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이집트] 고왕국 제3~6왕조 : 피라미드의 영광과 몰락의 서곡
고대 이집트의 고왕국(Old Kingdom of Egypt)은 이집트 문명의 찬란했던 초기 시기로, 기원전 약 2686년부터 2181년까지 약 500년간 이어진다. 이 시대는 주로 제3왕조부터 제6왕조에 걸쳐 있으며, 통치자들이 건설한 거대한 피라미드 건축물로 인해 흔히 '피라미드 시대'라고 불린다. 이 시기는 이집트가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를 구축하고 예술, 건축, 종교적 사상이 크게 발전했던 황금기였다.
1. 고왕국의 여명 (제3왕조의 시작)
고왕국의 시작은 제3왕조, 특히 파라오 조세르(Djoser, 재위: 기원전 약 2670–2640년)의 통치와 함께한다. 그는 이집트 역사의 전환점을 마련한 인물이다. 조세르 이전의 왕묘는 마스타바(mastaba)라고 불리는 직사각형 구조의 단순한 무덤이었다. 그러나 조세르 파라오는 그의 재상이자 천재 건축가 임호테프(Imhotep, 생몰년 미상)의 도움을 받아 사카라(Saqqara)에 세계 최초의 대규모 석조 건축물인 계단식 피라미드(Step Pyramid)를 건설한다.
이 거대한 무덤 단지는 파라오의 신성한 권위를 상징하는 기념비적인 건축물이었고, 후대 피라미드 건설의 초석이 되었다. 조세르 시대에 멤피스(Memphis)가 이집트의 수도로 확고히 자리 잡았으며, 파라오의 권력이 신격화되고 왕권 신수 사상이 확립되기 시작하였다. 이 시기부터 이집트 사회는 파라오를 중심으로 한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로 발전하였다.
2. 고왕국의 전성기 (제4왕조의 영광)
고왕국은 제4왕조에 이르러 절정기를 맞이한다. 이 시기는 이집트 역사상 가장 유명하고 웅장한 피라미드들이 건설된 시기이다.
1) 스네프루(Sneferu, 재위: 기원전 약 2613–2589년)
제4왕조의 첫 파라오인 스네프루는 뛰어난 건축가이자 군사 지도자였다. 그는 굴절 피라미드(Bent Pyramid), 붉은 피라미드(Red Pyramid) 등 세 개의 거대한 피라미드를 건설하며 피라미드 건축 기술을 완벽의 경지로 끌어올렸다. 그의 치세 동안 이집트인들은 광산과 해외 무역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했고, 이는 거대한 건축 프로젝트를 위한 자원으로 활용되었다.
2) 쿠푸(Khufu, 재위: 기원전 약 2589–2566년)
스네프루의 뒤를 이은 쿠푸 파라오는 기자(Giza)에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석조 건축물인 대피라미드(Great Pyramid of Giza)를 건설한다. 이는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유일하게 현존하는 건축물로, 당시 이집트의 강력한 경제력과 건축 기술, 그리고 파라오의 절대적인 권위를 상징한다. 대피라미드 건설은 이집트 고대 문명의 기술력과 조직력을 보여주는 최고봉으로 평가받는다.
3) 카프레(Khafre, 재위: 기원전 약 2558–2532년)와 멘카우레(Menkaure, 재위: 기원전 약 2532–2503년)
쿠푸의 아들인 카프레 파라오는 아버지의 피라미드 옆에 자신의 피라미드를 건설했고, 유명한 스핑크스(Great Sphinx)도 그의 피라미드 단지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카프레의 아들인 멘카우레 역시 자신의 피라미드를 세웠는데, 이전 두 파라오의 피라미드보다는 규모가 작지만 여전히 웅장하고 아름다운 피라미드이다.
이 시기의 파라오들은 절대적인 군주로서 이집트 사회, 경제, 종교의 중심에 서 있었다. 그들의 권위는 신성불가침으로 여겨졌으며, 국가의 모든 자원은 파라오의 통치와 사후 세계를 위해 동원되었다.
3. 제5왕조의 변화 (태양신 숭배와 중앙집권의 균열)
제5왕조는 고왕국의 전성기적 특징을 이어가지만, 몇 가지 중요한 변화를 겪는다. 이 시기부터 파라오의 위상이 이전의 '신'에서 '태양신 라(Ra)의 아들'이라는 개념으로 변화하기 시작한다.
