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8월 28일 목요일

[고대 근동] 아시리아 문명 :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심장, 제국들의 흥망성쇠를 겪다

[고대 근동] 아시리아 문명 :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심장, 제국들의 흥망성쇠를 겪다

 
아시리아(Assyria)는 고대 메소포타미아 북부, 특히 티그리스강(Tigris River) 유역을 중심으로 번성했던 주요 문명이다. 약 기원전 2600년경 청동기 시대부터 기원전 609년 철기 시대 말까지, 수천 년에 걸쳐 독자적인 역사와 문화를 꽃피웠다. 아시리아는 바빌로니아(Babylonia)와 함께 메소포타미아의 주요 강대국으로 성장했으며, 특히 신아시리아 제국(Neo-Assyrian Empire) 시기에는 당시 세계 역사상 가장 광대한 영토를 아우르는 강력한 제국을 건설하며 고대 근동의 정치 지형을 재편했다.
 

1. 아시리아의 태동과 초기 발전(기원전 2600년경~기원전 1364)

 
아시리아 문명의 역사는 티그리스강 중류에 위치한 도시 아수르(Assur)에서 시작된다. 이 도시는 아시리아 문명의 발원지이자 주요 종교 중심지였다.
 

1) 초기 아시리아 시대(기원전 약 2600~기원전 2025)

 
아수르 도시는 기원전 2600년경에 건립되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독립적인 도시 국가는 아니었다. 기원전 21세기 메소포타미아를 지배했던 우르 제3왕조(Third Dynasty of Ur)의 붕괴 이후, 푸주르-아슈르 1(Puzur-Ashur I, 기원전 2025년경)를 기점으로 아수르는 독립적인 도시 국가로 발돋움하게 된다. 이 시기의 아수르는 아카드 제국(Akkadian Empire)과 우르 제3왕조의 지배를 받으며 점진적으로 자신들의 정체성을 형성해나갔다.
 
 

2) 고대 아시리아 시대(기원전 약 2025~기원전 1364)

 
푸주르-아슈르 1세의 독립 이후 아시리아는 고대 아시리아 시대를 맞이한다. 이 시기의 아수르는 소규모 도시 국가에 머물렀지만, 메소포타미아 북부의 주요 무역 중심지로서 번영을 누렸다. 특히 아나톨리아(Anatolia)에 걸쳐 형성된 광범위한 무역 네트워크는 아시리아의 경제적 기반을 튼튼히 다지는 데 기여했다. 이 시기에 아시리아는 아카드어(Akkadian language)의 독특한 방언을 사용하고 고유한 달력을 발전시키는 등 남부 메소포타미아와 구별되는 독자적인 문화적 정체성을 확립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시기 아시리아는 샴시-아다드 1(Shamshi-Adad I, 기원전 1808~기원전 1776)의 지배를 받는 등 바빌로니아와 엘람(Elam) 등 여러 외세의 영향 아래 놓이는 불안정한 시기를 겪기도 했다.
 
 

2. 제국의 기틀을 다지다 : 중기 아시리아 시대(기원전 약 1363~기원전 912)

 
중기 아시리아 제국(Middle Assyrian Empire)은 아시리아가 단순한 도시 국가를 넘어 강력한 영토 국가로 전환한 시기이다. 이 시대는 아슈르-우발리트 1(Ashur-uballit I, 기원전 약 1363~기원전 1328)가 서쪽의 미탄니(Mitanni) 왕국의 종주권에서 독립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아슈르-우발리트 1세 이후, 아다드-니라리 1(Adad-nirari I, 기원전 약 1305~기원전 1274), 살만에세르 1(Shalmaneser I, 기원전 약 1273~기원전 1244), 그리고 투쿨티-니누르타 1(Tukulti-Ninurta I, 기원전 약 1243~기원전 1207)의 통치 아래 아시리아는 제1차 전성기를 맞이했다. 특히 투쿨티-니누르타 1세는 메소포타미아의 강대국이었던 카시트 바빌론(Kassite Babylonia)을 정복하며 아시리아의 패권을 확립했다. 그는 새로운 수도 카르-투쿨티-니누르타(Kar-Tukulti-Ninurta)를 건설하기도 했다.
 
그러나 투쿨티-니누르타 1세의 암살 이후 아시리아는 잠시 쇠퇴기를 겪는다. 이 시기 아람인(Arameans) 부족들의 침입으로 영토를 상당 부분 상실했지만, 티글라트-필레세르 1(Tiglath-Pileser I, 기원전 1114~기원전 1076) 시대에 다시 부흥하며 메소포타미아 북부를 재통합하고 영토를 확장하기도 했다. 비록 이 번영도 일시적이었지만, 중기 아시리아 시대는 아시리아가 단순한 도시 국가를 넘어 강력한 군사력과 효율적인 행정 체제를 갖춘 영토 국가로 성장하는 중요한 기반을 마련했다.
 
 

3. 고대 근동의 패자 : 신아시리아 제국(기원전 911~기원전 609)

 
신아시리아 제국(Neo-Assyrian Empire)은 아시리아 역사상 최전성기로, 고대 근동 세계의 지형을 바꾼 가장 강력한 제국이었다. 아슈르-2(Ashur-dan II, 기원전 934~기원전 912)와 그의 아들 아다드-니라리 2(Adad-nirari II, 기원전 911~기원전 891)가 아시리아를 재건하며 이 시대를 열었다.
 
