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근동] 신 아시리아 제국(기원전 약 911년~기원전 609년)
신아시리아 제국(Neo-Assyrian Empire, 기원전 911년~기원전 609년)은 고대 근동에서 가장 강력하고 광활한 제국 중 하나였다. 약 300년에 걸쳐 메소포타미아, 레반트, 아나톨리아, 이집트까지 아우르는 거대한 영토를 지배하며 그 위세를 떨쳤다. 아시리아인들은 효율적인 행정 체계, 첨단 군사 기술, 그리고 강력한 정치 선전으로 당시 문명 세계의 정치 지형을 재편했다. 그러나 역사상 가장 거대한 제국 중 하나였던 신아시리아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멸망하며 역사의 수수께끼를 남겼다.
1. 아시리아 국력의 부활 : 제국의 기틀을 다지다
신아시리아 제국은 이전 중기 아시리아 제국(Middle Assyrian Empire) 말기의 혼란을 수습하고 국력을 회복하는 과정에서 탄생했다. 초기 신아시리아 왕들은 메소포타미아 북부, 동부 아나톨리아, 레반트 지역에서 잃어버렸던 아시리아의 통제권을 되찾는 데 주력했다. 이는 기원전 11세기 말 아시리아가 겪었던 심각한 영토 상실을 회복하려는 노력이었다.
아슈르-단 2세(Ashur-dan II, 기원전 934년~기원전 912년)와 아다드-니라리 2세(Adad-nirari II, 기원전 911년~기원전 891년) : 이들은 초기 복원 노력의 주역이었다. 아다드-니라리 2세는 아시리아 왕 목록(Assyrian King List)에 따르면 기원전 911년에 즉위했다. 그는 영토 복원에 성공하며 신아시리아 제국의 공식적인 시작을 알렸다.
투쿨티-니누르타 2세(Tukulti-Ninurta II, 기원전 890년~기원전 884년) : 그의 통치 아래 아시리아는 영토 확장을 가속화했다.
2. 제국 건설과 확장 : 정복과 강력한 통치(기원전 9세기 중반~기원전 8세기 중반)
신아시리아 제국의 본격적인 확장기는 아슈르나시르팔 2세(Ashurnasirpal II) 시대에 시작된다.
- 아슈르나시르팔 2세(Ashurnasirpal II, 기원전 883년~기원전 859년) : 그의 통치 아래 아시리아는 다시 근동의 지배적인 강대국으로 부상했다. 아슈르나시르팔 2세는 메소포타미아 북부를 완전히 장악하고, 지중해 연안까지 군사 작전을 감행하여 그 세력을 과시했다. 그는 또한 수도를 기존의 아수르(Assur)에서 좀 더 중앙에 위치한 칼후(Kalhu, 성경에서는 갈라(Calah)로 알려짐, 현재의 니므루드(Nimrud))로 이전하여 제국의 중심을 재편했다. 그의 궁궐 유적에는 잔혹한 정복 활동을 묘사한 생생한 부조들이 남아있다.
- 살만에세르 3세(Shalmaneser III, 기원전 859년~기원전 824년) : 아슈르나시르팔 2세의 후계자였던 살만에세르 3세 시대에도 제국의 성장은 이어졌다. 그러나 그의 사망 후 아시리아는 일시적으로 정체기에 접어들었는데, 이를 "대관들의 시대(age of the magnates)"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시기에는 주요 장군들과 관리들이 실권을 잡았고, 중앙 정부의 통제력이 약화되었다.
3. 제국 재편과 최전성기 : 티글라트-필레세르 3세와 사르곤 왕조(기원전 8세기 중반~기원전 7세기 후반)
아시리아의 일시적인 정체기는 티글라트-필레세르 3세(Tiglath-Pileser III)의 등장으로 막을 내리고, 제국은 전례 없는 번영을 맞이한다.
- 티글라트-필레세르 3세(Tiglath-Pileser III, 기원전 745년~기원전 727년) : 그는 다시 아시리아 왕실의 권력을 재확립하고 광범위한 정복을 통해 제국의 크기를 두 배 이상 늘렸다. 그의 가장 주목할 만한 정복은 남쪽의 바빌로니아(Babylonia)와 레반트(Levant)의 많은 지역이었다. 그는 효과적인 군사 개혁과 행정 개혁을 단행하여 제국의 효율성을 극대화했다.
- 사르곤 왕조(Sargonid dynasty) : 기원전 722년부터 제국이 멸망할 때까지 통치했던 사르곤 왕조 시대에 아시리아는 권력의 정점에 도달했다.
- 사르곤 2세(Sargon II, 기원전 722년~기원전 705년) : 왕조의 창시자로, 수도를 두르-샤루킨(Dur-Sharrukin)으로 옮기고 대규모 건설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는 북이스라엘 왕국을 멸망시킨 왕으로도 알려져 있다.
