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2월 15일 목요일

한국성서위원회(The Bible committee of Korea)

한국성서위원회(The Bible committee of Korea)

 
아펜젤러의 순직
 
감리교 아펜젤러는 1902516-21일 평양에서 개최된 미 감리회 매년회에서 남방지역 장로사로 임명되어 연회 직후 무어(Moore) 감독과 함께 시흥 무지내교회를 방문하러 가던 중, 경부선 철도 공사를 하던 일본인 노무자들에게 폭행을 당하는 사건이 벌어졌는데, 이 사건의 목격자로서 재판에 증인으로 참석해야 하는 일 때문에 목포로 출발하는 일정이 늦어졌다. 그래서 아펜젤러는 제때 배를 타지 못하고 611일 조수 조한규와 함께 인천을 출발하여 목포로 가다가 어청도 앞바다에서 배가 충돌하는 조난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아펜젤러가 한국 개신교 개척 선교사로서 복음 전도와 교육, 문서 출판 등 선교 전반에 기여한 공로도 크지만 성서 번역과 반포 사역에서도 그가 남긴 공은 지대한 것이었다. 아펜젤러의 순직으로 성서 사업에서 막대한 손실을 입은 것은 물론이었다. 성서 번역자회는 효율적인 성서 번역을 위해 특단의 조처가 필요했고 다음과 같은 변화를 시도하게 된다.
 
성서공회 연합지부조직
 
한국에서 개별적으로 사업을 전개하고 있던 영국과 미국, 스코틀랜드 등 3개 성서공회가 연합정신을 바탕으로 번역과 출판 사역을 추진할 수 있는 연합지부’(Joint Agency)를 조직하는 형태로 추진되었다. 상임성서실행위원회를 중심으로 1901년부터 논의되기 시작한 연합 지부설치 논의는 각국 성서공회 내부 입장 차이로 진척을 보이지 못하다가 19039월에야 합의 단계에 이르렀고, 190411일부터 연합지부를 설치하고 공동 총무에 켄뮤어, 협동 총무에 밀러(H. Miller)가 취임하여 이때부터 단일 노선으로 한국에서의 성서 사업을 추진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성서 번역과 간행 체제도 재정비하여 상임성서실행위원회를 해체하고 3개국 성서공회, 장로교와 감리교 6개 선교회 대표들이 참여하는 한국성서위원회’(The Bible committee of Korea)를 조직하였으며 그 산하에 성서 번역자회를 두었다.
 
성서위원회에 참여한 선교부는 미국 북장로회와 남 장로회, 호주 장로회와 캐나다 장로회, 미 감리회와 남 감리회 등이었고 성서 번역과 출판 비용은 3개국 성서공회가 다 분담하기로 하여 영국성서공회와 미국성서공회가 각 5분의 2, 스코틀랜드 성서공회가 5분의 1을 감당하기로 하였다.
 
이처럼 조직과 체재를 정비하고 재정적인 후원도 원활하게 이루어지면서 성서 번역 작업은 탄력을 받게 되었다. 특히 영국성서공회에서 번역자 1인 경비를 전담하기로하자 레이놀즈가 그 일을 자원하여 그는 남 장로회의 승인을 받고 다시 서울로 올라와 번역 일에 전념하였으며 북 장로회 선교부도 언더우드와 게일이 번역에 전념하도록 양해하였다. 그 결과 우선적으로 추진하던 신약 성서 교정 작업이 속도를 내면서 1904시험 역본을 완성하여 신약젼셔를 인쇄하였고 2년 검토를 거쳐 1906년에 공인 역본’ 신약젼셔를 출판하였다. 한글성서로서는 최초 공인 역본이 나온 것이다. 이 신약 성서는 1936년 개역 성경이 나오기까지 30년 동안 공적인성서로 권위를 인정받으며 한국 교회 강단에서 읽혔다.
 
[참고] 이덕주, “‘1세대 성서를 통해 이루어진 복음의 토착화 : 한글 성서 최초 완역 100주년의 역사신학적 의미”, Canon&Culture 4권 제1(2010.4), 95-98

댓글 없음:

댓글 쓰기

참고: 블로그의 회원만 댓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

스네프루 [Snefru, 기원전 2613~2589] 이집트 제4왕조, ‘성스러운 왕’

스네프루 [Snefru, 기원전 2613~2589] 이집트 제 4 왕조 , ‘ 성스러운 왕 ’   스네프루는 고대 이집트의 제 4 왕조를 시작한 왕이다 . 그는 24 년 동안 이집트를 통치하면서 왕권을 강화하고 남북 지역의 교류를 확대했으며 영토도 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