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하(李章夏, 1886-?)】
성결교 목사. 평북 의주 출생.
【1886년】
- 평북 주읍에서 출생하였다.
【1906년】
- 일찍이 일본에 건너가 1906년 동양선교회가 경영하는 토오쿄오성서학원에 입학하여 신학을 수학하였다.
【1907년】
- 일본에 유학하여 홀리네스교단의 동경성서학원에서 공부한 이장하는, 재학 중 일본 찬송가「구원의 노래」(救いの歌, 1894)와 「福音唱歌, 1901」를 번역하여 1907년에 「복음가」란 이름으로 서울에서 출판하였는데 이것이 한국성결교의 최초 찬송가다. 『21세기 찬송가』 284장, “오랫동안 모든 죄 가운데 빠져”
- 이장하 목사가 일본 찬송가에서 번역한 대부분은 중역(重譯)이긴 하나 ‘찬송으로 보답할 수 없는’(40장), ‘내가 늘 의지하는 예수’(86장), ‘슬픈 마음 있는 사람’(91장), ‘갈보리 산 위에’(150장), ‘신랑 되신 예수께서’(175장), ‘보아라 즐거운 우리 집’(235장), ‘황무지가 장미꽃같이’(242장), ‘저 요단강 건너편에’(243장), ‘마음에 가득한 의심을 깨치고’(257장), ‘예수 십자가에 흘린 피로써’(259장), ‘주의 피로 이룬 샘물’(266장),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288장), ‘하나님은 외아들을’(294장), ‘지금까지 지내 온 것’(301장), ‘예수 나를 오라 하네’(324장), ‘마귀들과 싸울지라’(348장), ‘주의 진리 위해 십자가 군기’(358장), ‘천성을 향해 가는 성도들아’(359장), ‘행군 나팔 소리에’(360장), ‘마음속에 근심 있는 사람’(365장), ‘나 캄캄한 밤 죄의 길에’(381장), ‘주와 같이 길 가는 것’(430장),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445장), ‘구원으로 인도하는’(521장),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뵈어도’(545장), ‘주님 약속하신 말씀 위에서’(546장), ‘넓은 들에 익은 곡식’(589장) 등 우리 찬송가에 무려 42편이나 들어 있다.
【1908년】
- 4월, 토오쿄오성서학원 졸업과 동시에 귀국하였다.
- 경성복음전도관(현 중앙성결교회) 전도사로 김상준 전도사를 도와 동역하면서 동양선교회 선교사들의 통역을 맡았다.
【1911년】
- 동양선교회 성서학원(현 서울신학대학) 사감 및 교수직에 취임하였다.
【1914년】
- 김상준ㆍ강태온ㆍ이명직ㆍ이명헌 등과 동양선교회(현 성결교회) 최초 목사로 안수받았다.
- 5월 31일, 토마스 선교사와 이장하 목사가 은산지회(현 은산성결교회)를 설립하다.
【1918년】
- 3월 20일, 토마스 감독, 이장하 목사, 정달성 전도사가 옥녀봉에서 일경에게 구타당함
【1920년】
- 계속 성서학원 교수로 봉직하다가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1920년 4월 성서학원 여자부 사감 최홍은과 함께 면직 출교당했다. [이 연애사건은 매도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이후 해외로 떠났다는 말이 있다]
[참고]
기독교대백과사전, 강경성결교회 홈페이지, 규암성결교회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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