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두 [金善斗, 1876~1949]
장로교 목사, 일제강점기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장, 독립운동가
【1876년】
- 평남 평양에서 출생하였다.
【1901년】
- 기독교에 입교하였다.
【1907년】
- 평양 숭실중학교를 졸업하였다.
- 숭실중학교 교원으로 재직하였다.
【1908년】
- 평양 장대현교회 장로로 장립되었다.
- 숭덕ㆍ숭현 양학교 교감으로 봉직하였다.
【1909년】
- 평양 서문밖교회 장로로 봉직하였다.
【1910년】
- 숭실전문학교를 졸업하였다.
【1913년】
- 평양 장로회신학교를 졸업하였다(제6회).
- 6월에 목사안수를 받았다.
- 서문밖교회 목사로 부임하였다.
【1915년】
- 숭실전문학교 강사를 겸임하였으며 평양노회장에 피선되었다.
【1918년】
- 장로회 총회장에 피선되었다.
【1919년】
- 3ㆍ1운동 당시 만세시위에 적극 참여하여 평양시위운동을 주도하였다.
- 1919년 8월 21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개월(미결구류일수 120일 본형 산입) 형을 선고받자 항소하였다. 9월 19일 경성복심법원이 원판결을 취소하고 징역 1년 2개월(미결구류일수 120일 본형 산입)을 선고하자 상고하였으나, 10월 20일 고등법원이 기각하여 옥고를 겪었다. [평양만세시위 관련자료]
【1920년】
- 4월 30일, 만기 출옥하였다.
【1922년】
- 평양신학교에 출강하였으며 평남 대동군에 있는 송산리교회를 담임하였다.
【1924년】
- 평양의 신암교회에서 시무하였다.
【1926년】
- 평북 선천에 있는 신성중학교 교장으로 재직하였다. 선천 신성중학교(信聖中學校)에 성경담당교사로 부임하여 당시 교장이었던 미국인 선교사 함가륜(咸嘉倫, Hoffman, C.)을 보좌하여 대리 시무를 하였다.
【1930년】
- 평양노회장에 피선되었다.
【1933년】
- 함북 성진에 있는 옥정교회를 맡아 시무하였다.
【1935년】
- 만주 봉천교회 목사로 시무하였다.
【1938년】
- 봉천신학교 교수를 역임하였다.
- 일제 말기에 강요된 신사참배에 적극 반대하여 참배거부운동을 대대적으로 일으키고 직접 일본을 방문하여 일본 교계는 물론 정계 거물들과 회담하는 등 적극적인 활동을 벌였다. 그러나 귀국 후 일제에 의해 수감되었고 그가 의도한 운동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 만주신학원을 설립하는데 한몫을 담당하였다.
【1946년】
- 해방 후 월남하여 교회와 신학교를 위해 남은 여력을 다해 봉사하였다.
【1949년】
- 서울에서 별세하였다.
【기타】
- 그의 아들 김성락(金聖樂)은 목사로서 신학자로서 숭실대학장 등을 지냈다.
- 2007년 대한민국 정부는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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