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2월 15일 목요일

에비슨(Avison, Oliver R. 1860-1956) - 의료선교사

에비슨, Avison, Oliver R. 1860-1956

 
에비슨, Avison, Oliver R. 어비신(魚丕信) 1860.6.30.-1956.8.29.
미국북장로회 선교사. 의사. 교육가.
 

1860
 
  • 1860630일 영국 요크셔주 웨스트 라이딩(West Riding)의 재거 그린(Jagger Green)에서 시므온 에비슨(Simeon Avison, 1833-1919)과 엘리자베스(Elizabeth Bray, 1831-1901)32녀 중 셋째로 출생했다.
  • 형이 요절함에 따라 올리버라는 이름을 물려받았고, 가운데 이름인 ‘R’은 에비슨이 다른 사람들의 이름이 대개 두 단어인 것을 보고 스스로 붙였기 때문에 특별한 의미는 없지만, 이런 모습에서 적극성을 엿볼 수 있다. 에비슨의 집안은 모직물 공업에 종사했고, 그는 어려서 동네 사숙에서 공부했다.
 
1866
 
  • 1866년 캐나다로 이민을 갔다.
 
1867
 
  • 1867년 웨스턴 초등학교에 입학하였다.
 
1871
 
  • 1871년 알몬트초등학교에 입학했는데 이때부터 이미 모직물 공장에서 일하는 한편 같은 또래 아이들에게 야학을 가르쳤다.
 
1876
 
  • 1876년 알몬트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1877
 
  • 1877년 퍼드사범학교를 졸업했으며, 1877년 취업을 위해 스미스 폴스(Smith Falls)를 방문했다가 할로윈축제에서 장차 부인이 될 마가렛 반즈(Margaret Jane Barnes, 1862-1936.9.14.)를 만났고, 그곳에 소재한 허튼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했다.
 
1879
 
  • 1879년 오타와고등사범학교를 졸업했다.
 
1880
 
  • 1880년부터 스미스 폴스에서 약국 점원으로 근무하였다.
 
1884
 
  • 1884년 온타리오약학교를 졸업한 뒤 모교에서 강의하였다. 동년 가을 토론토의과대학에 입학했다.
 
1885
 
  • 1885년 마가렛과 결혼했다.
 
1887
 
  • 1887년 토론토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한 뒤 모교 강사를 거쳐 교수가 됐고, 개업도 했으며, 토론토시장의 주치의로도 활동했다. 또한 토론토 빈민촌에 위치한 셔본가 감리교회 지역 전도사로서 활동했고, 학생들에게 선교 사명을 고취하면서 스스로도 선교사가 되기로 다짐하였다. 따라서 선교를 떠나기 전에 이미 노동, 약학, 의학 등에 대한 풍부한 지식, 교육 및 임상 경험과 더불어 전도 경험도 있었다. 이런 경력이 그의 선교사역에 반영되었다.
 
1892
 
  • 에비슨은 초교파적으로 선교에 관심을 보이면서 YMCA와 조선연합선교회(Corean Union Mission) 등에서 활동했고, 1892년 의과대학에 선교 관심을 환기코자 안식년 중 선교동원운동을 하던 언더우드를 토론토로 초청했다. 두 사람의 만남이 그가 의료선교사가 되는 데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1893
 
  • 에비슨은 감리교 교인이었지만 캐나다감리교회는 한국선교에 관심이 없었는데, 1893년 언더우드가 에비슨의 가능성을 보고 일방적으로 미국 북장로회 선교부에 에비슨의 이름을 통보했고, 에비슨이 면접을 통해 26일 선교사로 임명되었다. 에비슨은 면접 과정에서 미국 북장로교회의 교파적 한계를 넘는 에큐메니컬 정신을 확인해 미국 북장로회 선교사가 되기로 작정하고, 스스로 세인트 앤드류장로교회로 교적을 옮겼다.
  • 당시 토론토대학교 교수로 재임용 결정이 났었으나 에비슨은 선교사로 출발하여 1893716일 부산에, 8월 하순 서울에 도착했다.
  • 에비슨은 입국한 지 얼마 되지 않은 9월에 백정 출신 박성춘을 진료해 하층민 선교에 큰 전기를 마련한 동시에, 10월에 알렌(H. A. Allen)으로부터 고종 시의를 인계받음으로써, 상하계층을 망라하는 의료선교의 기회를 얻었다. 11월부터는 제중원에서 근무를 시작해 헤론 사망 이후 빈튼의 지도하에 운영의 어려움을 겪던 병원을 정상화했다.
 
1894
 
  • 제중원이 정부 합작병원으로 출발했으나 선교부가 주도하는 사실상의 선교병원이 되기를 바랐고, 그 결과 18949월 그의 제안에 따라 미국 북장로회에 이관됐으며, 이후 제중원에서 전도 등 선교활동을 하게 됐다. 에비슨은 명실상부한 선교부 단독 운영 병원 설립을 원했는데, 그런 바람은 1904년 세브란스병원 설립으로 열매를 맺었다. 1905년에는 병원 이관 당시 한국 정부로부터 영구임대로 빌렸던 건물과 대지도 반환해 관계를 완전히 청산했지만, 제중원이라는 이름은 계속 사용하게 되었다.
 
