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14일 일요일

달젤 아델베르트 벙커 [Dalzell Adelbert Bunker, 1853~1932] 방거(房巨), 미국북장로회ㆍ미국미감리회 선교사, 목사, 교육자

달젤 아델베르트 벙커 [Dalzell Adelbert Bunker, 1853~1932]

방거(房巨), 미국북장로회ㆍ미국미감리회 선교사. 목사. 교육자
 

1853
  • 1853810일 미국 오하이오주에서 출생하였다.
 
1883
  • 1883년 오벌린대학을 졸업하고, 뉴욕 유니언신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하였다.
 
1886
  • 조선 정부에서 근대 교육기관인 육영공원을 설립하고, 교사를 미국 측에 요청하였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미국 선교부에서 국무부 장관 프레잉후이센에게 편지를 띄웠고, 해당 부서인 내무부 장관에게 편지가 가서 당시 내무부 교육국장 존 이튼에게 전달되었다. 존 이튼은 다트머스대학 동창인 헐버트의 아버지에게 유니언신학교에서 공부한 아들을 교사로 보내 달라고 요청하여 헐버트와 함께 유니언신학교에서 공부한 벙커, 길모어(G. W. Gilmore)188674일 내한했다.
 
1887
  • 미국 북장로회 선교사로 내한한 그는 육영공원 교사로 영어를 가르쳤으며 이듬해인 1887년 애니엘러스(Annie J. Ellers)와 결혼하였다. 그는 종래의 주입식, 암기식 교육 방법을 개선하여 근대 교육을 실시하는 동시에 고대사ㆍ물리학ㆍ화학ㆍ수학ㆍ정치학 등 새로운 교육과정을 도입하였다.
  • 부인 애니 엘러스(Annie J. Ellers, 1860.8.31.-1938.10.8.)는 미국 미시간주 버오크(Burr Oak)에서 장로교 목사의 딸로 출생하여 1881년 일리노이주 록퍼드칼리지를 졸업하고 보스턴 의과대학을 졸업하였다. 페르시아 선교사로 가려고 하였으나, 한국에서 활동하던 미국 북장로회 알렌(H. N. Allen)에게서 의료선교사로 와 달라는 청탁을 받고 선교지를 한국으로 변경하였다. 18867월 육영공원 교사로 부임하는 벙커ㆍ길모어ㆍ헐버트와 함께 내한하여 제중원에서 알렌을 도와 의료선교에 착수하였다. 엘러스의 도착으로 제중원 안에 부녀과가 신설되었고 여성들도 서양의술을 받게 되었다. 한국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민비가 병이 들었는데, 당시 고종의 시의였던 알렌의 치료가 별 효험이 없자 엘러스가 궁으로 들어가 민비를 치료하였다. 이 일로 왕비 전속 시의로 발탁되었다. 1887년 엘러스는 육영공원 교사였던 벙커와 결혼했으며, 이후 남편과 함께 선교 사역에 헌신했다. 그는 한국 최초의 장로교 여학교를 세웠다. 18876월 제중원 사택에서 다섯 살 난 여아(정례)를 데려다 글을 가르친 것이 발전하여 정동여학교(후에 정신여학교)가 되었다. 남편 벙커가 배재학당으로 옮기면서 함께 미감리회로 소속을 옮겼다. 한국YWCA 운동 창설에 협력하여 5천 엔을 창립 기금으로 희사하였다. 1926년 선교사직을 은퇴하고 남편과 함께 귀국하여 캘리포니아에 거주하였다.
 
1890
  • 18906월에는 조선성교서회(현 대한기독교서회) 창립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892
  • 18923월 조선 정부로부터 교육의 공로를 인정받아 통정대부 호조참의(3)라는 벼슬을 받았다.
 
1895
  • 1894년 정치적 상황의 변화로 육영공원이 폐쇄되고 그 기능이 배재학당에 흡수되면서 벙커는 1895년 미감리회 선교사로 정식 임명받고 배재학당에서 가르쳤다.
  • 1895년 명성황후시해사건으로 고종이 극도의 불안 상태에 있을 때, 벙커는 헐버트ㆍ게일ㆍ언더우드ㆍ에비슨 등과 번갈아 고종의 신변을 보호하였다.
  • 1895년 배재학당에 대학부가 설치되자 초대 부장이 되어 고등교육을 실시하였다.
 
1896
  • 1896년 이후 동대문교회 담임목회를 하였다. 노병선ㆍ이경직ㆍ김우권 등 한국인 목회자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동대문교회를 거점으로 동대문 밖, 서울 동부지역 선교 확장을 추진하였다.
  • 1896년 독립문 정초식이 거행될 때 윤치호가 지은 국가를 올드 랭 사인곡에 맞게 학생들에게 가르쳐 부르게 하여 한국 최초의 애국가를 만들기도 하였다. 안익태가 작곡한 곡조를 해방 후 정부에서 채택하기까지 40여 년 동안 이 곡조로 애국가가 불려졌다.
 
