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8월 28일 목요일

[고대 근동] 중기 아시리아 시대(기원전 약 1363년~기원전 912년)

[고대 근동] 중기 아시리아 시대(기원전 약 1363~기원전 912)

 
중기 아시리아 시대는 기원전 약 1363년부터 기원전 912년까지 존속했던 아시리아 역사의 세 번째 단계이자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이 시기는 아슈르-우발리트 1(Ashur-uballit I, 기원전 약 1363~기원전 1328)의 즉위와 함께 시작되어 아시리아가 단순한 도시 국가를 넘어 영토 국가로서 제국의 기틀을 마련한 시기로 평가받는다. 중기 아시리아 시대는 이후 메소포타미아를 지배하게 될 강력한 신아시리아 제국(Neo-Assyrian Empire)의 토대가 되었으며, 아시리아 역사에서 중요한 사회적, 정치적, 종교적 발전을 이루어냈다.
 
 

1. 문명의 전환점 : 도시 국가에서 영토 국가로

 
고대 아시리아 시대(Old Assyrian period) 동안 아수르(Assur)는 주로 도시 국가의 형태를 유지하며 광범위한 무역 활동으로 번영을 누렸다. 그러나 중기 아시리아 시대는 아수르가 주변 영토를 통합하고 확장하며 제국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한 시점이다. 이러한 변화는 아시리아인들의 세계관과 통치 방식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 통치 체제의 변화 : 이전 시대의 아시리아 통치자들이 '이쉬아크 아슈르(Iššiʾak Aššur)', '아수르의 총독'이라는 칭호를 사용하며 왕의 권위를 신 아수르(Ashur)에게 두었다면, 중기 아시리아 시대의 왕들은 '샤르(šar, )'라는 칭호를 사용하며 보다 전제적인(autocratic) 통치를 펼쳤다. 이는 아시리아의 왕들이 다른 제국의 군주들과 동등한 지위를 추구했음을 보여준다.
  • 행정 시스템의 발전 : 제국으로의 전환은 복잡한 행정 시스템의 발전을 필요로 했다. 효율적인 통치를 위해 도로망이 구축되고, 영토는 다양한 행정 구역으로 나뉘었으며, 왕실 관리들과 공무원들로 이루어진 정교한 조직망이 형성되었다. 이러한 제도적 발전은 광대한 영토를 효과적으로 통치하는 데 필수적이었다.
  • 종교적 변화 : 주신 아수르에 대한 숭배도 변화를 겪었다. 원래는 아수르 도시 자체를 신격화한 인격신이었던 아수르는, 이 시기에 수메르 판테온의 수장인 엔릴(Enlil)과 동일시되었고, 아시리아의 확장주의와 전쟁으로 인해 주로 농업의 신에서 군사적인 신으로 변모했다. 이는 제국으로서의 아시리아의 정체성과 군사적 성공이 종교적 신념에도 반영되었음을 보여준다.
 

2. 제국의 형성기 : 독립과 첫 번째 확장(기원전 약 1363~기원전 1207)

 
중기 아시리아 제국의 시작은 아슈르-우발리트 1세가 미탄니(Mitanni) 왕국의 종주권에서 독립하면서 본격화되었다. 그는 주변 영토를 정복하며 아시리아의 영향력을 확장했고, 비옥한 초승달 지대의 주요 강대국 중 하나로 아시리아를 부상시켰다.
 
이후 아다드-니라리 1(Adad-nirari I, 기원전 약 1305~기원전 1274), 살만에세르 1(Shalmaneser I, 기원전 약 1273~기원전 1244), 그리고 투쿨티-니누르타 1(Tukulti-Ninurta I, 기원전 약 1243~기원전 1207)의 통치 아래 아시리아는 제1차 전성기를 맞이했다. 특히 투쿨티-니누르타 1세는 중기 아시리아 제국의 절정기를 이끌었다. 그는 메소포타미아의 강력한 세력이었던 바빌로니아를 정복하며 아시리아의 패권을 확립했다. 또한, 그는 새로운 수도인 카르-투쿨티-니누르타(Kar-Tukulti-Ninurta)를 건설하여 자신의 위대함을 드러내려 했다. 그러나 그의 사망 후 이 도시는 버려졌다.
 
