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14일 일요일

스크랜턴 대부인 [Mary Fletcher Benton Scranton, 1832~1909] 미국미감리회 선교사, 교육가.

스크랜턴 대부인 [Mary Fletcher Benton Scranton, 1832~1909]

시란돈대부인(施蘭敦大夫人), 미국미감리회 선교사, 교육가.
 

1832
  • 1832129일 미국 매사추세츠 벨쳐타운에서 미국 감리교회 순회설교자 에라스투스 벤턴(1805-1884) 목사와 알미라 토운(1805-1871) 사이에서 출생하였다.
  • 오빠 조슈아(Joshua Towne Benton, 1828-1903)도 감리교 목사로 코네티컷에서 목회하였고, 조슈아의 아들 스티븐(Steven Olin Benton, 1849-1915)은 미감리회 해외선교부 총무, 딸 엠마(Emma Jane Benton, 1858-1944)는 일본선교사로 활동하였다.
 
1853
  • 노리치여자중학교를 졸업한 후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다가 18537월 뉴헤이븐의 사업가 윌리엄 스크랜턴(William Scranton)과 결혼하였다.
 
1856
  • 1856년 아들 윌리엄 밴턴(William Benton)을 낳았다.
 
1871
  • 1871년 남편과 사별하였다. 이후 아들의 학업을 뒷바라지하며 뉴헤이븐제일교회 신도로서 여성해외선교회(WFMS) 활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1873
  • 18733월 교회를 방문한 중국과 일본 감리교 선교개척자 매클레이(M. S. Maclay)의 강연을 들었다.
 
1878
  • 1878년 예일대학을 졸업하고 뉴욕 의과대학에 진학한 아들과 함께 뉴욕으로 옮긴 후 여성해외선교회뉴욕지부 활동에 참여하였다.
 
1882
  • 1882년 아들이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결혼하면서 클리블랜드 병원을 개업할 때 동행하여 클리블랜드제일교회에 출석하면서 청년부 교사 및 여성해외선교회 신시내티지부 활동에 참여하였다.
 
1884
  • 18839월 라벤나에서 열린 여선교대회에 참석했던 볼드윈 부인(Mrs. L. B. Baldwin)한국의 여성과 아이들을 위해 선교하자고 호소한 것을 계기로 미국 감리교 여성들의 한국선교를 위한 기도운동이 시작된 상황에서 1884년 여름 미감리회 해외선교부에서 한국에 파송할 개척 의료선교사를 구한다는 소식을 듣고 아들 내외를 설득하여 그해 10월 한국선교를 지원하도록 하였으며, 자신도 11월 여성해외선교회의 한국 개척 선교사로 파송받았다.
  • 188412월 뉴욕에서 거행된 아들의 목사안수식에 참석하다.
 
1885
  • 188515일 뉴헤이븐제일교회 교인들이 마련한 환송식에 참석한 후 23일 아펜젤러 부부와 함께 샌프란시스코를 출발, 227일 일본에 도착하여 매클레이와 조카 엠마의 환영을 받았다.
  • 갑신정변 여파로 내한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일본에 4개월동안 머물면서 망명객 박영효에게 한국어를 배운 후 1885611일 요코하마를 출발, 620일 서울 정동에 도착하였다.
  • 18851026일 서대문 성벽 안쪽에 6천여 평 규모의 여선교회 선교부지를 확보하였다.
 
1886
  • 1886531일 영어를 배우기 위해 찾아온 김씨 부인 한 명으로 여학교를 시작하였다.
  • 188611월 선교부지 안에 있던 20여 채의 초가집들을 헐고 200여 칸 규모의 ㄷ자형 한옥 교사를 지었다.
 
1887
  • 18871월 외무아문(외부) 독판 이하 관리들을 집으로 초청하여 만찬을 베푼 것을 계기로 선교사업에 대한 정부의 호감을 얻어 국왕(고종)은 외부를 통해 이화학당이란 교명과 함께 수호병사 기수(旗手)를 내려 보냈다. 이를 계기로 여학생 수가 늘어났다.
 
1888
  • 18881월부터 이화학당 안에서 여성 집회를 시작하였고 1년 후 여성 신자만의 속회를 조직하였으며 교리교육용 교재로 크리스도쓰성경문답(1890), 훈아진언(1891)을 번역ㆍ출판하였다.
 
1891
  • 18913월 아들 내외와 1차 안식년 휴가를 얻어 귀국, 여성해외선교회 지부 및 총회에 참석하여 선교보고와 선교비 모금을 한 후 18925월 귀환하였다.
 
1893
  • 1893129일 상동교회 교인과 이화학당 학생들이 마련한 환갑잔치가 달성궁 자택에서 열렸다.
 
1894
  • 이화학당 사역을 로드와일러ㆍ페인ㆍ프라이 등 후배 선교사들에게 넘겨주고 1894년 봄 남대문 안 달성궁부지로 거처를 옮긴 후 상동교회를 중심으로 서울 외곽과 경기도 남부지역 여성선교사역에 착수하였다.
  • 18943월 아들과 함께 처음으로 수원지방 선교여행을 다녀왔다.
 
