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2월 15일 목요일

제중원(濟衆院, The House of Universal Helpfulness)

제중원(濟衆院, The House of Universal Helpfulness)

 
1904923일 준공
 
제중원(濟衆院, The House of Universal Helpfulness)은 한국 최초의 근대식 의료기관으로 미국 북장로교 선교부의 선교사 알렌(H.N. Allen, 安連)이 주도하여 조정이 설치하였다.
 
제중원 설립의 직접적 배경은 1884124일에 일어났던 갑신정변인데 이것은 보수 극수주의자들을 제거하기 위해 개화 청년들이 우정국(郵政局) 낙성식을 기해 수구파들을 공격한 사건이다. 금위대장 민영익이 이 날 크게 자상(刺傷)을 입었다. 그때 동석하였던 독일인 외무협판 묄렌도르프(穆麟德)가 민영익을 자기 공관으로 급히 옮겨서 알렌의 치료를 받게 하였다.
 
알렌의 서양 의술에 의한 외과 치료는 성공적이었다. 민영익은 그 상처를 완전히 치료받았고, 따라서 그것이 왕실에 전문(傳聞)되었다. 알렌은 마침내 왕실의 전의(典醫)로 임명받았고, 심지어 고종과 원숙한 인간관계를 갖게 되어 왕실의 왕래가 잦게 되었다. 결국 이것은 고종에게 서양 문명과 기독교의 문화와 신앙을 소개할 절호의 기회라고 판단한 알렌의 적극적 자세가 주효한 것이었다.
 
알렌의 명성은 높아지고, 그에게서 치료를 받고자 하는 사람의 수도 나날이 늘어갔다. 마침내 알렌은 1885122일 미국 공사관 무관(武官) 포크(G.C. Flaulk) 중위를 만나 상의한 끝에 왕립병원의 설립을 조선 정부에 건의하게 되었다. 포크 중위는 자기의 추천서를 붙여, 이 건의를 당시 조정 외부대신 조병호에게 전달하였다. 알렌이 건의한 내용을 보면 환자들이 외국인 의사인 자기를 찾아오는데 대처하기 위하여 병원 설립이 꼭 필요하며, 자신은 무보수로 이 병원에서의 진료를 책임지며, 또 젊은 한국인에게 의학교육을 실시할 용의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병원 부지로 청결한 토지와 경영 및 의약품 값으로 3천달러를 제공하여 줄 것을 제의하였다.
 
하지만 이 병원의 설립은 묄렌도르프의 방해와 선교회의 규약상의 제약 때문에 처음에는 시련을 겪었다. 묄렌도르프 자신이 의과대학 설립을 구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알렌은 이 설립 건의서를 민영익을 통하여 제의하고, 다만 묄렌도르프에게는 그 사실을 통지만 하였다. 알렌은 이 병원이 왕립병원이라 호칭될 것이고, 병고에 시달리는 국민의 치료도 해서 국왕이 기뻐할 것이요, 백성들은 국왕을 우러러 보게 되어 여러 방면으로 향상을 가져 오게 될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고종은 알렌의 서양식 병원건립 건의를 받아들여 1885년 음력 229(414)에 광혜원(House of Extended Grace)을 설치하였는데, 이것이 곧 한성 재동에 설치된 국립병원이었다. 건물은 홍영식(洪英植)의 집(지금의 헌법재판소 자리)을 쓰게 하였는데, 광혜원이라는 명칭은 2주일 만에 백지화되고, 그 해 음력 312(426)에 새로 제중원(濟衆院 : House of Universal Helpfulness)이라는 이름을 붙여 개원 당시부터 소급 적용하였다.
 
제중원의 명성은 날로 높아져 하루에 최고 70명의 환자를 보게 된 때도 있었다고 하는데, 그 뒤 환자의 수가 늘어나서 진료업무가 복잡하게 되자 알렌은 한때 미국 감리교회 선교의 스크랜턴(W. B. Scranton)의 도움을 받기도 하다가, 곧 추가로 파견된 선교의 헤론(J. H. Heron)과 함께 진료에 종사하였다.
 
1886년에는 다시 미국으로부터 여의(女醫) 엘러스(A. J. Elless)가 파견되어 제중원에 부인부(婦人部)를 신설하고 여인들의 진료에 종사하였다. 1886329, 서양의학을 교육하고 양의(洋醫)를 양성하기 위한 국립 제중원의학당이 개교했다. 아울러 18865월 미국 의사들의 공로에 대한 보상으로 알렌과 헤론에게 당상관(堂上官)의 벼슬이 하사되었다.
 
이렇게 제중원의 진료업무가 더욱 번창하자 1887년 초 조선 정부는 한성 남부 동현의 왕실 소유 부지(지금의 을지로 입구와 2가의 중간, 구 한국외환은행 본점 자리)로 제중원을 옮겼다.

1887년 가을 알렌이 미국특파전권대사 박정양(朴定陽)의 수행원으로 떠나게 되자 제중원의 진료업무는 헤론이 전담하게 되었고, 부인부의 여의는 엘러스가 혼인하게 됨에 따라 호르톤(L. S. Horton)으로 교체되었다.
 
그 뒤 알렌이 돌아왔으나 미국 공사관 서기관이 되었으므로 병원진료는 하지 않았고, 1890년 여름 헤론이 병사하자 캐나다에서 다시 파견된 빈턴(C. C. Vinton)이 의료업무를 이어 맡다가 1893년 다시 추가로 파견된 에비슨(O. R. Avison, 魚丕信)에게 인계되었다.
 
제중원은 1885년 국립병원으로 개원하여 진료활동을 한 이래, 18946월 갑오개혁의 행정관제개혁 때 내무아문으로 폐합되었다(718). 이후 에비슨은 병원 운영을 맡은 관리들의 부패로 업무를 수행할 수 없어 정부에 쇄신을 건의하였다. 고종은 이 건의를 받아들여 모든 권리를 에비슨에게 맡겨 설립한 지 9년 만에 경영권도 완전히 미국 북장로교 선교부로 이관되었다. 그리고 미국인 실업가 세브란스(L. H. Severance)의 재정지원으로 1904년에 남대문 밖 복숭아골[桃洞]로 현대식 병원을 지어 옮기고 세브란스병원이라 하였다. 에비슨에 의하여 1899년 제중원학교가 설립되었다가 1904년 세브란스병원으로 개편되면서 제중원이라는 이름은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세브란스병원 건물은 1904923일 준공되었다고 한다.
 
참조 : 기독교대백과사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세브란스병원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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