1901
  • 1901년부터 19036월 말까지 선교사역을 계속하면서 성서 보급을 위하여 미국성서공회(ABS) 한국지부 부총무 혹은 대표 격으로 활동하였다. 이때 처음으로 한국인 권서를 채용하였다.
 
1902
  • 1902년에 조난사고로 순직한 배재학당 설립자 아펜젤러와 하운셀의 뒤를 이어 3대 교장이 되어 1912년까지 재직하였으며 후임으로 신흥우에게 교장 자리를 인계하였다.
 
1903
  • 1903년 한국의 청년운동, 민족운동, 교회연합운동에도 깊이 관여하였다. 한국YMCA의 창설에 관여하여 이사를 역임하였으며, 그가 육영공원 및 배재학당에서 가르친 학생들이 민족운동의 중추세력으로 등장하기까지 큰 힘이 되어주었다.
  • 한국에서 처음으로 옥중전도(교도소 선교)를 실시하였다. 1899년 독립협회가 해산당한 후 보수 세력에 의해 다수의 진보적 지식인과 정치인들이 한성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이상재ㆍ홍정후ㆍ남궁억ㆍ정교 등이 투옥되었고, 배재학당 이승만과 신흥우도 정치적 사건에 연루되어 투옥되었다. 벙커는 선진 외국에서 시행되는 죄수들의 처우 개선, 야만적 고문제도의 폐지, 음식이나 의복을 차입할 수 있는 자유, 독서의 자유 등 인권 보호를 건의하였고, 정부의 특별허가를 받아 한성감옥을 자유로이 출입하였다. 그는 선교적 관심에서 옥중에 있는 이들을 방문하였고, 그들을 위해 서양 과학과 철학ㆍ역사, 정치에 관한 서적, 그리고 성경을 비롯한 기독교 전도 문서들과 신학월보같은 감리교 정기간행물도 넣어주었다. 아펜젤러ㆍ헐버트ㆍ게일 등이 동참하였고, 한성감옥에는 선교사들이 넣어준 책으로 옥중도서실이 설치되었다. 정치범들이 도서실에서 책을 빌려 읽는 동안 기독교 신앙을 접할 수 있었으며, 1902-1904년 무렵 이승만ㆍ신흥우ㆍ유성준ㆍ이상재ㆍ이원긍ㆍ김정식ㆍ안국선ㆍ홍재기ㆍ이승인 등 지식인, 상류 계층 인사들이 옥중에서의 집단개종을 거쳐 기독교인이 되었다. 세례받은 이도 12명이나 되었다.
 
1905
  • 1905년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각 교파 선교사들이 모여 재한복음주의선교부연합공의회를 구성하여 교파를 초월한 기구를 조직하였을 때 초대 서기 겸 회계 및 찬송가 편찬위원을 역임하여 교회연합운동에도 적극 참여하였다.
 
1908
  • 스코틀랜드성서공회, 영국성서공회, 미국성서공회는 1904-1907년 연합공회로 활동하다가 1908-1919년에는 별도로 활동하였다. 미국성서공회가 영국성서공회와 분립한 190811일부터 19115월까지 벙커가 미국성서공회 한국지부 총무를 맡았다. 연합지부에 있던 권서들과 총무는 영국성서공회 총무가 되었던 상황에서 사업의 기초를 놓았다.
  • 1908년 말에는 YMCA 건물 1층 전면에 중앙보급소를 개설하였고, 하와이 이민자에게 신약전서 540, 복음서 각 100권 등 24,206권을 반포하였다. 1909년에는 70,187, 1910년에는 116,492권을 반포하였다.
 
1911
  • 1911년 그가 가르친 신흥우가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오자 그에게 배재학당 일을 맡기고 벙커는 보다 많은 시간을 목회와 선교사업에 할애하였다.
 
1926
  • 그는 서울과 인천지방을 총괄하며 선교사업을 추진하고, 서울의 동대문 밖과 인천ㆍ강화 지역의 선교를 관장하다가 1926773세의 나이로 은퇴하였다. 이때 한국선교 근속 40년 표창을 받았고, 7월 은퇴 후 부인과 함께 귀국하였다.
 
1930
  • 1930년 한국을 잠시 방문하였다.
 
1932
  • 19321126일 캘리포니아 샌디에고에서 별세하였다. “나의 유골이나마 한국에 묻어 달라는 유언에 따라 그의 유골은 그의 부인에 의해 한국에 도착하여 193348일 정동교회에서 고별예배를 가진 후,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에 안장되었다.
  • 부인이 1937년 재내한하여 소래에 머물렀고, 이듬해 108일 서울 정동 그레이하우스에서 별세하였다. 감리교 제3회 총회가 열리고 있던 1012일 정동제일교회에서 언더우드(H. H. Underwood, 원한경)의 집례로 장례식을 거행하고 경성화장장에서 화장한 후 남편이 묻혀있는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에 안장되었다. 묘비에 “Until the day dawn the shadows free away(날이 새고 흑암이 물러날 때까지)”라고 새겼다.
 
[참고] 내한선교사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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