  • 군사적 확장과 새로운 수도 건설 : 아슈르나시르팔 2(Ashurnasirpal II, 기원전 883~기원전 859)의 통치 아래 아시리아는 다시 근동의 지배적인 강대국으로 부상했다. 그는 수도를 칼후(Kalhu, 현 니므루드(Nimrud))로 옮기고, 광범위한 정복 전쟁을 통해 메소포타미아 북부를 완전히 장악하고 지중해 연안까지 세력을 뻗쳤다.
  • 제국 재편과 전성기 : 살만에세르 3(Shalmaneser III, 기원전 859~기원전 824) 시대 이후 잠시 정체기가 있었으나, 티글라트-필레세르 3(Tiglath-Pileser III, 기원전 745~기원전 727)가 왕권을 재확립하고 광범위한 개혁을 단행하며 제국의 전례 없는 확장을 이끌었다. 그는 남쪽 바빌로니아와 레반트의 많은 지역을 정복했다.
  • 사르곤 왕조의 위용 : 기원전 722년부터 제국이 멸망할 때까지 통치했던 사르곤 왕조(Sargonid dynasty) 시대에 아시리아는 권력의 정점에 도달했다. 사르곤 2(Sargon II, 기원전 722~기원전 705)는 북이스라엘 왕국을 멸망시키고 수도 두르-샤루킨(Dur-Sharrukin)을 건설했다. 그의 아들 센나케리브(Sennacherib, 기원전 705~기원전 681)는 수도를 니네베(Nineveh)로 옮기고 거대한 규모로 도시를 재건했다. 에사르하돈(Esarhaddon, 기원전 681~기원전 669)은 이집트(Egypt)를 정복하며 제국의 영토 확장을 절정에 달하게 했다.
  • 아슈르바니팔과 문화적 번영 : 아슈르바니팔(Ashurbanipal, 기원전 668~기원전 627)은 신아시리아 제국의 마지막 위대한 왕으로, 그의 시대에 제국은 문화적 번영을 누렸다. 그는 니네베에 방대한 도서관을 건설하여 수많은 점토판 문서들을 수집하고 보존했다.
 
기원전 7세기경의 부조로, 아슈르바니팔과 두 명의 왕실 시종이 묘사되어 있다.
기원전 7세기경의 부조로아슈르바니팔과 두 명의 왕실 시종이 묘사되어 있다.
 
신아시리아 제국은 잔혹한 정복 정책, 강제 이주 정책, 그리고 철저한 통제와 선전을 통해 광대한 영토를 효율적으로 통치했다. 아시리아 군대는 철기 무기와 첨단 전술을 사용하는 당시 세계 최강의 군대였다.
 
 

4. 제국의 갑작스러운 몰락(기원전 611~기원전 609)

 
역사상 가장 강력했던 제국 중 하나인 신아시리아 제국은 기원전 7세기 후반, 놀랍도록 빠르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멸망했다. 아슈르바니팔의 사망 이후 제국은 내전과 계승 분쟁으로 약화되기 시작했다. 이때 메디아인(Medes)과 신바빌로니아 제국(Neo-Babylonian Empire)이 연합하여 아시리아를 공격했다. 기원전 612, 수도 니네베가 연합군에게 함락되면서 아시리아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
 
마지막 아시리아 왕인 아슈르-우발리트 2(Ashur-uballit II, 기원전 612~기원전 609)는 하란(Harran)과 카르케미시(Carchemish)에서 저항을 계속했으나, 기원전 609년 연합군의 공격으로 결국 패배하면서 신아시리아 제국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5. 제국 이후의 아시리아(기원전 609~기원전 240년경)

 
아시리아 제국의 멸망 이후에도 아시리아 문화는 명맥을 이어갔다. 아시리아 본토의 인구는 급감했지만, 아케메네스 제국(Achaemenid Empire)과 셀레우코스 제국(Seleucid Empire) 시대에는 일부 지역에서 재건의 움직임이 있었다. 기원전 6세기 말에는 아시리아 방언 아카드어(Akkadian)가 소멸하고 아람어(Aramaic)가 민중 언어로 대체되었다.
 
기원전 1세기부터 서기 3세기까지, 파르티아 제국(Parthian Empire)의 속국이었던 오스로에네(Osroene), 아디아베네(Adiabene), 하트라(Hatra)와 같은 지역에서는 아시리아 문화가 다시 번성하는 시기를 맞이하기도 했다.
 

6. 아시리아 문명의 유산

 
아시리아 문명은 고대 메소포타미아와 근동 역사에 지대한 유산을 남겼다. 이들이 개발한 효율적인 행정 시스템, 강력한 군사 기술, 대규모 건축 및 예술 양식은 후대 페르시아 제국을 비롯한 다른 제국들의 통치 모델이 되었다. 특히 아슈르바니팔 도서관에 수집된 방대한 점토판 문서들은 오늘날 고대 근동 문명을 연구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자료이다. 비록 제국은 사라졌지만, 아시리아 민족의 정체성과 문화는 역사의 굴곡 속에서도 이어져 왔다. 아시리아는 고대 세계의 강력함과 진보성, 그리고 갑작스러운 몰락을 동시에 보여주는 중요한 역사적 사례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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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Wikimedia Commons | 퍼블릭 도메인(Public Dom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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