기원전 13세기, 중기 아시리아 제국(Middle Assyrian Empire)이 최전성기에 달했을 때의 영토를 대략적으로 나타낸 지도
기원전 13세기중기 아시리아 제국(Middle Assyrian Empire)이 최전성기에 달했을 때의 영토를 대략적으로 나타낸 지도
 

3. 제국의 부침 : 혼란과 재도약

 
투쿨티-니누르타 1세의 암살(기원전 약 1207)은 아시리아에 심각한 왕조 내 분쟁과 국력 약화를 가져왔다. 이 시기 아시리아는 제1차 쇠퇴기를 겪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정학적인 영향력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1) 첫 번째 쇠퇴기(기원전 약 1206~기원전 1115)

 
12세기 메소포타미아 전역을 휩쓴 후기 청동기 시대 붕괴(Late Bronze Age collapse)의 직접적인 영향은 받지 않았지만, 아시리아는 투쿨티-니누르타 1세의 사망 이후 비슷한 시기에 상당한 국력 약화기를 맞이했다. 그러나 이 시기에도 아슈르-1(Ashur-dan I, 기원전 약 1178~기원전 1133)와 아슈르-레쉬-이시 1(Ashur-resh-ishi I, 기원전 1132~기원전 1115)와 같은 아시리아 왕들은 바빌로니아에 대한 군사 작전을 계속 수행하며 자신의 영향력을 유지하려 했다.
 

2) 두 번째 확장기(기원전 1114~기원전 1056)

 
아슈르-레쉬-이시 1세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티글라트-필레세르 1(Tiglath-Pileser I, 기원전 1114~기원전 1076)의 통치 아래 중기 아시리아 제국은 제2차 부흥기를 맞이했다. 그는 광범위한 원정과 정복을 통해 아시리아의 영토를 크게 확장했으며, 그의 군대는 아시리아 본토에서 멀리 떨어진 지중해 연안까지 진군했다. 비록 정복된 영토 중 일부는 한동안 유지되었지만, 이 제국은 티글라트-필레세르 1세의 아들인 아슈르--칼라(Ashur-bel-kala, 기원전 1073~기원전 1056) 사망 이후 두 번째이자 더 치명적인 쇠퇴기를 겪게 된다.
 

3) 두 번째 쇠퇴기(기원전 1055~기원전 935)

 
이 시기 아시리아는 본토를 제외한 대부분의 제국 영토를 상실했다. 특히 아람인(Arameans) 부족들의 침략은 아시리아의 쇠퇴를 가속화시킨 주요 원인 중 하나였다.
 

4. 중기 아시리아의 종언과 신아시리아로의 전환

 
아시리아의 쇠퇴는 아슈르-2(Ashur-dan II, 기원전 934~기원전 912)에 의해 다시 역전되기 시작했다. 그는 아시리아 본토의 주변 지역에서 광범위한 군사 작전을 수행하며 잃어버린 영토를 되찾고 아시리아의 국력을 회복시켰다. 아슈르-2세와 그의 직계 후계자들이 아시리아 통치권을 예전 영토에 성공적으로 복구시키고 나아가 그 너머까지 확장하면서, 현대 역사가들은 이 시기를 중기 아시리아 제국에서 뒤이은 신아시리아 제국으로의 전환점으로 보고 있다.
 

5. 중기 아시리아 시대의 유산

 
중기 아시리아 제국은 아시리아 역사에서 중요한 시험대였다. 이들은 작은 도시 국가에서 강력한 영토 제국으로 발돋움하며 새로운 통치 모델과 행정 시스템을 구축했다. 비록 두 차례의 쇠퇴기를 겪었지만, 아시리아는 끈질기게 생존하고 다시 부흥할 역량을 보여주었다. 이 시기의 군사적, 정치적, 종교적 발전은 훗날 역사상 가장 강력한 제국 중 하나인 신아시리아 제국의 등장을 가능하게 한 기반이 되었다. 중기 아시리아 시대는 단순한 과도기가 아니라, 아시리아가 제국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그 지위를 굳건히 다진 중요한 시대였다.
 
=-=-=-=-=-=-=-=-=
이미지 출처: Wikimedia Commons | 퍼블릭 도메인(Public Domain)

댓글 없음:

댓글 쓰기

참고: 블로그의 회원만 댓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

모우리(Eli Miller Mowry, 1878-1971) 한국명 모의리(牟義理), 미국 북장로회 선교사ㆍ목사

모우리 (Eli Miller Mowry, 1878-1971) 한국명 모의리 ( 牟義理 ) 미국 북장로회 선교사ㆍ목사 .   【 1878 년 】 미국 오하이오주 벨빌 (Bellville) 근교에서 사무엘 모우리 (Samuel Mowry, 1850-1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