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 13일 월요일

[신라] 혁거세 당시 뛰어난 외교관 ‘호공’의 진실 (혁거세거서간 재위 38년, BC 20년)

박혁거세 당시 뛰어난 외교관 호공의 진실
 
박혁거세는 재위 38년에 호공을 마한으로 파견한다. 마한 왕이 신라가 공물을 보내지 않는다고 꾸짖었을때, 굽히지 않고 소신발언을 한 인물로 등장한다. 이 기록을 통해서 당시 신라는 마한보다 조금 약한 세력을 갖고 있는 듯한 인상을 받게 된다.
 
호공이 마한에 사신으로 가다 : 기원전 2002
 
38(B.C. 20) 2월에 호공(瓠公)으로 하여금 마한(馬韓)을 방문하게 하였다. 마한왕이 호공에게 꾸짖어 말하기를, “진한(辰韓)과 변한(卞韓)은 우리의 속국이거늘 근래 직분에 맞는 공물을 보내지 않으니 사대의 예가 어찌 이와 같을 수 있는가?”라고 하였다. 호공이 대답하기를, “우리나라는 두 성인이 나라를 열고 일으킨 이래 인사가 잘 갖추어지고 천시가 조화로워 창고가 충실하고 인민은 공경하며 겸양하니, 진한(辰韓)의 유민으로부터 변한과 낙랑, 왜인에 이르기까지 경외의 마음을 갖지 않음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왕께서 겸허한 마음으로 저로 하여금 교빙(交聘)을 하게 하셨으니 지나칠 정도로 예를 차린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대왕께서 불같이 노하셔서 군대로 겁박하시니 이 무슨 뜻입니까?”라고 하였다. 마한 왕이 분하여 그를 죽이고자 하였으나, 좌우 신하가 못하게 하여 그만두고 돌아가는 것을 허락하였다.
 
이에 앞서 중국 사람들이 진()의 난리에 고통을 겪다가 동쪽으로 온 자들이 많았는데, 다수가 마한의 동쪽에 거처를 정하고 진한과 더불어 섞여 살다가 이때에 이르러 점차 강성해졌다. 이런 까닭에 마한이 그것을 꺼려 책망이 있게 된 것이다. 호공은 그 족성(族姓)을 자세히 알 수 없는데, 본래 왜인으로 처음에 박을 허리에 차고 바다를 건너왔기에 호공이라고 칭하였다.
 
이때 외교적으로 뛰어난(?) 활약을 한 호공은 삼국유사에서는 석탈해의 사기에 의해서 자기 집을 빼앗기는 사람으로 등장한다.
 
말을 끝내자 그 아이는 지팡이를 끌며 두 종을 데리고 토함산 위에 올라가 돌집을 지어 칠일 동안 머물렀다. 성 안에 살만한 곳을 살펴보니 마치 초승달[三日月] 모양으로 된 봉우리가 하나 보이는데 지세가 오래 머물만한 땅이었다. 이내 내려와 그 곳을 찾으니 바로 호공(瓠公)의 집이었다. 이에 지략을 써서 몰래 숫돌과 숯을 그 집 곁에 묻어놓고 [다음날] 새벽 아침에 문 앞에 가서 이 집은 조상 때부터 우리 집입니다.”라고 말했다. 호공이 그렇지 않다.” 하여 서로 다투었으나 시비를 가리지 못하였다. 이에 관가에 고하자 관가에서 묻기를 그 집이 너의 집임을 무엇으로 증명하겠느냐?” 하자 [동자가] “우리는 본래 대장장이였는데 얼마 전 이웃 고을에 간 사이에 그 집을 다른 사람이 빼앗아 살고 있으니 청컨대 땅을 파서 조사하게 해 주십시오.” 하였다. [동자의 말대로] 따르니 과연 숫돌과 숯이 나왔으므로 이에 그 집을 취하여 살게 하였다.
 
삼국유사권제1 기이제1 4 탈해왕(第四脫解王)조 기록
 
삼국유사에 의하면 호공은 그야말로 호구의 대명사가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이런 멍청한 인물을 한 나라의 외교관으로 다른 나라에 파견한다는 자체가 임금의 사람보는 능력의 한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

참고: 블로그의 회원만 댓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

스네프루 [Snefru, 기원전 2613~2589] 이집트 제4왕조, ‘성스러운 왕’

스네프루 [Snefru, 기원전 2613~2589] 이집트 제 4 왕조 , ‘ 성스러운 왕 ’   스네프루는 고대 이집트의 제 4 왕조를 시작한 왕이다 . 그는 24 년 동안 이집트를 통치하면서 왕권을 강화하고 남북 지역의 교류를 확대했으며 영토도 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