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엇 엘리자베스 깁슨 헤론 [Harriet Elizabeth Gibson Heron, 1860~1908]
미국 북장로회 선교사. 선교사 존 헤론의 부인. 헤론이 죽자 게일과 재혼함.
【1860년】
- 1860년 6월 미국 테네시주 존스보로에서 의사인 데이비드 깁슨(1822-1889)과 사라 켈리(1832-1919)의 2남 1녀 중 장녀로 출생하였다.
- 아버지는 존스보로교회의 장로였고, 어머니는 마운트 홀리요크여자전문학교 출신으로 고향인 뉴햄프셔주를 떠나 존스보로에서 교육사업을 했다.
【학창시절】
- 깁슨은 존스보로에서 초등교육을 마치고 메사추세츠주 앤도버에 있는, 필립스아카데미와 나중에 합병된 기숙여학교 에벗아카데미에서 수학했다.
- 그의 어머니는 존스보로 여선교회를 차립하고 노회 여선교회 회장을 역임하는 등 해외선교에 관심이 많았는데, 그 영향을 받아 깁슨은 학교를 졸업하고 고향에 돌아와 교사로 일하면서 어머니와 함께 여선교회 서기, 청소년선교회 회장 등을 맡아서 활동했다.
【1885년】
- 아버지의 동업자인 헤론(John William Heron, 1858-1890)과 약혼한 상태로 1885년 1월 26일 미국 북장로회 해외선교부 선교사로 임명되었다. 헤론과 결혼한 직후 미국을 떠나 한국에 있는 알렌 부부, 언더우드와 합류했다.
- 그는 신임선교사들을 환영하고 접대하는 일 등 선교회의 안주인 역할을 하는 한편, 제중원 관리들과 친분을 쌓아 그들의 어머니와 아내 등을 접촉하면서 한국 여성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1888년】
- 또한 선교사 주택을 구경꾼들에게 개방해서 모든 계층의 여성들을 맞아들이고 배움에 뜻이 있는 부인과 소녀들을 모아 마가복음을 읽는 여성 모임을 만들었다. 이 모임에서 1888년 장로교회의 첫 여성 세례자들이 나왔으며, 1889년 처음으로 성경을 읽어주는 전도부인을 파송했다.
【1890년】
- 1890년 여름 남편이 갑작스럽게 사망하자 5년 동안 남편이 노력한 선교사업이 헛되지 않도록 남편과 친분을 맺은 한국인들에게 적극적으로 복음을 전하고 특히 왕비의 친정 민씨 집안과 가깝게 지냈다.
【1892년】
- 이 시기 『천로역정』을 번역하기 시작했는데 같은 번역을 하고 있던 게일(James S. Gale)과 가까워지면서 재혼을 결심하게 되었다.
- 1892년 4월 게일과 결혼한 후 선교회 건물이 있는 곤당골에 신혼집을 꾸미고, 전도부인 할머니의 도움을 받아 여성사업을 진전시켜서 후임 선교사들이 곤당골 예배당을 시작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었다.
- 게일 부부는 원산선교부 개척선교사로 자원해 서울을 떠나 내륙으로 가마를 타고 이동했는데, 깁슨은 원산지역에서 처음 거주하게 된 서양 여성이었다.
【1893년】
- 어머니 사라 깁슨도 남편이 사망하고 나서 1893년 7월에 내한하여 원산에서 전도부인의 도움을 받아 여성들을 가르치고 심방했다. 그러나 언어장벽과 문화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외국인 주재원의 자녀들과 손녀들의 교육을 담당했다.
【1900년】
- 헤론과의 사이에서 낳은 두 딸의 교육을 위해 1900년부터 6년간 스위스 로잔에 머물렀다.
【1907년】
- 1907년 선교사로 임명받은 맏딸 사라(Sarah Ann Heron Gale, 1886-1975)를 데리고 게일이 목회하는 서울 연동교회로 돌아왔다.
【1908년】
- 그는 원산에서 혹독한 겨울을 지내면서 앓았던 감기가 영양실조로 악화되면서 결핵에 걸렸다. 가족의 재회로 누린 기쁨은 잠시였고, 오랫동안 병으로 고통받으며 요양을 반복하다, 1908년 5월 29일 별세하였다.
-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에 묻힌 헤론 곁에 안장되었고, 현재의 묘비석은 한국전쟁 중 폭격으로 손상된 원래의 묘비석을 대체하여 1959년 자손들이 새로 세운 것이다. 두 딸 사라 앤(Sarah Ann Heron Gale, 1886-1975)과 제시(Jessie Elizabeth Heron Carroll, 1888-1978)가 있다.
[참고] 『내한선교사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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