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2월 15일 목요일

김기범(金箕範, 1868-1920) - 감리교(한국인 최초 목사)

김기범(金箕範, 1868-1920)

 
감리교 목사, 한국인으로서는 김창식과 더불어 최초로 목사안수를 받은 자.
 

1868
 
  • 1868813: 황해도 연안의 부농 양반 가정에서 태어났다.
 
1889
 
  • 1889: 보부상과 함께 제물포(인천)을 찾은 김기범은 아펜젤러를 도와 전도활동에 매진하던 노병일 권사, 백혜란 전도사 등과 인연을 맺었다. 그리고 이명숙, 장경화, 복정채 등과 함께 인천 내리교회의 초대 교인으로 본격적인 신앙인의 길을 택하였다.
  • 내리교회가 1985년에 펴낸 내리 100년사에서는 “(김기범은) 노병일 씨의 전도로 후임 내리교회 전도사가 돼 1899년 신학회 전도사 과정을 이수하고 그해 원산으로 파송됐다가 1901년 한국인 최초의 목사 안수를 받은뒤 그해 내리교회의 초대 한국인 목사로 파송됐다고 기록하고 있다.
 
1896
 
  • 1896년 821: 시란돈 장로사에게 전도사 직책을 받고 인천지역 전도사로 시무하였다.
 
1897
 
  • 189755: 최초로 조직된 Epworth청년회 제물포(내리)교회 대표였다. (19066, 친일적 해리스 감독이 Epworth청년회를 정치적 사회참여라는 이유로 해체시켰다. 19086, 김기범 목사의 내리교회 요청으로 존스 목사가 Epworth청년회 재조직건을 상정했으나 해리스 감독이 거부하였다)
 
1898
 
  • 1898년 연회에서 원산교회로 파송받아 3년간 전도하였다.
 
1901
 
  • 1901513: 4회 제물포구역회의에서 존스(G.H. Jones, 趙元時, 1867-1919) 선교사의 추천을 받았다. 당시에 제물포구역 담임 존스의 보고에 의하면 제물포구역회 4/4분기 계삭회에서 김기범의 본처전도사직 갱신 및 집사 안수를 천거하기로 하였다. 이에 연회에서 전도사 직책은 갱신되었고 중국 화북연회 집사 안수자로 추천한다라고 보고되었다.
  • 1901514: 서울 상동교회에서 열린 미감리회 한국선교회 제17차 연회에서 목사안수(집사목사)를 받았다.
  • 당시 목사안수 증명서는 다음과 같다. “1901514일 오후 2시에 서울 상동예배당에서 김창식ㆍ김기범 등에게 목사안수(집사)례를 선교회 규칙에 따라 실시하였음을 증명한다. 1901518. 미감리회 감독 무어(Davi H. Moore).”
  • 19015: 황해도 연안교회로 파송받아 3년간 전도하였다.
 
1902
 
  • 1902: 아펜젤러 선교사의 선교보고서에는 한국기독교인 중 가장 신사적이고 온유한 사람이라고 평가되어 있다. 인천 내리교회에서 아펜젤러, 조원시 목사의 뒤를 이어 첫 한국인 담임목사가 되었다. 영화학교 교장으로서 교육사업에도 공헌하였다. 190211월 미국 하와이로 50여명의 교인들이 이민을 떠난 뒤 급격히 교세가 위축되자 헌신적 교인을 모으고 신앙심을 회복시키는 데 주력했다.
  • 당시 미국 감리회 케이블 선교사(1874-1949)깊은 영성을 갖추고 있으며, 복음을 받아들이기를 주저하는 자들이 결심하도록 이끄는 동시에 마음과 가슴에 복음의 정수를 제공하는 현저한 기독교인의 경험을 소유하고 있는 자라고 평가하였다.
 
1903
 
  • 19035: 인천 내리교회를 맡아 19056월까지 3년간 시무하였다.
 
1904
 
  • 1904: 내리교회 안에 영화학교를 설립해 인가를 받아내고 벽돌로 된 교사(校舍)를 신축하였다.
 
1905
 
  • 1905: 교세가 확장됐지만 건강이 안좋아져 서양 선교사들처럼 1905년 유급 안식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유급 안식년제 요구가 교단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자 스스로 사임하고 안식년에 돌입하였다. (이런 연유로 미국 선교사들에 의해 쓰여진 연례보고서를 비롯, 각종 선교사 자료엔 이후 행적이나 활동이 전혀 기록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김 목사는 교계의 미움을 산 것으로 추측된다. 향토사학계와 한국기독교계 일부 인사들은 미국 선교사들보다 훨씬 능력있는 지도자로 추앙받던 김기범의 1905년 이후 행적이 기록에서 사라진 것은 백인우월주의의 귀결이라고 평가한다. 거부의 아들인 김기범이 안식과 돈 때문에 미국 선교본부에 유급 안식년을 요구했을리 만무하다는 것이다. 이들은 김기범의 유급 안식년 요구는 7년마다 1년씩 갖는 안식년 적용을 한국인 목회자에겐 허용하지 않는 서양 선교사들의 민족차별에 항의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해석하고 있다.)
    ☞ 경인일보 200555일 기사
 
1907
 
  • 1907: 인천 내리교회에서 1910년까지 시무하였다.
 
1920
 
  • 1920327: 별세한 것으로 알려졌다.
 
[참고] 기독교대백과사전, 경인일보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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