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에는 혁거세거서간의 부인 알영은 혁거세거서간 재위 5년이라고 기록한다.
알영이 태어나다 : 기원전 53년 01월
5년(B.C. 53) 봄 정월에 용이 알영정(閼英井)에 나타났다. 오른쪽 옆구리에서 여자아이가 태어났는데, 노구(老嫗)가 보고서 기이하게 여겨 거두어 길렀다. 우물의 이름을 따서 아이의 이름을 지었다. 성장하면서 덕행과 용모가 빼어나니, 시조가 그 소식을 듣고 맞아들여 왕비로 삼았다. 행실이 어질고 내조를 잘하여 이때 사람들이 그들을 두 성인(聖人)이라고 일컬었다.
현재 경주시 탑동에 위치한 오릉의 남쪽 숭덕전(崇德殿) 내에 ‘알영정(閼英井)’이라고 불리는 우물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권21 경상도 경주부 고적조에 알영정이 부(府) 남쪽 5리에 있다고 기록되어, 늦어도 조선 전기부터는 이 우물을 두고 알영이 탄생한 우물이라는 전승이 내려왔음을 알 수 있다. 우물 옆에는 일제 강점기 때 세워진 「신라시조왕비탄강유지(新羅始祖王妃誕降遺址)」 비석이 있다. 알영정은 『삼국유사』 권제1 기이제1 신라시조 혁거세왕조에는 ‘아리영정(娥利英井)’으로도 나온다.
알영이 ‘용의 오른쪽 옆구리’에서 태어났다는 기록에 대해서 『삼국유사』의 기록은 약간 다르게 나온다.
이날 사량리(沙梁里) 알영정(閼英井)[또는 아리영정(娥利英井)이라고도 한다.]에서 계룡이 나타나서 왼쪽 옆구리로부터 동녀(童女)[혹은 용이 나타나 죽으매 그 배를 가르고 얻었다고도 한다.]를 낳으니 자색이 뛰어나게 고왔다. 그러나 입술이 닭의 부리 같은지라 월성(月城) 북천(北川)에 가서 목욕을 시켰더니 그 부리가 퉁겨져 떨어졌으므로 그 천의 이름도 따라서 발천(撥川)이라 하였다. 궁실(宮室)을 남산 서쪽 기슭[지금의 창림사(昌林寺)이다.]에 짓고는 두 명의 신성한 아이를 모셔 길렀다. 사내아이는 알에서 나왔는지라 [그] 알은 박과 같이 생겼고 향인(鄕人)들이 박을 박(朴)이라 하므로 따라서 성을 박(朴)이라 하였다. 계집아이는 그가 나온 우물 이름으로써 이름을 지었다. 두 성인의 나이가 열세 살이 되자 오봉(五鳳) 원년 갑자(甲子)에 남자는 위에 올라 왕이 되고 이어 여자로써 왕후를 삼았다.
이상의 기록에서 보면 『삼국사기』에서는 알영이 혁거세거서간 재위 5년에 태어난 것으로 되어 있지만, 『삼국유사』에서는 혁거세거서간과 같은 해에 태어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옆구리 역시 『삼국사기』가 용의 오른쪽 옆구리인 반면, 『삼국유사』는 왼쪽 옆구리라고 표시되어 있다. 여하튼 옆구리로 아이를 낳았다고 하는 전승은 석가모니가 어머니인 마야부인의 옆구리에서 태어났다고 하는 불교 설화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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