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8월 27일 수요일

[고대 근동] 초기 아시리아 시대(기원전 약 2600년~기원전 약 2025년)

[고대 근동] 초기 아시리아 시대(기원전 약 2600~기원전 약 2025)

 
초기 아시리아 시대(Early Assyrian period, 기원전 약 2600~기원전 약 2025)는 메소포타미아 북부, 특히 티그리스강(Tigris River) 유역의 아수르(Assur) 도시를 중심으로 전개된 아시리아 역사의 가장 첫 번째 단계이다. 이 시기는 푸주르-아슈르 1(Puzur-Ashur I, 기원전 2025년경)에 의해 아수르가 독립적인 도시 국가로 거듭나기 직전까지의 시대를 아우른다. 고대 세계의 초기 문명들이 탄생하고 발전하던 시기와 맞물려 있지만, 이 시대의 아시리아에 대한 물질적·문헌적 증거는 매우 희소하여 베일에 싸여 있다. 그러나 고고학적 발굴과 후대 기록의 단편적인 정보들을 통해 당시 아수르의 모습과 그 중요성을 엿볼 수 있다.

 

1. 아수르의 기원 : 신화와 고고학적 흔적

 
아수르 지역의 가장 이른 고고학적 증거는 기원전 2600년경 메소포타미아의 초기 왕조 시대(Early Dynastic Period)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아수르 인근의 니네베(Nineveh)와 같은 도시들은 아수르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존재했던 것으로 보아, 아수르 지역에도 그 이전부터 수천 년 동안 인류가 거주했을 가능성이 높다.
 
초기 아시리아 시대의 고고학적 증거는 아수르가 원래 후르리인(Hurrians)에 의해 거주되었음을 시사한다. 후르리인들은 아수르에서 여신 이쉬타르(Ishtar)에 대한 다산 숭배(fertility cult)를 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수르'라는 이름 자체는 기원전 24세기 아카드 제국(Akkadian Empire) 시대 이전에는 역사적으로 확인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도시는 원래 '발틸(Baltil)'이라는 이름으로 불렸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발틸은 후대에도 아수르의 가장 오래된 부분을 지칭하는 데 사용되었다.
 
아카드 제국이 들어서기 전 언젠가, 후대의 아시리아인들의 셈족 계열 조상들이 아수르와 그 주변 지역에 정착했다. 그들은 원래의 거주민들을 동화시키거나 대체하면서 아수르의 지배적인 인구 집단이 되었다. 이 아수르라는 도시는 신성하면서도 전략적인 위치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아수르라는 도시 자체가 신격화되어 신() 아슈르(Ashur)로 의인화되었다. 이 신은 푸주르-아슈르 1세 시대에 이르러 아시리아의 국가 신으로 확고히 자리 잡았다.
 

2. 아카드 제국 아래의 아수르 : 영향과 변화(기원전 약 2300년경)

 
기원전 2300년경, 아수르는 메소포타미아를 통일한 아카드 제국의 일부가 되었다. 이 시기에 아수르는 지역의 주요 중심지 중 하나로 성장했다. 아수르에서 발견된 가장 이른 비문은 '아수르의 총독(Išši'ak Aššur)'이라는 칭호를 가진 이티티(Ititi, ?~?)에 의해 작성된 것이다. 그는 아마도 아카드 제국의 봉신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티티는 누지(Nuzi) 지역을 약탈한 전리품을 여신 이쉬타르에게 바쳤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기록은 당시 아카드 제국이 이 지역에 대한 중앙 통제력이 다소 미흡했음을 시사하기도 한다.
 
