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2월 13일 화요일

윤지충(尹持忠, 1759-1791)과 권상연(權尙然, 1751-1791)

윤지충(尹持忠), 1759-1791권상연(權尙然), 1751-1791

 
신해박해 순교자. 윤지충의 세례명은 바오로. 자는 우용(禹用). 본관은 해남이며 유명한 화가 윤두서(尹斗緖)의 증손자이다.
 

그는 1759년 전주부 양양소면(良梁所面)에서 아버지 윤경(尹憬)과 어머니 안동 권씨 사이의 맏아들로 태어났으며, 어느 시기에 아버지를 따라 진산군 장구동(현 금산군 복수면 구례리)으로 이주하였다.
 
윤지충은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품행이 단정하여 칭송이 자자했는데, 1783년 친사시에 합격한 후에는 그의 명성이 더욱 높아졌다. 1784년 겨울, 상경한 그는 처음으로 천주교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김범우에게 천주실의칠극을 빌려 필사하였다. 그러나 그때까지는 아직 천주교를 신앙하지 않았고, 1785년 을사 추조 적발 사건 때에는 가지고 있던 교리서들을 모두 불태우거나 물로 씻어 버렸다. 그러다가 1786년경 고종 사촌인 정약전에게 교리를 배운 뒤, 이듬해 정약전을 대부로 이승훈에게 세례를 받았고, 집으로 돌아온 뒤에는 어머니와 동생 윤지헌(尹持憲)은 물론, 자기의 명성을 듣고 찾아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교리를 가르쳤다.
 
권상연의 세례명은 야고보이며, 본관은 안동이다. 사헌부 지평을 지낸 권기(權愭)의 고선자로 아버지는 권세학, 어머니는 전주 이씨이다. 권상연은 조상 대대로 공주 탄방에서 살다가 권기 때에 진산으로 이주했으며 윤지충의 외사촌이다. 그는 이웃에 살던 윤지충과 친밀히 내왕했으며, 윤지충이 탐독하던 천주실의칠극을 빌려 본 뒤, 신앙에 눈을 떴고, 얼마 뒤 윤지충에게 세례를 받았다.
 

한편 1790년 윤유일이 가져온 구베아 주교의 사목 서한에는 조상 제사 금지 조항이 들어 있었다. 이 때문에 많은 양반 신자들이 교회를 떠났지만, 윤지충은 교회의 명령을 충실히 준주하여 신주를 불태우고 신주를 넣었던 빈 궤만 사당에 세워 놓았다. 그런 가운데 17915() 어머니 권씨 부인이 사망하였다. 그는 장례 절차를 고민하다가 교회의 가르침대로 제사를 지내지 않았으며, 권상연도 그의 결정에 동의하였다. 이 광경을 본 친척과 동료들은 이들을 윤리를 어긴 죄인이라고 비난하였고, 이 소문은 홍낙안의 귀에도 들어갔다. [진산사건]
 
홍낙안은 929일 진산 군수 신사원에게 편지를 보내 이들을 체포하여 처형하라고 하였고, 1026일에는 다시 좌의정 채제공에게 그들을 고발하였다. 편지를 받은 채제공은 전라 감사 정민시에게 그들을 체포하여 진위 여부를 조사하도록 명령하였고, 이 소식을 들은 윤지충은 광주로, 권상연은 한산으로 각각 몸을 피하였다. 그들이 도망친 것을 안 관원들은 대신 윤지충의 숙부인 윤증을 체포하여 옥에 가두었다. 그러자 윤지충은 1121일 진산 군사에게 자수하였고, 권상연도 뒤따라 자수하였다. 그들은 진산 관아에서 1차로 신문을 받은 뒤, 전주 감영으로 이송되었다. 윤지충은 신문 가운데, 천주의 존재를 인정했고, 관원에게 제출한 공술서에서는 신주를 불태우고 제사를 폐지한 당위성을 설명하였다. 그 결과 윤지충과 권상연은 사형 판결을 받고 1791128일 전주에서 참수됨으로써, 한국 교회 최초의 순교자가 되었다.
 
[참고] 한국가톨릭대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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