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최초의 도시 에리두
현재 일반적으로 최초의 도시는 에리두(Eridu)로 알려지고 있다. 에리두는 수메르어로 ‘최초의 성지’라는 뜻이다. 이 도시는 거의 2천 년 동안 세상에 잊혀졌으나, 1953년 영국인 존 테일러(John Taylor)에 의해 발굴되면서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테일러는 바스라(Basra)의 부영사로 아브라함의 도시 ‘우르’(ur)에서도 고고학적 발굴을 이끌었다. 우르에서 사막으로 약 20킬로미터가량 떨어진 곳에 있는 에리두의 언덕을 그 지역 유목민들은 ‘두 초승달의 아버지’라는 뜻으로 ‘아부 샤라인’이라고 불렀다.
오늘날 에리두는 바람만이 황량하게 불어대는 버림받은 도시가 되었다. 이란-이라크 전쟁이 한창이던 시기 이라크의 대공포대 진지가 자리 잡았던 곳이지만, 고대 메소포타미아 역사에서 가장 찬란한 문명을 빛냈던 곳이지만, 고대 메스포타미아 역사에서 가장 찬란한 문명을 빛냈던 곳 중의 하나였다. 수메르인은 에리두가 창조의 땅, 즉 태초에 원시의 바다에서 솟아오른 최초의 육지라고 믿었다. 따라서 그들은 세상을 다스릴 왕이 하늘에서 이 땅에 처음 내려온 곳도 에리두라고 생각했다. 수메르의 신화에서도 에리두는 언제나 중심에 서 있다. 에리두는 원래 바닷가에 세워지고, 그 도시를 감싼 물은 남쪽의 압수(Apsu)까지 연결되었다. 에리두에 세워진 신전에도 ‘압수’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이 신전은 수메르에서 가장 오래된 신전으로 물을 다스리는 태고의 신이며 지혜의 신인 엔키가 거주하는 곳이다. 또한 엔키는 인간을 비롯한 자연의 모든 생명체가 태어난 태고의 바다를 가리키는 이름이기도 하다.
에리두는 페르시아만에서 내륙 쪽으로 150킬로미터 이상 들어간 곳으로 바아와 육지의 중간 지역이라는 점에서 독특하다. 에리두는 충적 평원 근처에 있고, 주변에 소택지도 많다. 따라서 충적토, 사막, 소택지의 세 가지 생태적 환경으로부터 큰 혜택을 누리고 있었으며, 따라서 농경, 낙농, 어업의 세 가지 생활양식이 고루 발달했다. 그러나 에리두가 발달한 데는 종교적인 이유도 컸다.
이 도시는 분지 안의 작은 언덕 위에 있어서 지하수가 모이는 곳이었다. 주변 지역은 늪지나 다름없었고 우기에는 커다란 호수가 생겨났다. 이런 지형은 지구가 하나의 커다란 원반이며 주변에 많은 물이 에워싸고 있다고 본 메소포타미아의 우주관과 잘 들어맞았다. 지형적 관점에서도 에리두는 성소였다. 고대 수메르인들은 에리두를 모든 지혜의 원천이자 지식의 신이 거처하는 곳이라고 믿었다. 페트로 차르바트는 “최초의 명확한 보편 종교가 에리두에서 탄생했다”고 말한다.
1949년 에리두의 발굴 작업이 대대적으로 시작되었다. 고고학자들은 우리의 왕들이 기원전 2000년경에 건설한 것으로 알려진 지구라트의 기초석 아래까지 파고들어갔다. 그런데 거기서 깜짝 놀랄만한 일이 일어났다. 지구라트 아래로 19개 층이 다시 발견된 것이다. 신전의 건설은 기원전 50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바닥에는 작은 예배실을 갈대로 둘러친 자그마한 모래언덕이 있었다. 그들의 신화에서 그곳이 최초의 땅이었다는 믿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내 보인 언덕이었다.
땅 속에 묻힌 에리두가 드러나면서 사람들은 이곳이 『성경』에 나오는 에덴동산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성경』에서 낙원을 뜻하는 에덴(Eden)은 수메르어로 ‘에딘’(Edin)이다. 에딘이란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는 원형 그대로의 땅, 도시의 인공적인 경관에서 벗어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곳을 말한다. 문명 세계는 인간이 에덴에서 추방당하면서 시작되었다. 또한 선악을 알게 해주는 나무의 열매는 우리를 땅의 주인으로 만들어주었고, 결국에는 땅과 함께 우리 자신을 파괴하는 힘까지 보유하게 해주었다. 초기의 우바이드 마을은 원시 상태의 진흙과 갈대로 조성된 성소였다.
그런데 기원전 4000년경 극적인 변화가 일어나 이곳에 웅장한 건축물이 세워지기 시작했다. 기념비적인 건축형태를 갖춘 거대한 신전이었다. 선택받은 사람들을 위한 웅대한 무덤들은 그 당시에도, 계급제도가 있었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황금을 비롯한 세공품과 수입된 사치품에서 선택받은 사람들이 에리두의 넘치는 부를 관리했을 것이라고 짐작하게 해주었다. 지구라트 언덕을 중심으로 에리두에 수천 명이 모여 살고 있었다. 에리두는 조직화된 공동체가 처음으로 형성되고 신전과 도시가 세워지면서 왕권이 성립될 때까지의 역사적 과정을 사실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에리두는 수메르 문명의 시작이었다.
임영태, 『스토리 세계사 1 - 고대편 I』, 94-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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