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 13일 월요일

[신라] 혁거세거서간 죽음의 미스테리 (혁거세거서간 재위 61년, AD 4년)

혁거세거서간 죽음의 미스테리
 
삼국사기는 혁거세거서간이 죽은 해에 대해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혁거세거서간이 죽다 : 403()
 
61(4) 3월에 거서간이 승하(升遐)하였다. 사릉(蛇陵)에 장사 지내니, 담암사(曇巖寺)의 북쪽에 위치해 있다.
 
이것에 대해서 삼국유사는 조금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나라를 다스린 지 61년 만에 왕이 하늘로 올라갔는데 이레 뒤에 유해가 땅에 흩어져 떨어졌으며 왕후도 역시 죽었다고 한다. 국인들이 합장을 하려고 했더니 큰 뱀이 나와서 내쫓아 못하게 하므로 5(五體)5(五陵)에 각각 장사지내고 역시 이름을 사릉(蛇陵)이라고도 하니 담엄사 북쪽 왕릉이 바로 이것이다. 태자 남해왕(南解王)이 왕위를 계승하였다.
 
삼국사기와는 달리 삼국유사는 혁거세거서간의 죽음 이후에 뭔가 자연스럽지 않는 상황을 암시하고 있다. 살해당했다는 설도 있고, 이에 대해 농경민의 바램을 담은 신화적 해석도 있다.
 
1) 살해당했다는 설
 
신라 시조 혁거세왕은 나라를 다스린 지 61년 되는 해에 하늘로 올라갔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하늘로 올라갔다는 것이지 죽었다는 뜻은 아니다. 그런데 7일 후 왕의 죽은 육체가 땅에 흩어져 떨어졌고 왕후도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살아서 승천한 왕이 죽어서 몸만 돌아왔다. 문제는 온전히 내려온 것도 아니라 흩어져서 떨어져 내려왔다. 시신을 수습하는 것만도 참으로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해도 많이 이상하다. 어쩌면 누군가에게 살해당한 후 시체 은닉까지 당한 것인가? 일주일 만에 시신을 찾았는데 차마 봐줄 수 없을 정도로 손상되어 있었던 것인가? 왕후 즉 왕비도 세상을 떠났다고 하니, 잉꼬부부처럼 볼 수도 있지만, 왕비 역시 살해당한 것은 아닐까? 아니면 왕의 살해에 왕비가 관여된 것은 아닐까? 왕실 특히 장수한 왕의 죽음에 관여된 일이기에 더욱 의심스럽지 않을 수 없다. 다만, 건국신화라고 해서 의심을 덜 받는듯하다. 하지만, 이와 같이 상해 당해서 죽은 것이라면 아무리 오래 살았다고 해도 참으로 원통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범인은 누군지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이 살인 즉, 시해 사건 역시 제일 이익 본 사람은 범인과 무관하지 않을 듯하다. 하지만 오래 살지 못한 아들 남해왕이기보다는 그의 사위인 탈해왕일 가능성도 없지 않다.
 
2) 농경민족의 바램을 담은 신화적 해석
 
승천 뒤 벌어진 주검의 해체와 지상 하강은 건국신화의 논리를 벗어난다. 혁거세의 토막난 사체를 사체화생(死體化生) 유형의 곡물기원신화와 연관짓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큰 뱀(大蛇)이 토막 난 사체의 합체를 막았다! 이브를 유혹한 뱀 때문에 뱀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만연해 있지만 뱀이 풍요와 다산을 상징하는 신화적 동물이라는 것은 신화학의 상식이다. 대지를 기어다니고 허물을 벗어놓는 뱀, 무척이나 남근을 닮은 뱀의 모습이 그런 상상을 낳고 상징을 마련했을 것이다. 이런 상징을 지닌 큰 뱀이 합체를 막았다면 혁거세의 분해된 사체에서 뭔가 풍요로운 생명이 출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흩어져 여러 곳에 뿌려질수록 풍요로운 수확을 얻을 수 있는 것. 그게 바로 농업 재배민들의 곡물이다. 그렇다면 하필 다섯 덩이인 까닭은? 이는 물론 사방과 중앙이라는 동아시아의 오방(五方) 관념과 무관치 않을 테지만 더 직접적으로는 모든 곡물을 상징하는 오곡(五穀) 관념의 소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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