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14일 일요일

존 윌리엄 헤론 [John William Heron, 1856~1890] 미국 북장로회 선교사, 의사.

존 윌리엄 헤론 [John William Heron, 1856~1890]

혜론(惠論). 미국 북장로회 선교사. 의사.
 

1856
  • 1856616일 영국 더비셔에서 스코틀랜드 태생 비국교도 목회자인 에버니저 헤론과 엘리자베스 사이의 22녀 중 장남으로 출생했다.
 
1870
  • 187056, 가족이 미국으로 이주해 테네시주 녹스빌의 스프링 그로브에 정착했다.
 
1874
  • 1874년 메리빌대학에 입학했으나 3년 과정 중 1년 반의 과정만 마친 후 대학을 중퇴하였다.
 
1875
  • 4년간 공립학교 교사로 일하면서 의대에 진학하기 위한 학비를 모았다.
 
1881
  • 1881년 테네시 의과대학에 입학하였다.
 
1883
  • 18832, 테네시 의과대학을 졸업할 때 6개의 상 중에서 5개 상을 휩쓸었다. 테네시 동부의 존스보로에서 약 18개월간 개업의로 활동하는 동안 한국을 선교지로 염두에 두었다.
  • 52, 북장로회 해외선교본부에 해외선교사 지원 편지 발송(곧 철회)하였다.
 
1884
  • 315, 북장로회 해외선교본부에 해외선교사 지원 2차 편지 발송하였다.
  • 428, 미국 북장로회 해외선교부에서 한국선교사로 임명되었다(첫 번째 한국 파송 선교사).
  • 916, 의료선교를 준비하기 위해서 뉴욕대학교에서 1년을 더 공부하고 블랙웰 아일랜드병원에서 레지던트로 근무했다.
 
1885
  • 116, 약혼녀 해리엇 엘리자베스 깁슨(Harriet Eliabeth Gibson, 1860-1908), 북장로회 해외선교부 한국선교사로 임명되었다.
  • 423, 해리엇 엘리자베스 깁슨(Harriet Eliabeth Gibson, 1860-1908)과 결혼하고 51, 한국을 향해 녹스빌을 떠나 59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출발했다. 일본에 도착하여 이수정을 만나 조선말과 풍속을 배웠다.
  • 621, 한국에 도착한 그는 알렌이 운영하는 제중원에서 근무하였다.
 
1886
  • 18863월 개교한 (제중원) 의학교 교수에도 참여했다.
 
1887
  • 알렌이 고종의 명을 받아 참찬관 자격으로 주미공사관을 개설하기 위해 미국으로 떠나자, 헤론은 1887년 가을 제중원의 2대 원장에 취임하였다.
  • 1887614일 조선 정부로부터 정3품 통정대부를 제수받았다.
  • 1887년 언더우드, 아펜젤러, 스크랜턴 등과 성서번역을 위한 상임위원회를 구성하였다.
 
1888
  • 188816일에 종2품 가선대부를 제수받았다.
  • 알렌이 민영익의 부상을 치료하여 왕실의 신임을 얻은 것처럼 헤론도 민씨 집안 사람의 구순구개열 수술에 성공해서 신임을 얻었다. 헤론은 한국 생활 5년 동안 제중원의 의사로서 한국인과 외국인을 진료하고 왕의 시의로 봉사하면서 약 4만 명의 환자를 치료했다.
 
1889
  • 188910월 조직된 미북장로회 미션과 빅토리아 미션 연합공의회회장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1890
  • 문서선교에 관심을 가졌던 그는 18906월에 창설된 한국성교서회(The Korean Religious Tract Society)의 기안자였다.
  • 18905월 세관원 헌트의 요청에 따라 부산에 왕진을 갔다(그가 서울 경기 지역을 벗어나 지방을 여행한 기록은 단 한번 나타난다). 거기서 천연두로 사망한 호주선교사 데이비스의 임종을 하고 남아있던 독립선교사 게일을 만나 서울로 데리고 올라왔다. 두 사람은 말을 타고 육로로 180km를 이동해서 상경했고, 이를 계기로 게일은 헤론의 집에 머물면서 북장로회 한국선교회에 합류하게 되었다.
  • 헤론은 선교회의 여러 행정과 사무를 처리하고 신임선교사들을 맞이하고 정착을 돕는 일 등 과로에 시달리면서 선교본부에 부족한 인력 충원을 계속 요청했다. 결국 무더운 여름에도 쉬지 못하고 피서지로 삼은 남한산성과 환자가 있는 도성을 오가며 진료하다가 이질에 걸려 회복하지 못하고 1890727일 별세했다.
  • 그는 5년간 힘쓴 선교사업을 마무리하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며 부인에게 한국에 남아 계속 복음을 전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헤론 부인은 그의 유언을 따라 애도 기간에 헤론 의사와 평소 친분이 있었던 한국인 친구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남편의 이름으로 보고했다.
  • 헤론의 병상을 3주 동안 불철주야 지킨 사람은 언더우드였다. 선교 초기에 갈등을 빚기도 했던 두 사람의 우정은 이때 극적으로 회복되었다.
  • 한국 정부는 그의 매장지로 양화진에 외국인 묘지를 마련하였고, 헤론은 양화진에 묻힌 첫 번째 외국인이자 선교사가 되었다.
  • 자녀는 두 딸 사라 앤(Sarah Ann Heron Gale, 1886-1975)과 제시(Jessie Elizabeth Heron Carroll, 1888-1978)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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