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15일 월요일

사이몬 김방구 [Simon Kimbangu, 1889~1951] 아프리카 대륙의 선구자

사이몬 김방구 [Simon Kimbangu, 1889~1951] 아프리카 대륙의 선구자

 
사이몬 김방구의 연보
 
1889
  • 벨지움이 식민 통치하던 콩고(지금의 자이레) 지역에서 출생하였다. [위키피디아 영문판에서는 김방구가 1887912일에 태어났다고 기록되어 있다.]
  • 어머니 킨셈보(Kinsembo)가 폭도들의 공격을 피해 집으로 숨어 들어온 영국 침례교회 선교부의 카메론(G. R. Cameron) 선교사를 보호해 주자 그 선교사는 어린 김방구를 축복하고 떠났다는 일화가 남아 있다.
 
1915
  • 아내와 함께 영국 침례교 선교회의 곰베 루테테(Ngombe Lutete) 미션에서 세례를 받았다.
 
1918
  • 복음 증거를 위한 침례교회 평신도 설교자로 임명되었다.
 
1921
  • 캄바(Nkamba)에서 기적과 치유의 은사가 나타나는 공개 집회가 시작되었다.
  • 침례교회가 김방구의 은사를 인정하자 대대적인 부흥이 일어났다.
  • 김방구를 따르던 일부 추종자들이 세금 납부를 거부하고 카톨릭 성당을 훼손하자 김방구에 대한 체포 명령이 내려졌다.
  • 7월에 도피를 시작하였으나 9월에 자수하여 30년 간의 투옥 생활 시작하였다.
 
1951
  • 1012, 엘리자베스빌의 감옥에서 사망하였다.
 
기타
  • 1954, 사이몬 김방구의 아들 조셉 디안기엔다(Joseph Diangienda)에 의해 김방구 교회를 재건하였다.
  • 1957, 김방구 교회에 대한 핍박이 공식적으로 끝났다.
  • 1960, 김방구의 유해가 캄바에 안치되고 이 도시는 새 예루살렘으로 선포되었다.
  • 1969, 김방구 교회가 세계교회협의회(WCC)의 회원 교단으로 가입하였다.

사이몬 김방구의 생애와 사상

아프리카 대륙의 선지자, 사이몬 김방구(Simon Kimbangu)의 이름이 우리에게 생소하게 들리는 것은 단지 다른 것을 연상시키는 그의 이상한 이름 때문만은 아니다. 지금까지 우리에게 알려진 세계 교회사의 중심 인물들은 대부분 유럽 출신의 신학자들이거나 미국 교회의 지도자였기 때문에, 검은 대륙 아프리카의 작은 나라인 자이레에서 태어난 김방구의 이름이 우리에게 생소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기독교의 중심축이 유럽과 북미에서 적도 이남의 남반부로 급격히 이동하고 있는 지금, 우리는 이제 유럽과 백인 중심의 교회사 연구에서 벗어나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이제 더 이상 유럽이 기독교를 대표하는 대륙이 아니다. 오히려 아프리카와 라틴 아메리카의 기독교가 급속하게 성장하면서, 새로운 남반부 기독교’(Southern Christianity) 시대가 도래하고 있음을 알리고 있다. 남반부 기독교 등장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아프리카 대륙의 선지자 사이몬 김방구의 삶과 사상을 살펴보기로 한다.

김방구라는 이름에는 숨겨진 진리를 드러내는 사람이란 뜻이 담겨져 있다. 벨지움이 콩고지역을 식민통치할 19세기 말에 태어난 김방구는(1889), 영국 침례교 선교본부 소속의 학교에서 기본 교육을 이수하였다.
 
1915년 아내와 함께 세례를 받고 곧 성경 인도자로 임명되었으나, 영국 침례교단에서 실시하는 목사 시험에 합격하지 못했다.
 
1918년부터 2년간 장질부사가 그가 살고 있던 지역을 휩쓸고 지나갔을 때, 김방구는 자신에게 기적적인 치유의 은사가 있음을 경험하면서, 지금까지 숨겨져 있던 새로운 영적 세계를 경험하기 시작한다. 꿈을 통한 계시와 치유의 은사가 계속 나타났지만, 자신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기적으로 인한 두려움 때문에 인근 큰 도시의 오일공장에 취직하여 영적인 도피 생활을 하게 된다.

192146일은 김방구 생애의 중요한 날이었다. 이 날부터 김방구는 오일 공장에서의 영적인 도피 생활을 청산하고, 공식적인 치유 사역과 대중 전도집회를 이끌기 시작한 것이다. 김방구는 이 치유 집회를 직접 인도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기독교로 개종시키는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고, 그때부터 사람들은 콩고 땅에 선지자(ngunza)가 나타났고 믿기 시작했다. 그러나 일부 선교사들의 모함과 벨지움 식민 정부의 정치적 계산에 의해 김방구에 대한 체포 명령이 내려졌다. 식민 정부에 저항하는 저항 단체를 구성하였다는 혐의를 그에게 씌운 것이다.

식민정부로부터 수배를 받고 도피중이던 김방구는 1921912일 당국에 자수하였지만, 반란죄 혐의로 사형선고를 받는다. 그러나 김방구의 신유 집회에 대해 긍정적인 견해를 가졌던 일부 선교사들의 탄원으로 벨지움 식민 정부는 김방구를 사형에서 종신형으로 감형하였다.
 
19511012일 감옥에서 사망할 때까지 약 30년 간 김방구는 감옥에 갇힌 몸으로 자신의 이름을 딴 김방구 교회’(Kimbanguist Church)가 아프리카 최대의 독립교단으로 발전하는 것을 지켜보아야만 했다.

김방구가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 특별히 1924년부터 1930년까지, 그의 교회는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였다. 벨지움 정부의 감시와 탄압을 피해 많은 김방구 교회의 교인들이 인근 국가로 도피하면서 김방구 교회가 타 지역으로 전파되었던 것이다. 김방구가 감옥에서 사망한 다음, 그의 막내 아들(Kuntima Joseph Diangienda)이 공식적으로 김방구 교회를 이끌기 시작했다.
 
1969년에는 공식적으로 세계교회협의회(WCC) 회원 교단으로 등록하는 등, 현재까지 아프리카 대륙의 가장 큰 독립 교단 중의 하나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김상근, 교회사를 바꾼 30명의 인물들, 245-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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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는 그의 독특한 이름 때문에 한번 들으면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장점(?)을 갖고 있다.
 
인생의 거의 절반(30)을 감옥에서 보낸 그의 이름을 딴 김방구 교회’(Kimbanguist Church)는 아프리카 대륙의 가장 큰 독립 교단 중의 하나라고 한다.
 
만약 그가 선교사가 되었더라면, 절대로 우리나라에는 선교하러 올 수 없는 이름이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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