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의 기록에는 다음과 같이 전한다.
신라 제2대 남해차차웅(南解次次雄, AD 4~24년)남해차차웅(南解次次雄)이 왕이 되었다. [‘차차웅’은 혹은 ‘자충(慈充)’이라고도 한다. 김대문(金大問)이 이르기를, “방언으로 무당을 일컫는다. 세상 사람들은 무당이 귀신을 섬기고 제사를 받들기 때문에 두려워하고 공경하였다. 그래서 존장자(尊長者)를 칭하여 ‘자충’이라고 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혁거세(赫居世)의 적자이다. 신장이 크고, 성격이 침착하며 온후하고, 지략이 많았다. 어머니는 알영(閼英) 부인이다. 왕비는 운제(雲帝) 부인이다. [일설에는 아루(阿婁) 부인이라고도 한다.] 아버지를 계승하여 왕위에 올라 원년을 칭하였다.
신라 제2대 왕인 남해차차웅(南解次次雄)은 혁거세거서간의 아들로 서기 4년에 즉위하여 21년간 나라를 다스린 후 서기 24년에 사망한 것으로 전해진다. 『삼국유사』에서는 ‘거서간’으로도 표기하고 있다.
‘차차웅’은 남해왕에게 붙여졌던 신라 고유의 왕호로 ‘자충(慈充)’으로도 표기되었었다. 자충이라는 단어에서 불교의 ‘중’이 나왔다고 하는 주장도 있기에 불교의 승려를 세속에서 중이라고 부른 것도 승려가 지녔던 무속적인 성격에서 유래했다고 보기도 한다.
통일신라 시대 초반에 활동했던 역사가 김대문이 전하는 바로는 신라에서 ‘무(巫)’를 일컫는 말이었다고 한다. 이를 받아들인다면, 차차웅은 본디 제사장을 뜻하는 신라말로서, 신라 초기의 왕이 제사장으로서의 성격을 지녔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신라 왕호로서 차차웅은 남해왕에게만 해당하고, 그 뒤로는 ‘이사금’이라는 왕호가 사용되었다.
김대문(金大問)은 신라 중대의 역사가이며 진골 출신으로 성덕왕 시대에 한산주 도독을 지냈다. 주요 저술로는 『계림잡전(鷄林雜傳)』, 『화랑세기(花郞世記)』, 『고승전(高僧傳)』, 『한산기(漢山記)』, 『악본(樂本)』 등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 책들은 『삼국사기』가 편찬될 때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었다. 『삼국사기』에 나타나는 차차웅에 대한 김대문의 설명은 『계림잡전』에서 인용되었을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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