평안북도 철산 출생)의 외증조부가 장관선 목사이다.
- 1969년 건국공로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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