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주 [金國柱, 1872~1960]
장로교 목사.
【1872년】
- 평북 용천군 양하면에서 출생하였다.
【1888년】
- 2월, 장남 김성겸이 태어나다.
【1910년】
- 형인 김건주와 함께 평양 장로회신학교를 졸업하고(제3회) 목사안수를 받았다.
- 그후 덕천(德川)교회에 부임하여 시무하였다.
- 교육사업에 뜻을 둔 그는 보명학교를 설립하고 교장으로 봉직하면서 인재양성에도 힘썼다.
【1960년】
- 별세하였다.
【기타】
- 함석헌은 저서 <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한길사 펴냄)에서 김국주에 대해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목사 중에 내 속에 존경하는 마음을 일으켜준 이 별로 없었다. 가장 인상 깊은 이는 처음에 나 자라던 교회의 목사 노릇을 했던 김국주 목사다. 주일이면 20리 밖에 있는 자기 집에서 당나귀를 타고 와서 예배를 보아주고 가곤 했는데, 그는 참 온순한 점잖고 말 적은 이였다. 인자해 뵈는 이였다.”
- 연세의대 부산동창회의 효시인 1호 동창은 김성겸 회원(1914년 졸업)이라고 밝혔다. 편찬위원회에 따르면 김 회원은 목사 김국주 씨의 장남으로 1888년 2월 평안북도 용천군에서 태어나 보명중학교를 졸업하고, 1909년 9월에 세브란스병원 의학교에 입학했다. 1914년 세브란스연합의학교 제4회 동기 졸업생은 모두 15명. 김 회원은 졸업하던 해에 조선총독부의원에서 최초로 실시한 조선의사시험에서 합격, 의사면허 58번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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