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8일 월요일

김병농 [金炳穠, 1876~1952] 장로교 목사, 독립운동가

김병농 [金炳穠, 1876~1952]

장로교 목사
 
1919년 의주읍 만세운동으로 투옥된 김병농 목사 

1876
  • 48일에 평안북도 철산군(鐵山郡) 참면(站面) 거연관(車輦館) 차련관(車輦館) 유정동(柳亭洞)에서 태어났다.
  • 그는 김관근 목사의 조카이다.
 
1894
  • 순검(巡檢)으로 근무하였다(1895년까지).
 
1896
  • 아들 김태규(의열단원)가 출생하였다.
 
1912
  • 평양 장로회신학교를 졸업하였다(5).
  • 8월 평북노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았다.
  • 남제ㆍ낙원ㆍ용상 등 세 교회를 담임하였고 그해 전라노회로 이주, 전주 서문밖교회에서 1년간 시무하였다
  • 11월 24일, 전주서문교회 제5대 담임목사로 부임(1914년 8월 28일 이임)
 
1915
  • 523, 사월교회 제4대 담임목사로 부임하다. 그는 한국인으로는 처음 담임목사가 된 것이다.
 
1916
  • 철산군의 차련관교회에서 시무하였다. (김병농 목사의 후임으로 평양 장로회신학교 제4회 졸업생인 김덕선 목사가 1918년 부임하였다)
 
1918
  • 만주 안동현교회에서 시무하였다.
 
1919년
  • 2월 초순 중국 상하이에서 들어와 평북 지역에서 독립운동을 독려하던 선우혁(鮮于赫)과 만났다.
  • 215일에 의주군 고령삭면(古寧朔面)에 있는 교회 목사인 이원익(李元益)으로부터 독립 만세 시위가 준비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 228일 이원익으로부터 다음 날인 31일에 의주에서 독립선언식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에 찬성하여 그날 밤 유여대 등과 양실학교 사무실에서 만나 사전 준비에 동참하였다.
  • 32일 의주면 칠현(七峴)에 있는 아동여관(亞東旅舘) 김준모(金俊鍵)의 집에서 서울에서 독립 만세 시위를 준비하던 기독교계 함태영(咸台永)이 보낸 김지환(金智煥)을 만났다. 김지환이 건넨 독립선언서와 미국 대통령에게 보내는 밀서를 상하이의 동지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임무였다. 하지만 이 사실이 발각되어 붙잡혀 서울로 이송되었다.
  • 11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형을 선고받고 항소하였다.
 
1920
  • 227일 경성복심법원이 항소를 기각하였으나, 상고를 포기하고 옥고를 겪었다.
 
1922
  • 장로교총회에서 남만주 선교사로 파송되어 남만주 일대의 선교사업에 앞장섰다.
 
1952
  • 49일 별세하였다.
 
기타
  • 2010, 대한민국 정부는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아들 김태규는 의열단원이었으며, 김태규의 아내 박애신(190~1969)은 신혼 때부터 한평생 시아버지인 김병농과 남편의 옥바라지를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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