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ㆍ19혁명 당시 진압 경찰들의 잔인성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4월 혁명 당시 쫓기는 시위대와 진압 경찰의 잔학상을 생생히 기록한 문리대 학생의 글이 유독 눈길을 끕니다.
“4월 19일 교문을 나섰을 때 벌써 길가에는 무장 경관들이 꽉 차 있었다. (중략) 경찰들은 곤봉과 개머리판으로 학생들을 난타하면서 강제 해산시키려 했고 우리들은 돌을 던지며 악착같이 저항했다. 잔인한 경찰들은 한 사람에게 두세 명이 달려들어 사정없이 때렸다. 나는 별달리 저항도 하지 않았지만 그 매질은 지독한 것이었다. (중략) 그들은 죽어라고 나를 때렸고 뒤통수며 얼굴이며 가슴을 가리지 않고 찌르고 때렸다. ‘개새끼 죽여 버린다!’고 하면서 다음에는 쇠갈고리와 총 개머리판으로 장작 패듯 내리치고 있었다. 정신을 잃고서 근처 전매청 공장으로 한사코 뛰어 들어갔다. (중략) 나는 죽어라고 전매청으로 뛰어 들어가 숨었다. 숨이 막히고 온몸이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왜 나를 그렇게 때렸을까? 아니 때려야만 속이 시원했을까? 동족인데 그 경찰관들은 너무나 잔인하고 악질이었다. (하략)”
4ㆍ19혁명 당시 고위급 경찰 60%가 일제 강점기 경찰 출신
1960년 4월 혁명 당시 한국 경찰 가운데 총경급(오늘날 경찰서장의 직책) 60%가 일제 강점기 경찰 출신이었습니다. 실제로 미군정기 한국인 경찰 가운데 「미군정청 관보」에 실린 52명은 일제 강점기 고위 경찰 출신들입니다. 이들은 경무국장 대리, 도 경찰부장(오늘날 지방 경찰청장에 해당), 도 경찰부의 감찰관 및 과정, 경찰서장을 지낸 것으로 나옵니다. 그들 중 상당수는 전봉덕처럼 독립운동가에 대한 첩보를 수집하고 불온사상을 탐지하며 일제의 충견 노릇을 서슴없이 저지른 자들이었습니다. 그들 친일 경찰 출신들은 일제의 전쟁 수행을 지원하는 반민족적인 친일행위를 충실히 수행한 것처럼 해방 후에도 이승만 독재 권력의 충견 노릇을 충실히 수행한 것입니다. 독재 권력을 지탱하기 위해 시민의 정당한 저항을 잔혹하게 탄압했던 방식은 일제의 방식 그대로였습니다.
경기도 경찰부 황옥 경부, 황해도 안악 지방 정이철 형사
물론 모든 경찰들이 악질적인 친일행위를 했던 것은 아닙니다. 경기도 경찰부 황옥 경부처럼 극히 일부 조선인 경찰은 의열단 등 독립운동에 관련되어 투옥되고 고난을 자처한 사례도 있습니다. 그리고 백범 김구 선생의 어머니 곽낙원 여사와 두 아들(김인, 김신)이 머물던 황해도 안악 지방을 감시하던 조선인 형사 정이철은 곽낙원 여사와 손자들이 비밀리에 출국할 때 오히려 그 시각 순찰을 돌지 않았습니다. 무사히 출국한 사실을 확인한 직후 고등계 형사직을 미련 없이 내던졌습니다.
친일 경찰, 하판락의 만행
그러나 절대다수 조선인 경찰들은 식민 당국의 신임을 얻기 위해 일본인 경찰보다 더 잔인하고 가혹하게 동포들을 대했음을 그간의 연구 결과가 말해 줍니다.
따라서 4월 혁명 당시 한국 경찰들이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시민들의 저항을 왜 그토록 잔인하게 탄압했는지 그리고 부패한 독재 권력의 충견 노릇에 왜 그토록 혈안이 되었는지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일제 말기 부산 동래중학교 학생들의 ‘독서회’ 사건을 취조하던 친일 경찰 하판락은 고문 도중 16살 중학생의 혀를 펜치로 잡아 빼는 악행을 저지릅니다. 그는 해방 직후 반민특위에 체포되지만 곧 풀려나 90세가 넘도록 천수를 누렸습니다. 당시 같이 고문당하던 생존자는 16살에 어린 나이에 갖은 악형으로 숨져간 친구의 영혼을 생각하면 죽을 때까지 그놈(하판락)을 잊을 수 없다고 절규합니다.
경찰력의 확장과 잔학상
역사적으로 1946년 9월 남조선 총파업과 10월 대구 항쟁을 시작으로 서울, 부산 등 인민 항쟁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한국 경찰은 수적인 면에서 확장기를 맞습니다. 그리고 ‘기관총 순경대’ 설치 및 전체 경찰에게 카빈 소총을 보급하는 등 화력 면에서도 한국 경찰은 본격적인 전투경찰 체제로 변신하는 물리적 확장기를 맞습니다. 다음은 해방 직후 부산지역 친일 경찰이 보여 준 고문의 사례입니다. 1946년 10월 항쟁 당시 미군 장교의 목격담으로 해방된 조국에서 청산되지 못한 친일 경찰들이 얼마나 잔악했는지 그 실상을 엿볼 수 있습니다.
“나는 한국 경찰이 각이 날카로운 나무 몽둥이로 사람들의 정강이를 때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경찰들은 사람 손톱 밑에 뾰족한 나무 조각을 쑤셔 넣는 짓도 했지요. 내가 기억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물고문을 받았어요. 그들은 한 친구의 입에다 고무 튜브로 계속 물을 퍼부어 거의 질식할 지경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또한 경찰들이 쇠몽둥이로 한 사람의 어깨를 갈기고 그를 쇠갈고리에 매달아 놓는 것도 보았습니다.”
하성환, 『진실과 거짓, 인물 한국사』, 살림터, 2017, 10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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