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14일 일요일

이응찬 [李應贊, ?~1883] 장로교 초기 신자. 성서번역인.

이응찬 [李應贊, ?~1883]

장로교 초기 신자. 성서번역인. 평북 의주 출신.
 
1876
  • , 존 로스는 한글을 가르쳐 줄 수 있는 사람으로 이응찬을 발견하였다. 로스는 한글 선생을 고용하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불확실한 것인가를 알았기에 돈을 아끼지 않았다. [존 로스와 이응찬의 만남이 1874년이라는 기록도 있다]
  • 당시 존 로스는 이응찬과의 만남을 이렇게 기록해 놓았다.
    “중인계급에 속하는 사람 하나가 배에 물건을 싣고, 고려문으로 오기 위해 압록강을 건너다가 그만 갑자기 강한 서남품을 만났다. 그 배는 전복되었고, 물건은 물 속으로 잠겨버렸다.... 물건 임자는 목숨을 건졌지만, 알거지가 되었다... 비참한 환경에 놓여 있을 때, 그 사람은 나를 만났다. 나는 그때 조선어를 몰랐기에 조선어 선생을 구하는 중이었다. 그와의 만남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만남이었다. 내가 조선 선교를 위해 어찌할 바를 알지 못했을 때, 하나님은 이응찬을 만나게 하셨고, 이응찬은 모든 것을 다 잃었을 때, 나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게 하셨다.”(J. Ross, ‘dawn in Corean’ The Missionary Review of the World 4. N.S. 1890. p.240-250)
  • [대한성서공회의 기록]
    “개신교 최초의 한글 성서는 1882년 중국 심양(선양)에서 번역 출간된 존 로스 목사와 존 매킨타이어 목사가 한국인 번역자들과 함께 번역하고 출간한 <예수셩교누가복음젼셔>입니다.
    성서 번역에 앞서 로스 목사는 1877년에 이응찬의 도움을 받아 한국어 교습서인 Corean Primer를 출간합니다. 그리고 이응찬과 함께 한글 성경의 번역을 시작했습니다. 18784월에는 서상륜과 함께 누가복음을 번역합니다. 로스 목사는 자신의 선교사 봉급에서 떼어낸 자금으로 1877년 여름부터 1879년 안식년 휴가를 떠날 때까지 이응찬 백홍준 서상륜 등에게 마태복음에서부터 로마서까지 번역하도록 합니다. 이 과정에 소요된 비용이 50파운드 정도 됩니다. 당시에 10파운드가 조선인 권서 1명을 1년 정도 고용할 수 있는 비용이었다고 하니, 50파운드의 비용이 얼마 정도의 비용인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1877
  • 존 로스는 이응찬과 함께 미래의 선교사들을 위한 기초 한글교재를 간행하였다.
 
1878
  • 서경조 목사의 서경조의 신도와 전도와 송천교회 설립역사란 글(1925)에 의하면 이응찬은 1878년에 이미 청국 영구(營口)에서 매킨타이어(John MacIntyre ; 마륵태 혹은 막근태)의 조선어 교사로 있었으며 당시 만주에 있는 영국인 해관세무사 하문덕(河文德)의 조선어 교사 이익세(李益世), 성경번역사 최성균(崔成均) 등과 더불어 로스역 성서번역에 참여하였다.
  • 이응찬이 로스를 도와서 성경을 번역하고 있다는 것을 안 어떤 한국 사람이 이응찬을 고발하겠다고 위협하였다. 그래서 그는 다시 의주로 돌아왔다.
 
1879
  • 이응찬이 다시 만주로 왔을 때 존 로스는 안식년으로 본국에 귀국한 후였다. 그가 하던 번역사업은 매킨타이어에 의해서 계속되었다.
  • 그는 매킨타이어로부터 세례를 받기를 원했다. 하지만 그의 신앙이 분명하지 않았다. 그는 아편쟁이로 의심받았고, 식사 때에는 중국의 화주(火酒)를 곁들이는 습관이 있어서 그가 출석하던 중국교회 신자들은 그의 신앙을 의심하였다. 이응찬의 세례는 자꾸 연기되었다. 그러는 사이에 이응찬은 짬을 내어서 고향을 방문하였고, 매킨타이어는 그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이응찬은 고향에 가서 성경을 깊이 연구한 다음에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서 돌아왔다. 그래서 그는 1879년 여름 매킨타이어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이것은 한국 개신교인으로서는 세 번째 세례였다.
 
1881
  • 1881년 로스는 안식년을 끝내고 다시 만주로 돌아왔다. 이응찬은 로스와 더불어 성경 번역 작업에 박차를 가했다.
 
1883
  • 그 후 1887년 최초의 한글번역성서인 예수성교젼서가 완간되었다. 이응찬은 이 최초 한글 성서 반절 이상을 번역하였다. 하지만 그는 이 성경번역의 완성을 보지 못하고 18839월 이국 땅 봉천에서 콜레라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참고] 기독교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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