1) 태양신 ‘라’ 숭배의 확립
제5왕조의 첫 파라오인 우세르카프(Userkaf, 재위: 기원전 약 2498–2491년)부터 태양신 라에 대한 숭배가 더욱 강화되었다. 그는 아부시르(Abusir) 근처에 태양신 라에게 헌정된 사원을 건설한 첫 번째 파라오이다. 이 관행은 그의 후계자인 사후레(Sahure, 재위: 기원전 약 2491–2477년), 네페리르카레 카카이(Neferirkare Kakai, 재위: 기원전 약 2477–2460년), 뉴세르레 이니(Nyuserre Ini, 재위: 기원전 약 2453–2422년) 등으로 이어지며 태양신 사원의 건설이 활발해졌다.
2) 관료제의 성장과 파라오 권력의 분산 조짐
네페리르카레 카카이의 치세부터 관료들의 권한이 점차 강화되고 이들이 사치스러운 무덤을 건설하는 경향을 보인다. 제드카레 이세시(Djedkare Isesi, 재위: 기원전 약 2414–2375년) 시대에는 프타호테프(Ptahhotep, 생몰년 미상)와 같은 지혜로운 재상들이 등장하여 행정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고, 그의 '교훈'은 후대에 귀감으로 남았다. 이러한 관료제의 성장은 파라오의 직접적인 통치 부담을 줄였지만, 동시에 권력의 분산을 초래할 수 있는 잠재적인 균열을 가져왔다.
3) 피라미드 텍스트의 등장
제5왕조의 마지막 파라오인 우나스(Unas, 재위: 기원전 약 2375–2345년)의 피라미드에서는 왕실 무덤 내부에 새겨진 최초의 종교 문헌인 피라미드 텍스트(Pyramid Texts)가 발견된다. 이는 파라오의 사후 세계에서의 안전한 부활과 신으로의 승천을 위한 주문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텍스트는 고대 이집트인들의 사후 세계관을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자료이다. 이 시기에는 파라오와 관련된 종교적 내용뿐만 아니라 비왕실 무덤에도 고인의 생애를 담은 전기가 기록되기 시작하여, 일반인의 삶에 대한 기록도 늘어났다.
4. 제1중간기로의 쇠퇴 (제6왕조와 중앙집권의 붕괴)
제5왕조 후반부터 시작된 파라오 권력의 약화와 관료제의 성장은 제6왕조에 이르러 더욱 심화되었고, 결국 고왕국 시대의 붕괴를 초래한다.
1) 페피 2세의 장기 집권과 그 영향
제6왕조의 파라오 페피 2세 네페르카레(Pepi II Neferkare, 재위: 기원전 약 2278–2184년)는 이집트 역사상 전례 없는 64년에서 94년에 달하는 매우 긴 기간 동안 통치했다. 그의 장기 집권은 파라오의 행정력 약화와 노령화로 이어졌고, 중앙정부의 통제력은 점차 상실되기 시작했다. 이는 막강한 권한을 가진 지방 행정관들, 즉 노마르크(nomarch)들의 성장을 가속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들은 자신의 지역에서 사실상의 독립적인 권력을 행사하며 중앙집권 체제를 약화시켰다.
2) 권력의 분산과 경제적 위기
지방 노마르크들의 세력이 커지고 그들의 지위가 세습되면서 파라오의 절대적인 통치는 불가능해졌다. 노마르크들은 파라오에게 보내야 할 세금을 횡령하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지역 자원을 독점하기 시작했다. 이는 국가 재정의 약화로 이어졌고, 반복되는 나일강의 불규칙한 범람과 흉년은 이집트 사회를 더욱 혼란에 빠뜨렸다.
우나스(Unas, 제5왕조 마지막 파라오) 시기부터 나타난 경제적 불안정과 이집트 외부와의 갈등, 그리고 내부 권력 투쟁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중앙 정부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다.
3) 고왕국의 종언과 제1중간기의 도래
메렌레 2세 넴티엠사프(Merenre Nemtyemsaf II, 재위: 기원전 약 2184년 – 2184년)의 매우 짧은 통치와 뒤이은 여성 파라오 니토크리스(Nitocris, 재위: 기원전 약 2184년 – 2181년)의 집권은 왕조 말기의 혼란과 불안정한 왕위 계승을 보여준다. 니토크리스를 마지막으로 제6왕조는 막을 내리고, 이집트는 왕권이 붕괴하고 지방 세력들이 난립하며 사회적 혼란이 극심한 제1중간기(First Intermediate Period)라는 암흑 시대로 진입하게 된다. 고왕국 시대의 찬란했던 피라미드 문명은 그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그 유산은 이후 이집트 문명의 토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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