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이집트] 이집트 제7왕조 : 기원전 약 2181년경
1. 짧은 혼돈의 그림자, 혹은 존재하지 않았던 왕국
고대 이집트의 역사를 살펴보면, 수많은 왕조들이 흥망성쇠를 거듭하며 위대한 문명을 꽃피웠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유독 베일에 싸여 그 존재조차 확실치 않은 왕조가 있으니, 바로 기원전 22세기 초에 등장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집트 제7왕조(Seventh Dynasty of Egypt)이다. 이 시기는 고왕국(Old Kingdom)의 끝과 제1 중간기(First Intermediate Period)의 시작을 알리는 과도기로 여겨지며, 오늘날까지도 이 왕조가 실제로 존재했는지에 대한 논쟁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2. 잊혀진 왕조인가, 혼돈의 은유인가?
제7왕조에 대한 가장 중요한 역사적 기록은 기원전 3세기에 이집트 사제 마네토(Manetho)가 작성한 역사서 《아이귑티카(Aegyptiaca)》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원본은 소실되었고, 3세기 기독교 사학자 아프리카누스(Africanus, c. 160–240)와 4세기 역사가 에우세비우스(Eusebius, c. 260–340)의 인용을 통해서만 그 내용을 엿볼 수 있다.
마네토에 따르면, 제7왕조는 매우 짧은 기간 동안 혼란스러운 통치를 이어갔다고 한다. 아프리카누스는 70일 동안 70명의 왕이 통치했다고 기록했으며, 에우세비우스는 75일 동안 5명의 왕이 있었다고 전한다. 이 왕들은 이집트의 옛 수도인 멤피스(Memphis)를 통치했다고 한다.
대부분의 이집트학자들은 이렇게 짧은 기간에 수많은 왕들이 등장했다는 기록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당시 이집트가 겪었던 극심한 정치적 혼란과 무정부 상태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해석해왔다. 다시 말해, 제7왕조는 실존했던 왕조라기보다는 혼돈 그 자체를 상징하는 개념으로 여겨져 온 것이다. 토비 윌킨슨(Toby Wilkinson)이나 위르겐 폰 베커라트(Jürgen von Beckerath)와 같은 저명한 이집트학자들도 제7왕조를 허구라고 보는 경향이 강했다.
3. 존재에 대한 논쟁과 새로운 해석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7왕조의 실제 존재 가능성에 대한 연구는 계속되어 왔다. 2015년, 이집트학자 흐라치 파파지안(Hratch Papazian)은 고왕국 시대의 몰락을 재평가하면서 제7왕조가 실존했을 수 있다는 새로운 주장을 제시했다. 그는 통상적으로 제8왕조(Eighth Dynasty of Egypt)에 속한다고 여겨지던 일부 왕들이 실제로는 제7왕조의 통치자였을 수 있다고 제안하였다.
이러한 새로운 시각은 제8왕조가 제7왕조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많은 고고학적 증거와 역사적 자료로 뒷받침된다는 점에서 시작된다. 즉, 제7왕조와 제8왕조를 별개로 보는 것이 아니라, 고왕국 이후의 혼란기를 아우르는 하나의 긴 연속선상으로 보고, 기존의 제8왕조 기록 중 일부를 제7왕조로 재배치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는 주장이 나온 것이다. 이 때문에 일부 이집트학자들은 제7왕조와 제8왕조를 묶어서 하나의 연속된 통치 라인으로 보기도 한다.
이런 논쟁들은 고대 이집트 역사 연구가 얼마나 복잡하고 흥미로운지를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단편적인 기록과 유물만으로 수천 년 전의 역사를 재구성하는 것은 늘 불확실성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4. 제7왕조의 왕들 (파파지안의 해석에 따름)
흐라치 파파지안(Hratch Papazian)이 2015년에 제안한 제7왕조의 왕들은 주로 아비도스 왕 목록(Abydos King List)에서 확인된 인물들이며, 기존에는 제8왕조 중반의 왕으로 여겨졌던 인물들이다. 이 왕들에 대한 자세한 정보나 통치 기간은 매우 제한적이며, 심지어 존재를 증명할 추가 증거가 없는 경우도 많다.
- 제드카레 셰마이(Djedkare Shemai)
- 네페르카레 켄두(Neferkare Khendu)
- 메렌호르(Merenhor)
- 네페르카민(Neferkamin)
- 니카레(Nikare) : 실린더 인장으로 추정 가능
- 네페르카레 테레루(Neferkare Tereru)
- 네페르카호르(Neferkahor) : 실린더 인장으로 증명
- 네페르카레 페피세네브(Neferkare Pepiseneb) : 토리노 왕 목록(Turin Canon)에 최소 1년의 통치 기록이 있다.
- 네페르카민 아누(Neferkamin Anu)
이 왕들의 생몰년이나 통치 기간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이는 제7왕조 시대의 극심한 혼란과 더불어, 역사 기록의 보존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방증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고대 이집트의 기록은 주로 안정된 시기에 집중되어 있기 마련이다.
5. 수수께끼 같은 존재 : 제7왕조
결론적으로, 고대 이집트 제7왕조는 아직까지도 그 실체를 명확히 규명하기 어려운, 수수께끼 같은 존재로 남아 있다. 한때는 혼란을 나타내는 상징으로만 여겨졌지만, 현대 이집트학자들의 끊임없는 연구와 새로운 증거 발견을 통해 그 존재 가능성이 다시 논의되고 있다. 이처럼 미스터리한 부분들이야말로 고대 이집트 역사를 더욱 흥미롭게 만드는 요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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