아카드 제국의 통치 기간은 아시리아의 언어와 문화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흥미롭게도 후대의 바빌로니아인들이 아카드 왕들을 자신들의 신 마르둑(Marduk)에 대한 모욕으로 여겼던 것과 달리, 아시리아인들은 이 시기를 '황금기'로 기억했다. 많은 후대 아시리아 왕들이 아카드 통치자들을 모방하려 노력했던 것은 이러한 인식을 반영한다. 또한 고대 아시리아 시대에 확고하게 자리 잡은 아시리아의 중요한 상업 도시로서의 지위는 아카드 왕들의 정복이 새로운 무역 기회를 열어주면서 시작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아카드 왕들 아래 아수르의 황금기는 폭력적인 종말을 맞이했다. 아수르와 니네베의 초기 사원 유적에서는 격렬한 파괴의 흔적이 발견된다. 후대 바빌로니아 문헌인 나람-(Naram-Sin)의 전설에 따르면, 룰루비족(Lullubi)이라는 이민족 군대가 메소포타미아 북부를 침략했고, 아카드의 나람-(Naram-Sin) 궁궐도 약탈당했다. 이 기록들을 종합해 볼 때, 룰루비족이 실제로 메소포타미아를 침략하여 이 시기에 아수르를 파괴했을 가능성이 크다.
 

3. 우르 제3왕조의 지배 아래 : 재건과 간접 통치(기원전 약 2100년경)

 
룰루비족의 침략으로 파괴된 아수르는 재건되었다. 아카드 제국이 붕괴된 후 한 세기 내에 메소포타미아 남부는 수메르 우르 제3왕조(Third Dynasty of Ur, 기원전 약 2112~기원전 2004)에 의해 재통일되었다. 우르의 통치자들은 아카드인들만큼 메소포타미아 북부에 직접적인 관심을 두지는 않았지만, 이 지역에 대한 군사 작전을 수행하여 아수르에 대한 통제권을 확립했다.
 
남부 지역과는 달리, 아수르와 같은 변두리 도시들은 '샤칸나쿰(šakkanakkum, 총독)'의 통치를 받았다. 이러한 군사 행정 시스템은 아수르의 충성심과 공물 납부를 보장했다. 아수르의 이쉬타르 신전 폐허에서는 우르 왕 아마르-(Amar-Sin, 기원전 약 2046~기원전 2037)의 생명을 기원하며 벨랏-에칼림(Bēlat-ekallim) 여신에게 새로운 신전을 세웠다는 총독 자리쿰(Zariqum, ?~?)의 비문이 발견되기도 했다.
 
술기(Shulgi) 통치 시기의 우르 제3왕조(Third Dynasty of Ur)의 영토
기원전 약 2094년부터 2046년까지 술기(Shulgi) 통치 시기의 우르 제3왕조(Third Dynasty of Ur)의 영토를 대략적으로 나타낸 지도이다아수르(Assur)는 이 제국에서 주변부에 위치한 도시였다.
 
우르 제3왕조의 마지막 왕 이비-(Ibbi-Sin, 기원전 약 2028~기원전 2004)이 그의 제국 변두리 지역에 대한 행정적 통제력을 상실하면서, 아수르는 다시 독립적인 도시 국가로 부상했다. 이 독립은 푸주르-아슈르 1세의 통치 아래 기원전 2025년경 시작되었고, 이는 초기 아시리아 시대가 끝나고 '고대 아시리아 시대(Old Assyrian period)'의 서막을 알리는 전환점이 되었다.
 

4. 초기 아시리아 시대의 의미

 
초기 아시리아 시대는 강력한 아시리아 제국이 형성되기 전, 아수르라는 도시가 씨족 기반의 부족 사회에서 벗어나 국가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 태동기였다. 비록 역사적 자료가 매우 부족하여 이 시기의 전모를 밝히는 데는 한계가 있지만, 후르리인의 정착, 셈족의 유입, 아카드 제국의 영향, 그리고 우르 제3왕조의 지배를 거치며 아수르가 점진적으로 독자적인 정체성과 정치 체제를 발전시켜 나갔음을 알 수 있다. 도시 아수르가 결국 신 아슈르로 신격화된 것은 아시리아인들에게 아수르가 단순한 도시를 넘어 자신들의 종교적, 문화적 구심점이 되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변화였다. 이 시기는 훗날 강대한 아시리아 제국의 기틀을 마련한 중요한 준비 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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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Wikimedia Commons | 퍼블릭 도메인(Public Dom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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