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9일 화요일

김기원 [金基源, 1858~1941] 장로교 목사, 대구 최초의 기독교인

김기원 [金基源, 1858~1941]

장로교 목사.
 

1858
  • 113, 경북 상주군 낙동면 화산리에서 김목응(金沐應)과 전주 이씨 사이에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1865
  • 8세에 상주군 화산동 사숙에서 수학하였다.
 
1875
  • 18세에 조승장(趙承章)과 결혼하여 2남을 두었다.
 
1891
  • 심한 종창으로 부산 선교지부의 의료선교사인 하디(Dr. R. A. Hardie)를 만났으나 고칠 수 없다는 진단을 받고 실의에 빠졌다. 그런 그에게 하디 선교사는 예수를 믿도록 전도하였고, 하디 선교사의 전도를 받은 그는 부산 선교지부의 손안로 목사(Rev. W. L. Swallon)에게 세례를 받았다.
 
1893
  • 428() 베어드 선교사가 경북지방을 여행할 때에 베어드 선교사를 영접하여 친척들을 소개하고 음식을 대접하였다.
 
1894
  • 베어드 선교사가 상주에 들렀을 때 그를 따라 부산으로 내려갔다.
 
1895
  • 5, 부산에서 아담스(James Edward Adams, 1867~1929 安義窩) 선교사를 만나 그의 어학선생 겸 조사가 되었다.
 
1896
  • 대구 남성정교회 조사로 시무하였다.
 
1897
  • 아담스 선교사 가족이 대구선교지부에 부임할 때 아담스 선교사의 어학선생 신분으로 동행하여 대구 남문 안에서 첫 예배에 참석한 유일한 조선인이 되었다.
  • 장로회보(長老會報)에는 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명치 27년 안의와 선교사를 상봉하여 전도를 받고 결신하시매 경북에 초신교인(初信敎人)이요, 그 후에 첫 전도사요, 첫 장로요, 첫 목사로 피임되시다.”
 
1900
  • 영천 조곡교회에서 시무하였다.
 
1902
  • 선산 괴평교회, 김천 송천교회에서 시무하였다.
  • 송천교회의 초기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김기원(金基源)이다.
    그는 김재수(金在洙)로 불리다가 언제부터인가 김기원으로 개명했다. 그는 우리 교회와 깊은 관련이 있는 인물로 부해리 선교사의 경북 서편 지방 선교 활동에 함께 참여하여 1901년 송천교회 창립 이후 1902년부터 1909년까지 조사(助事)로서 교회를 섬겼다.”
 
1903
  • 구미 상모교회에서 시무하였다.
 
1904
  • 구미 진평교회(현 구미강동교회), 칠곡 죽전교회에서 시무하였다.
 
1906
  • 김천 월명교회에서 시무하였다.
 
1907
  • 칠곡 황학교회에서 시무하였다.
 
1908
  • 구미 진평교회에서 시무하였다.
 
1909
  • 선산 상림교회, 구미 상모교회에서 시무하였다.
 
1910
  • 선산 도산교회(현 산동교회), 월호교회(현 해평교회), 군위 봉황교회, 대구 침산교회에서 시무하였다.
 
1913
  • 대구 신당교회, 무등교회에서 시무하였다.
  • 평양 장로회신학교를 졸업하였다(6).
 
1914
  • 1, 경상노회 제7회 임시노회에서 경남 진해 웅천읍교회 초대 목사로 안수를받았고, 그해 경남 웅천지방에서 시무하였다.
 
1915
  • 경북노회로 이명하여 경산 사월교회에서 시무하였다.
 
1916
  • 영천 평천교회, 조곡교회(현 대창교회), 성내교회(현 영천제일교회), 명주교회, 동도교회, 의성 양지교회에서 시무하였다.
 
1917
  • 경산 동호교회(현 반야월교회)에서 시무하였다.
 
1918
  • 경산 사월교회에서 시무하였다.
 
1919
  • 31운동 당시에는 인접 대구의 만세시위운동을 목격하고 경주로 내려가 친분이 두터운 박내영(朴來英) 목사와 윤기효(尹琪涍)ㆍ박문홍(朴文泓) 영수 등에게 목격한 만세시위의 소식을 상세히 전하고 거사를 종용하였다. 이를 계기로 경주만세시위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다.
 
1920
  • 경남 진영에서 시무하였다.
 
1924
  • 경북 서남지방에서 전도 목사로 시무하였다.
 
1925
  • 대구중앙교회에서 임시목사로 시무하였다.
 
1931
  • 대구 남성정교회(현 대구제일교회)에서 최재화 목사 재임 중 동사목사로서 시무하였다(1936년까지)
 
1932
  • 대구중앙교회 목사를 사임하였다.
 
1941
  • 121일 오전 9시에 향년 84세로 소천하였다.
  • 장례식은 경북노회장으로 치러졌으며 장지는 성서 시립공원묘지에 안장되었다(지금은 이장하여 그의 묘지를 찾을 길이 없다).
  • 조승장과 사이에 석진(石鎭), 일진(溢鎭)의 자녀를 두었으나, 아버지의 고달프고 가난한 목회생활을 보고 믿음생활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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