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헌(李明憲, 1876-1928)】
성결교 목사.
【1876년】
- 경기도 이천의 유교 집안에서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1907년】
- 32세의 나이로 장로교(연동장로교회)에 입교하였다.
【1908년】
- 선교사 게일에게 세례를 받았다.
- 연동장로교회 조사로 일하던 중 성결교회의 대부흥운동에 큰 은혜를 받고 성결교회로 교적을 옮겼다.
【1909년】
- 서대문의 가산을 처분한 후 가족은 외가가 있는 경기도 용인으로 이주시키고 자신은 일본에 유학, 동양선교회 일본 호리네스교단 감독인 나타다 쥬지의 주선으로 동경성서학원에 입학하였다.
- 이때 그는 한국에도 성서학원이 세워지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한편 길보른ㆍ카우만 선교사에게 이 뜻을 호소하였다.
【1911년】
- 카우만은 1911년 한국에 성서학원을 설립하였으며 그는 곧 일본 유학을 중단하고 귀국하여 경성성서학원에 편입하였다.
【1912년】
- 경성성서학원 제1회 졸업생이 되었다.
- 그는 곧 개성교회 전도사로 부임하였다.
【1913년】
- 서울 무교동교회로 전임되었다.
【1914년】
- 성결교단에서 제1회 목사안수를 받았다.
- 그는 당시 인왕산을 기도처로 삼고 새벽기도 제단에 신심을 쏟았으며 개성ㆍ원산ㆍ사리원 등을 개척하는 한편 노새를 타고 전국을 순회 전도하였다.
【1917년】
- 독립문교회를 개척하였다.
【1919년】
- 경주교회를 개척하였다.
【1920년】
- 무교동교회 담임목사 겸 감리목사로 임명되었다.
【1921년】
- 동양선교회 조선교회 카우만 감독의 고문이 되었다.
【1923년】
- 성서학원 교수 겸 조선성결교회 이사로 취임하였다.
【1928년】
- 봄 성서학원 사감 겸 학샘감으로 봉직하던 중 개성성결교회 부흥회 후 과로로 인한 신장염으로 그해 10월 30일 별세하였다.
[참고]
기독교대백과사전
김성현, 활천을 여는 글 : 이달의 성결인 ; 이명헌 목사, 활천 519권 2호((1997.02), 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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