1895
 
  • 1895년에는 의학교육을 시작했고, 교육을 위해 교재를 번역하였다. 같은 해에 콜레라가 유행하자 방역국장에 임명됐고, 명성황후시해사건 이후 위기에 처한 왕실을 보호하고자 외국인국왕보호대에 참여했으며, 영국공사관의 공의가 됐다.
 
1897
 
  • 1897년 중국 치푸 및 일본에서 휴양했다.
 
1899
 
  • 18993월 안식년을 떠났으며, 그 이후 거의 정기적으로 안식년을 갔다(1899-1900, 1908-1909, 1914-1915, 1919-1920, 1924-1926, 1931-1932).
 
1900
 
  • 1900년 에비슨은 미국 뉴욕에서 열린 에큐메니컬선교대회에서 의료선교에서의 예양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는데, 이로 인해 세브란스(Louis H. Severance)가 기부를 시작했다. 세브란스병원은 1902년 정초식에 이어, 1904년 개원식을 가졌다. 이 과정에서 병원 규모를 둘러싼 논쟁도 있었으나, 결국 대규모 선교연합병원으로 시작하였다.
 
1906
 
  • 1906년 에스더 쉴즈(Esther L. Shields, 1868-1940)를 도와 간호부양성소를 개교했다.
 
1908
 
  • 1908년 제중원(세브란스병원) 의학교 첫 졸업식이 거행돼 7명이 배출했으며, 1910년까지 거의 전 분야의 교과서를 출판하였다.
 
1914
 
  • 1914년 조선총독부로부터 의사 면허를 받았다.
 
1916
 
  • 1916년 경신학교 교장으로 취임했다.
 
1917
 
  • 1917년 약제사 면허를 받았다. 당시 영일동맹의 상호주의에 의해서, 영연방 국가인 캐나다 출신으로 영국민이었던 에비슨은 다른 선교사, 특히 미국 선교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어려움 없이 면허 취득 등 사역 관련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었다.
  • 1917년 연희전문학교와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의 인가를 받았으며, 경기도 고양군 연희면(현 연세대학교 교정)에 대규모 교지를 매입했다.
 
1919
 
  • 1919년 세브란스가 31독립운동의 중심지 중 하나가 됐고, 연희전문학교 첫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1929
 
  • 1929년 연희전문학교와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의 합동 논의를 시작하였다.
 
1930
 
  • 1930년에 70세로 은퇴 시기가 됐으나, 1932년까지 1년씩 2회 연장 후 은퇴했다. 또한 양교 이사회의 요청으로 1934년까지 2년 더 사역하면서 은퇴를 미뤘다.
 
1934
 
  • 1934년에는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교장직을 사임하면서 명예교장 및 병원장이 되었고, 오긍선이 후임이 되었다. 연희전문학교 교장직도 사임하면서 명예교장이 되었고, 새로운 교장에 언더우드 2(H. H. Underwood, 원한경)가 임명되었다.
 
1935
 
  • 1935122일 에비슨은 약 40여년의 사역을 마치고 귀국하였다.
 
1936
 
  • 1936년 케이프코드에 있는 친구들을 방문하던 중 부인이 병에 걸려 914일 별세하였다. 부인의 유해는 캐나다 스미스폴스 힐크레스트(Hillcrest) 공원묘지에 있는 가족묘지에 안장되었다.
 
1940
 
  • 1940년부터 회고록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1942
 
  • 1942-1943년에 기독교인친한회(The Christian Friends of Korea)의 재무를 맡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승인과 독립운동을 지원했다.
 
1943
 
  • 1943년 포프(Agnes M. Pope, ?-1958)와 재혼했다.
 
1956
 
  • 195682996세로 미국 플로리다 세인트 피터스버그에서 별세했고, 유해는 첫 번째 부인이 묻혀 있는 캐나다 힐크레스트에 안장되었다.
  • 1958년 그의 두 번째 부인 포프가 별세하였다.
  • 에비슨은 71녀의 자녀를 두었는데, 이외에도 출생 하루 만에 사망해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에 안장된 딸 쌍둥이가 있다. 3남 고든(Gordon W., 1891-1967)1926-1939년까지 한국에서 농촌사업을 하다가 귀국 후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타로사 YMCA에서 봉사했다. 4남 더글러스(Douglas Bray, 1893-1952)는 부산에서 출생했고, 미국 북장로회 의료선교사로 내한해 사역했으며, 1952년 캐나다 밴쿠버에서 별세 후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에 안장되었다.
  • 에비슨의 사후 1957년 세브란스의과대학과 연희대학교가 합동해 연세대학교가 탄생했다. 에비슨은 공적을 인정받아, 조선 왕실, 일제 조선총독부,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수차례 훈장을 받았다.
 
[참고] 내한선교사사전 편찬위원회, 내한선교사사전,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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