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14일 일요일

이수정 [李樹廷, 1842~1886] 초기 기독교인, 성서번역가

이수정 [李樹廷, 1842~1886]

초기 기독교인, 성서번역가
 
이수정과 그가 자필로 쓴 신앙고백문(1883년경)

1842
  • 전남 곡성군 옥과면에서 이병규의 아들로 출생했다. 그 가계는 전주 이씨의 왕족과 근척인 집안으로 추정되며 학식이 높고 가풍이 당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 몇몇 정황에 의거 평창 이씨인 천주교인 이승훈(李承薰)의 후손으로도 전해진 바 있으나 왕족 전주 이씨일 가능성이 더욱 높다.
 
조정에 등용됨
  • 총명했던 이수정은 곧 조정에 등용되어 여러 방면에서 공로를 세우고 일설에는 도승지의 벼슬에까지 오른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1881
  • 1881년 일본을 다녀온 신사유람단의 한 수행원이었던 안종수(安宗洙)는 이수정과 절친한 사이로 귀국 후 일본에서 만난 일본 농학계의 거두이며 기독교 지도자인 츠다센(津田仙)의 이야기를 이수정에게 전하였다. 이수정은 새로운 문물에 대한 호기심으로 일본에 가려고 노력했다.
 
1882
  • 당시 조정의 유력자 민영익과는 깊은 교분을 가진 바 있고 더구나 임오군란 당시에는 명성왕후 민비를 충주까지 무사히 피신시킨 공로로 인해 왕실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 18829월 그의 희망대로 도일할 기회가 왔다. 즉 민비 보호의 공로 등으로 고종의 특별한 배려가 있었고 토오쿄오 외국어 대학의 한국어 교수직이 마련됨으로, 정부의 공식적 임무 없이 서구 문물에 대한 자유로운 연구가 보장된 셈이다.
  • 1882920일 제물포를 떠나 부산을 거쳐 929일 요코하마에 도착하였다. 수신사 박영효 일행과 함께 도일한 이수정은 먼저 안종수가 소개한 츠다센을 만났다. 이수정은 츠다센으로부터 받은 한문성서를 탐독하기 시작했고 그 무궁한 진리에 매료되었다.
  • 1882년 성탄절, 츠다센의 안내로 예배에 참석하였다.
 
1883
  • 1883429일 토오쿄오 노월정(露月町)교회에서 야스가와(安川亨) 목사의 입회 하에 녹스(G. W. Knox) 목사에게 세례를 받았다.
  • 그해 58일부터 시작된 토오쿄오에서 모인 제3회 전국기독교도대친목회에 참석, 특별기도순서를 맡아 한국어로 기도하였다(511). 이어 이수정은 요한복음 14장을 본문으로 한 자신의 신앙고백서를 발표하였는데 이는 확고하고 성숙한 신앙고백으로 일본의 잡지인 陸合雜誌3418835월호에 게재되었다.
  • 이수정이 곧바로 착수한 일은 성서의 한국어 번역이었다. 그는 먼저 한문성서에 토()를 단 懸吐韓漢新約全書를 간행하였고 이어 순한글성서인 신약마가젼복음셔언ᄒᆡ(1884)를 번역하였다.
  • 이수정의 또 하나의 공헌은 한국에서의 개신교 선교실시를 앞당기도록 한 노력이다. 18831213일부로 외국 선교잡지인 The Missionary Review에 한국선교를 호소하는 기고를 했고 1884년에는 녹스 선교사의 이름으로 Conditions in Korea라는 제목의 글을 같은 지면에 실었다. 이는 초기의 한국에 나온 개신교 선교사들의 한국 선교 동기를 북돋워 주는 역할을 하였다.
  • 그는 일본주재 매클레이(R. S. Maclay) 선교사를 김옥균과 접촉시켜 한국을 방문케 하고 고종을 만나 교육과 의료선교 실시의 윤허를 받아내는 데에도 큰 조력자가 되었다.
 
1885
  • 그밖에도 윤치호 등 일본 유학생들을 지도 감독한다는 자리에 있으면서 이들에게 전도, 18857명이 모이는 예배집회를 시작함으로 이후 토오쿄오한인유학생교회의 모체를 이루기도 하였다.
  • 개화당의 주요 인물이던 김옥균ㆍ박영효ㆍ홍영식ㆍ서재필ㆍ서광범 등에게도 복음을 전했으며 한국에 부임하기 전에 일본에 들렀던 초대 한국복음선교사 언더우드ㆍ아펜젤러 등에게 한국어를 가르쳤고 그가 번역한 마가복음서를 들려 보냈다.
 
1886
  • 18852월 이후 이수정은 성경 번역 사업에서 손을 떼었으며, 연말의 身病에 이어, 1866년 초 김옥균 일파가 보낸 자객에 의해 두 차례 암살 미수를 당하여 큰 상처를 입었다.
  • 정부가 18866월초에 박준우를 보내 일본에 있는 유학생들을 귀국시켰는데, 이때 이수정이 돌아왔다. 이수정은 1885년 이미 언더우드와 아펜젤러와 같은 미국 선교사들이 한국에 들어가서 떳떳이 포교활동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것이므로, 기독교인이라는 것이 별로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 이수정과 함께 귀국한 유학생 6명 중 유형준(兪亨濬), 김한기(金漢琦), 박영석(朴永祏), 유송목(兪頌穆) 등과 뒤따라 귀국한 장은규(張溵奎), 박영빈(朴永斌) 6명은 귀국 후 김옥균 잔당으로 몰려 처형되었다. 이때 이수정은 처형자 명단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이때 귀국한 8명이 모두 처형된 것으로 보도되었다.
 
기독교대백과사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김혜숙, “순교자 이수정 연구”, 성신여자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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