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조(徐景祚, 1852-1938)】
장로교 목사, 장로교 최초 목사 7인 중 한 사람. 서상륜의 동생
【1852년】
- 평북 의주의 명문 가정에서 서석순의 아들로 출생하다. 본명은 서상우(徐相佑)
【1883년】
- 형인 서상륜을 따라 외가 6촌의 집이 있는 황해도 소래지방으로 이주하였다.
【1884년】
- 황해도 장연의 솔내(松川)에서 형인 서상륜과 함께 송천교회(소래교회)를 세웠다.
【1885년】
- 서상륜의 편지를 받고 상경하여 언더우드 목사에게 세례를 받다.
【1886년】
- 송천에서 언더우드에게 세례를 받았다. 이때 아들은 서병호는 유아세례를 받았다.
【1888년】
- 서울에서 최초로 열린 사경회에 참석하여 훈련을 받다.
【1889년】
- 매서 직분을 받다.
【1890년】
- 펜윅과 함께 원산으로 이주하였다. 성서 본문 번역과정에서 펜윅과 결별하고 송천으로 돌아오다.
【1893년】
- 마펫의 권유로 부산으로 이주하여 베어드(W.M. Baird, 배위량)과 함께 활동하다가 다시 송천으로 돌아오다. 이때 부산 지역 최초 신자 김기원과 만났다.
【1894년】
- 12월 : 캐나다 선교사 매켄지가 마펫의 편지를 갖고 송천에 와서 메켄지의 한국어 교사가 되다.
【1895년】
- 5월 : 송천교회 예배당 준공하다. 매켄지가 과로와 열병으로 죽다.
【1896년】
- 송천교회 예배당 증축하다. 매켄지의 유산 중 3천냥으로 해주제일중학교를 설립하다.
【1900년】
- 송천교회에서 장로가 되었다. [1895년에 장로가 되었다는 기록도 있다]
【1901년】
- 5월 15일 : 평양 장로회신학교에 입학하다.
【1902년】
- 9월 20일 : 서울 새문안교회에서 열린 ‘제1회 장로회공의회’에 참석하여 서기로 피선되다. (당시에 개회예배에서 성경을 낭독하고 기도하였다)
【1903년】
- 제2회 공의회에도 서기로 피선되었고 구제위원으로 평안도ㆍ경상도에 흉년으로 신음하는 기민들을 구제하는데 힘쓰다.
【1904년】
- 9월 13일 : 제3회 장로회 합동공의회에서 감사절 제정에 대해 발언하였으며, 교육사업으로 금세(金世)학교를 설립하다. (당시 성경 교정을 마펫에게 맡기려는 것에 반대하였다고 한다)
【1907년】
- 6월 20일 : 평양 장로회신학교를 제1회로 졸업하였다.
- 9월 17일 : 한국 최초의 장로교 목사로 안수받다. 안수식의 마지막 축도를 하다. 장연ㆍ옹진 등지에 사우업(C. E. Sharp) 목사와 같이 전도목사로 파송받았다. (독노회 시기에 서경조는 고시위원으로 활약하였다)
【1910년】
- 9월 21일 : 언더우드의 동사 전도목사가 되어 서울 염점동과 남문밖, 고양, 시흥, 파주, 교하, 통진, 김포 등지에서 전도하였다.
【1911년】
- 언더우드의 동사목사로 새문안교회에서 시무하였다.
【1913년】
- 제4회 경기충청노회에서 은퇴하였다.
【1916년】
- 8월 : 서울 안동교회에서 시무하던 한석진 목사가 사면하여 임시목사로 그해 말까지 시무하였다.
【1926년】
- 상하이에서 독립운동을 하는 아들 병호를 따라 상하이에서 여생을 보냈다.
【1938년】
- 7월 27일 : 중국 상하이에서 별세하였다.
- 아들 병호는 해방 후 귀국하여 새문안교회 장로로 시무하면서 YMCAㆍ경신학교 등지에서 크게 활약하였다
[참고] 『기독교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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