1895
  • 18951월 방한 중이던 나인드(William X. Ninde) 감독과 함께 경운군(후의 덕수궁)을 방문, 왕비(명성왕후)를 알현하였다.
  • 1895년 상동교회 부속학교로 공옥여학교를 설립하였고 전도부인 양성을 위한 여성신학교육(후에 감리교부인 성서학원 및 협성여자신학교로 발전)을 시작하였으며 전도부인으로 훈련시킨 백헬렌과 이경숙을 인천과 수원에 파송하였다.
 
1896
  • 18967월에 평양 선교여행을 다녀왔다.
 
1897
  • 18972월에 용인, 5월에 원산 선교여행을 다녀왔다.
  • 전도부인 김세라를 1897년 내한한 남감리회 개척 여선교사 캠벨 부인에게 보내주어 돕도록 했다.
  • 서울 외곽 선교로는 서대문 밖 애오개(아현)에 여학교(아현여학교)를 설립하였고 동대문 언덕에 1천여 평 여선교회 부지를 확보한 후 미국에서 모금한 볼드윈 기금으로 볼드윈시약소(이화여대 부속병원)와 볼드윈예배당(후에 동대문교회)를 설립하였다.
 
1898
  • 18981월 극동아시아 순방중에 내한한 볼드윈 부인으로부터 받은 선교기금으로 동대문 선교부지 안에 독신 여선교사 숙소로 2층 양관을 짓고 메리스크랜턴기념관’(The Mary F. Scranton Hall)이라 명명하였다.
  • 189852차 안식년 휴가를 얻어 아들과 함께 손녀딸들이 공부하고 있던 스위스 로잔을 거쳐 미국으로 가서 휴식을 취하고 19002월 서울로 돌아왔다.
 
1901
  • 300명 교인으로 늘어난 상동교회를 위해 미국에서 모금해 온 미드(Mead) 부인 기금을 내놓아 190151,2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벽돌 미드기념예배당을 건축하였다.
  • 안식년 휴가를 떠나기 전부터 건강이 좋지 않았는데 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후 병세가 악화되어 자리에 눕는 시간이 많았다. 병세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지 마국으로 돌아가 치료를 받기로 하고 19017월 아들과 함께 귀국해서 뉴욕 요양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후 코네티컷 주 나이앤틱과 하트포트에서 3년간 치료와 요양에 전념하였다.
 
1904
  • 어느 정도 건강을 회복하여 선교지 귀환 의사를 밝히자 주변에서 만류하였지만 선교사는 선교지에서 죽어야 한다는 그의 의지를 꺾지 못했다. 그리하여 아들 부부와 서울 외국인학교 교사로 새로 초빙받은 손녀딸 오거스타(Augusta)와 함께 19049월 서울로 돌아왔다.
 
1905
  • 귀환 후 상동교회 여성사역과 공옥여학교, 전도부인 양성사역을 재개하였으며 190510월에는 한달 간 이화학당 교사 구타펠과 함께 경기도 광주와 이천지역 순회전도 여행을 다녀왔다.
  • 1905년 가을 고종황제의 계비 엄황후가 동생 엄준원을 내세워 황실여학교로 진명여학교를 시작할 때 달성궁 사택을 교사로 내주었고 진명여학교가 창성동으로 옮긴 후에는 이화학당 제자 여메레를 학감으로 파견하였으며 자신도 직접 나가 영어를 가르쳤다.
 
1906
  • 19064월 공옥여학교 졸업생을 위한 중등과정의 상동여자중학교를 설립하고 미국 유학을 다녀온 이화학당 제자 하란사를 총교사로 임명하였다.
 
1907
  • 1907년부터 건강이 악화되어 지방 여행을 할 수 없게 되자 관리하던 전도부인 9명을 서울과 지방에 파송하였고 지방에서 올라온 여성 신도들을 병사에서 맞아 조언하는 것으로 병상 선교를 지속하였다.
 
1909
  • 1908년 병세는 더욱 악화되엇고 1909년 봄부터 생사를 오가는 투병생활을 하다가 아들과 가깝게 지내던 한국 교인들과 마지막 성찬식을 거행한 사흘 후 1909108일 상동 자택에서 별세하였다. 장례식은 1010일 상동교회에서 거행되었는데 운구 직전 궁궐에서 나온 고위관리가 삼배로 경의를 표하였다. 유해는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에 안장되었다.
 
사후 기념사업
  • 해방 후 이화여자고등학교와 이화여자대학교 교정에 흉상이 건립되었고 미국 연합감리회 세계선교부는 2007스크랜턴여성리더십센터를 서울에 설립하여 아시아와 제3세계 여성지도자 육성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다.
  • 2009108일 이화여대에서 스크랜턴 서거 100주년 기념학술대회와 연합추모예배가 거행되었고 이를 계기로 대한민국 정부는 200910월 교육공로자로 국민훈장(무궁화장)을 추서하였다.
 
[참고] 내한선교사사전,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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