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4일 목요일

김관근 [金灌根, 1864~1913] 장로교 목사. 독립운동가.

김관근 [金灌根, 1864~1913]

장로교 목사. 독립운동가. 자는 의중(宜中), 호는 운곡(雲谷).
 
1864
  • 조선 선조 때의 김응서(金應瑞) 장군의 후손으로 한국 초대 신자 김이련(金利鍊)의 아들로 출생하다.
  • 죽마고우로 한석진ㆍ김진근ㆍ양전백 등이 있었는데 셋이 모두 뒤에 목사가 되었으며 그의 아버지의 교육을 받은 문하생들이었다.
 
1883
  • 만주에서 로스(John Ross) 목사의 전도를 받아 한국 최초의 기독교인이 된 장인 백홍준(白鴻俊)1883년 귀국하여 기독교를 전함으로써 아버지 김이련이 신자가 되었고 뒤이어 자신도 기독교로 귀의했다.
 
1889
  • 언더우드(H.G. Underwood) 선교사로부터 압록강에서 유명한 한국의 요단강 세례를 받았다. 이때 아버지 김이련, 어머니 한씨(韓氏) 그리고 장차 부인이 될 백홍준 전도인의 딸 백관성(白灌聖) 33인이 세례를 받았다.
 
1891
  • , 미국인 마펫(S.A. Moffett) 목사의 주례하에 한국 기독교인으로서 최초의 서양식 결혼식을 올렸다.
 
1892
  • 마펫 선교사가 평양에서 신학반을 열었을 때 전국에서 파견된 연구생 중 구성 대표로서 김관근과 양전백이 참가하였다.
  • 의주에서 전국 최초의 지방사경회가 개최되었을 때 마펫과 게일(G. S. Gale ; 奇一 ) 선교사와 백홍준 조사가 강사로 수고하게 되었는데 김관근을 비롯한 12명이 회원으로 참가했다.
 
1893
  • 장인 백홍준 조사가 옥중에서 순교하자 그 전도사업을 계승하였으며, 서북지구의 선교 총책임자로 있던 마펫 선교사로부터 평북 지구의 교회를 순회 시찰하는 직임을 부여받았다. 이때 평남지구는 한석진이 맡게 되었다.
  • 김관근은 의주교회에서 단독 목회를 하게 되면서 주일에 새벽기도회를 포함하여 세 번 드리는 예배와 삼일기도회 제도를 설정, 이를 시행함으로써 전국교회에 점차적으로 널리 통용되게 하였다. 그는 이때부터 구성 신시교회를 비롯, 철산ㆍ용천ㆍ피현ㆍ당후ㆍ관리ㆍ중서ㆍ삼화ㆍ테메ㆍ학암ㆍ연평ㆍ벽동ㆍ남산교회 등 평북 일대에 수많은 교회를 설립 시무했다.
 
1895
  • 의주 출신 김이련 조사와 양전백 목사, 김관근 목사 등이 신시교회(新市敎會)를 설립하였다.
 
1897
  • 의주 부사 김유현이 김관근의 인도로 기독교 신자가 되었다. 김유현의 장남 김영훈(1878~1939)은 후에 목사가 되어 중국 선교사로 활약하였다.
 
1901
  • 조선예수교장로회에서 아직 노회나 총회의 정치기구가 설치되기 전에, 선교사와 한국인 교회지도자들이 협의하여 교회문제를 운영하기 위해 조선예수교장로회 공의회를 1901년에 발족시켰는데 그는 평안소회(平安小會) 대표로 참가하여 활약하였다.
 
1907
  • 2, 3남 김양선이 출생하다. (김양선은 후에 기독교박물관 관장을 역임한 목사이자 고고학자가 되었다)
 
1908
  • 자신이 세운 당후(堂後)교회에서 초대 장로가 되었다.
 
1909
  • 9, 그의 인도로 기독교(장로교)에 입교한 김병조는 후에 목사가 되었고 31운동 때에 민족대표 33인 중 1인으로 참여하였다.
 
1910
  • 평양장로회신학교를 제3회로 졸업하면서 목사안수를 받았다.
 
1912
  • 조선예수교장로회 평북노회 부회장이 되었으며 창립총회에서 학무위원과 정치위원의 요직을 맡아 활동하였다.
 
1913
  • 마펫 선교사의 주선으로 한국교회를 대표한 인물로서 유학을 겸하여 미국교회를 시찰하는 길이 열려 있었으나 애석하게 발병으로 인하여 1913125일 세상을 떠났다.
 
기타
  • 그는 종교교육사업에도 깊은 관심이 있어 신성학교와 중원학교, 양실학교 등을 설립했고 직접 교장으로 봉직하기도 했다.
  • 그는 도산 안창호와도 긴밀한 관계를 맺고 독립운동에 힘을 기울였으며 독립협회 평안도지부장으로 활약했다.
  • 그는 채정민 목사와 함께 구식 철자법을 개정하여 새로운 철자법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여 새로운 성서체(聖書體)를 확정하는 데 공헌했다.
  • 그의 후손으로 아들 희선(熙善)과 양선(良善)이 성직을 계승하여 목사가 되었다. 김희선 목사의 두 아들 광수(光洙)와 광훈(光勳)도 목사직을 계승하여 한국 최초로 3대째 계승되는 목사 가문을 이루었다.
  • 그의 가문에서 김영훈(金永勳, 산동선교사, 1939년 별세), 김병조(金秉祚, 31운동 33인 중 1, 1947년 별세), 김창건(金昌鍵)ㆍ김태주(金泰周)ㆍ김병농(金炳穠, 김관근 목사의 조카)ㆍ김용승(金龍承)ㆍ김병희(金炳熙)ㆍ김길수(金吉秀, 순교자)ㆍ김관규(金寬奎)ㆍ김승규(金承奎)ㆍ김성준(金成俊)ㆍ장윤성(張允成) 등의 목사가 배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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