- 센나케리브(Sennacherib, 기원전 705년~기원전 681년) : 사르곤 2세의 아들로, 수도를 니네베(Nineveh)로 옮기고 거대한 규모로 도시를 재건했다. 그는 메소포타미아에서 가장 거대한 도시 중 하나로 니네베를 만들었다.
- 에사르하돈(Esarhaddon, 기원전 681년~기원전 669년) : 아시리아 제국은 에사르하돈의 통치 아래 가장 넓은 영토를 확보했다. 그는 이집트(Egypt)를 정복하며 제국의 확장을 절정에 달하게 했다.
- 아슈르바니팔(Ashurbanipal, 기원전 668년~기원전 627년) : 신아시리아 제국의 마지막 위대한 왕으로, 그의 시대에 제국은 문화적 번영을 누렸다. 그는 니네베에 방대한 도서관을 건설하여 수많은 점토판 문서들을 수집하고 보존했다. 이는 오늘날 고대 근동 역사를 연구하는 데 가장 귀중한 자료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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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아시리아 제국의 전성기 |
4. 강력한 통치 방식과 혁신
신아시리아 제국은 광대한 영토를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여러 혁신적인 방법을 사용했다.
- 군사적 우위 : 아시리아 군대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조직적이고 효과적인 군대였다. 철제 무기의 광범위한 사용, 전차와 기병대의 적극적인 활용, 그리고 전문적인 공성(攻城) 기술은 아시리아가 적들을 압도하는 주요 요인이었다.
- 강제 이주 정책 : 아시리아인들은 정복한 민족들을 강제로 이주시켜 인구의 혼합을 유도하고 반란을 억제하려 했다. 이는 사회 공학적인 측면에서 제국의 통합을 강화하는 데 기여했지만, 동시에 피정복 민족에게는 엄청난 고통을 주었다.
- 선전과 공포 통치 : 왕실 부조, 연대기, 그리고 대규모 건축물들은 아시리아 왕의 권위와 강력함을 과시하는 선전 도구로 사용되었다. 잔혹한 처벌을 통해 반대자들을 공포에 떨게 하는 것도 효과적인 통치 수단이었다.
- 칭호의 위상 변화 : 아시리아 왕들은 단순한 지역 통치자를 넘어 자신을 "수메르와 아카드의 왕(king of Sumer and Akkad)", "우주의 왕(king of the Universe)", "세계 사방의 왕(king of the Four Corners of the World)"과 같은 칭호로 불렀다. 이는 아시리아가 전 세계의 지배자임을 표방하는 것이었다.
5. 제국의 갑작스러운 몰락 : 역사적 미스터리(기원전 612년~기원전 609년)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던 신아시리아 제국은 기원전 7세기 후반,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몰락했다. 제국의 갑작스러운 멸망 원인은 오늘날까지 학자들 사이에서 논의의 대상이다.
- 니네베 함락(기원전 612년) : 아슈르바니팔의 사망 이후 제국은 내전과 계승 분쟁으로 약화되기 시작했다. 이때 메디아인(Medes)과 신바빌로니아 제국(Neo-Babylonian Empire)이 연합하여 아시리아를 공격했다. 기원전 612년, 수도 니네베가 연합군에게 함락되면서 아시리아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
- 마지막 저항과 종말 : 니네베 함락 후에도 아시리아 왕실은 잔존 세력을 이끌고 마지막 왕 아슈르-우발리트 2세(Ashur-uballit II, 기원전 612년~기원전 609년)를 중심으로 하란(Harran)과 카르케미시(Carchemish)에서 저항을 계속했다. 그러나 기원전 609년, 연합군의 공격으로 아슈르-우발리트 2세가 패배하면서 신아시리아 제국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강력했던 제국이 불과 수년 만에 멸망한 것에 대해서는 과도한 정복으로 인한 국력 소모, 중앙의 통제력 약화, 내부 반란, 그리고 메디아-바빌로니아 연합의 압도적인 군사력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많다.
6. 신아시리아 제국의 유산
신아시리아 제국은 비록 비극적인 종말을 맞았지만, 그들이 남긴 유산은 고대 근동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들이 개발한 효율적인 통치 시스템, 군사 기술, 그리고 건축 및 예술 양식은 후대 페르시아 제국(Persian Empire)을 비롯한 다른 제국들의 모범이 되었다. 비록 아시리아인들의 본토와 주요 도시들은 파괴되었지만, 아시리아 민족의 정체성과 문화적 유산은 제국의 멸망 이후에도 명맥을 이어가며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신아시리아 제국은 고대 세계의 힘과 야망, 그리고 불가피한 몰락을 상징하는 중요한 역사적 사례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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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Wikimedia Commons | 퍼블릭 도메인(Public Dom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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